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에서 수렴동계곡으로

백담사는 백담계곡 시작점에 있는 절이다. 용대리에서 마을버스로 20분 정도 가거나, 걸어서 약 2시간 가면 나온다. 백담계곡은 백 개의 담(潭)이 있는 계곡이란 말에 걸맞게 어마어마하게 넓고 아름다운 계곡이라 한 번 쯤은 걸어갈 생각이 들만도 한데, 한 번도 걸어간 적이 없다. 길에 인도가 없어서다. 좁은 길에 버스가 아슬아슬하게 다녀 걷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후에 백담계곡 산책길을 만들면 꼭 걸어가고 싶다.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지