▲ 가고싶은 완도(http://tour.wando.go.kr/)자료

완도는 해남에서 완도대교를 건너 막 넘어서면 멋진 아치가 건강의 섬임을 알려 준다. 이곳을 지나면 완도군 군외면 달도리 염수마을이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가면 완도읍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달도리다. 조금만 가면 달도테마공원이란 팻말이 보인다. 우회전 하면 주차장, 차를 세우고 관광을 하면 된다.

약샘과 전진도첩을 보고 쉬어 갈 수 있는 정자도 있고 작은 야외무대도 있어 단체들의 모임도 가능하고, 특히 어린학생들이 갯벌체험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개매기(개막이) 체험도 할 수 있다. 체험을 희망하는 사람은 군외면사무소나 달도리 이장에게 문의하고 오면 가능하다.

이 마을에는 이순신의 이야기가 있다. 감옥에서 풀려나 장흥의 회령포(장흥 회진)에 도착했을 때 배설이 후퇴하면서 온 전선은 겨우 10여척이 남아 있었다. 이 전선을 이끌고 해남의 이진 땅에 진을 쳤다. 그러나 토사곽란으로 인사불성이 되어 소주를 마시기도 해보았으나 차도가 없던 차에 누군가 염수마을에 약샘(藥井)이 있는데 이 물을 먹으면 치유가 된다는 말을 듣고 이 물을 먹고 씻는 듯이 나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에 진을 쳤던 이진과 염수마을은 약 1km의 거리다.

▲ 약샘

염수마을에서는 지금도 정월 초사흘이면 당제를 지낸다. 구전이긴 하지만 난중일기가 이를 뒷받침해주는 대목이 있다. 1597년 8월 21~23일까지 토사곽란으로 너무 많이 아파서 배가 아닌 밖에서 잠을 잤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이 약샘으로부터 가까운 거리에 당이 있는데 모시는 신이 호남대장군(湖南大將軍)이다. 이곳 달도 사람들은 호남대장군이 이순신이라고 한다. 다만 이 약샘은 만조 시에는 볼 수 없으나 간조가 되면 이 샘물을 볼 수가 있다.

▲ 약샘 굿

 

▲ 달도 당집

그래서 완도군은 이곳에 전진도첩을 누구나 불 수 있도록 돌에 새겨서 세워두었다. 이 전진도첩은 고금도의 충무사에 보관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서 새겨 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전진도첩의 왼쪽의 배들이 거의가 가리포진(지금의 완도)의 배라는 점이다. 이러한 것을 볼 때 가리포진의 중요성을 알 수가 있다.

▲ 전진도쳡

염수마을의 관광이 끝나면 완도방향으로 가는데 완도대교를 막 지나면서 우회전하여 서부도로인 국도 77호선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대문리 마을에 모감주나무 군락지라는 팻말이 보인다. 2000년 천연기념물 제428호로 지정된 세계적인 희귀종인 모감주나무 군락지는 대문리 해안가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바다와 더불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무환자나무과에 속하는 모감주나무를 중국에서는 학덕이 높은 선비가 죽으면 묘지 옆에다 심어주는 품위 있는 나무이다. 잎은 기수 우상복엽으로 어긋나며 길이 25∼35cm이다. 소엽은 긴 타원형이고 길이 3∼10cm, 너비 3∼cm로서 양면에 털이 없거나 뒷면의 잎맥을 따라 털이 있고 불규칙하고 둔한 큰 톱니가 있다. 소엽의 아래쪽은 흔히 결각상으로 깊게 갈라지기도 한다.

▲ 모감주나무 꽃

6∼7월에 피는 노란 꽃은 지름 1cm의 조그만 꽃들이 모여 가지 끝의 원추화서에 달린다. 열매는 꽈리모양으로 원추형 봉지를 씌워 놓은 것 같으며 길이 4∼5cm이다. 10월에 익고 3개로 갈라지며, 3개의 까맣고 윤기 나는 단단한 종자가 들어있다. 종자는 단단하고 둥글며, 새까맣고 윤기가 있어서 염주를 만드는데 쓰기도 하여, 한방에서는 모감주 꽃잎을 말려두었다가 요도염, 장염, 치질, 안질 등에 쓴다고 한다. 중국의 산동 반도에서 모감주나무 종자가 파도를 타고 건너와 자란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을 나와 난대림의 보고인 완도수목원으로 가보자. 이곳은 750여 종의 식물이 살고 있는 국내 최대의 난대림 수목원이다. 특히 붉가시나무와 동백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하다. 이곳에는 난대식물 온실과 산림박물관 이 있으며, 전망대에 오르면 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가슴이 시원하게 확 트인다. 숲 해설가들의 도움을 받으면 더 자세히 알고 갈 수 있다.

▲ 수목원 입구의 저수지를 따라 걷는 길
▲ 수목원 내에 있는 폭포

수목원을 나와 완도방향으로 오다보면 바닷가에 갯바람공원이 있다. 넓은 잔디밭과 정자, 음수 등이 있어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특히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을 잘 만들어 놓아 시원한 바다와 접할 수 있다.

▲ 갯바람 공원
▲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
▲ 공원 밑 바닷가

이곳에서 쉬었다가 다시 완도방향으로 가면 완도군 군외면 당인마을이 나오는데 수십 길 낭떠러지 끝에 미소공원이 있다. 이 공원의 정자에 올라서면 확 트인 바다, 점점이 보이는 섬들이 시야에 들어와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진다는 의미에서 그 이름이 미소공원이다.

또한 이 마을에는 의사 허사겸의 사당이 있다. 허사겸은 당시 당인마을의 이장이었으나 첨사의 폭정에 못 이겨 민란을 주도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혼자 한 것이라고 하여 단 한사람의 희생으로 끝이 난 것이 다른 지역의 민란과 다른 점이다.

▲ 허사겸의 묘
▲ 미소공원에서 본 당인마을 해안
▲ 쉬면서 조망 할 수 있는 곳

청해포구 촬영장은 드라마 해신을 촬영하면서 만들어진 곳인데 이후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가 촬영되었으며 지금도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다.

이곳을 돌아보면서 1200년 전에 전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고 멀리 페루까지 무역을 하였던 장보고의 진취적인 개척정신을 배워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청해포구 촬영장

이제 완도어촌민속전시관이다. 이곳에는 조개류도 있지만 다양한 어구들이 있어 학생들에게는 최적의 명소일 것이다. 학계에서도 어구를 보기 위해 찾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 어촌민속전시관
▲ 고래상어
▲ 주낙배(연승어선)

다음은 정도리 구계등이다. 이 자갈밭은 길이가 약 800여m이고 폭은 100여m되는데 여기에 있는 크고 작은 갯돌들은 청환석이다.

탁 트인 바다 멀리 슬로시티 청산도를 비롯한 자그마한 섬들도 볼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수심이 깊어 수영이 금지된 곳이라는 점이다. 이곳에서는 어떤 자연적인 물질도 외부 반출이 금지되어 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지역이기 때문이다. 돌이라고 쉽게 생각해서 가지고 가려다 적발이 되면 큰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정도리 구계등

이제 완도타워다.

▲ 완도 타워

여기에 올라가면 서편제의 촬영지 청산도가 발아래 있는 것처럼 가까이 보인다. 멀리는 거문도, 날씨가 맑은 날이면 제주도까지 볼 수 있다. 시원하게 펼쳐진 신지의 명사십리까지 볼 수 있는 전망이 아주 좋은 곳이다. 점점이 흩어져 있는 섬들을 맘껏 구경하고 나오는 길에 차도에서 약 200여m 거리에 남망산 봉수대가 있는데 아직 시설물은 없지만, 이순신은 1596년 윤8월 24일 우우후 현덕승과 이곳에 올라 남긴 말 중에 한 도(道)의 요충지 중에 요충지라는 말도 남겼다.

▲ 남망산 봉수대에서 본 완도항

몇 시에 염수마을 도착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시내에 들어오면 뭐니 뭐니 해도 먹거리가 최고다. 싱싱한 회나 조개구이, 전국 생산량의 81%를 차지하는 전복 등 해산물의 보고 완도에 왔으니 맘껏 먹어보는 것도 기억에 남을 것이다.

시간을 보아서 신지도의 명사십리(鳴沙十里)와 원교 이광사가 기거했던 집도 보고 가면 좋다. 이광사는 이곳에서 동국진체의 서결을 완성했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아들인 이긍익과 연려실기술을 쓰기 시작하였으나 완성은 서울에서 하였다.

▲ 명사십리

마지막으로 1200년 전의 장보고에 혼이 살아 숨 쉬는 청해진에는 장보고기념관이 있다. 선박이 드나들던 장도에는 토성을 비롯한 시설들을 복원하였다. 이 섬에는 토사 유출이나 섬박의 접안 시설로 보이는 원목렬이 있는데 아름드리 소나무가 촘촘히 박아져 있다. 이것이 발견 된 것은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발견이 되어 지금도 간조가 되면 볼 수가 있다.

특히 청해진 망루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완도와 신지도 사이를 지나는 배, 신지도와 고금도 사이를 지나는 배, 강진 마량과 고금도 사이를 지나는 배, 해남 남창과 원동 사이를 지나는 배를 한눈에 볼 수 있을 정도로 시야가 탁 트였다. 따라서 진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고 태풍이 불어도 여러 섬들이 막아주는 곳에 청해진을 설진한 것이다.

지금도 태풍이 불면 동지나해나 제주 근해에서 조업하던 배들은 이곳으로 피항을 하는 천연 요새 중의 요새다.

▲ 장도

이렇게 관광을 제대로 하려면 1박2일은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관광해설가보다는 향토사를 공부하는 사람들과 동행을 할 수만 있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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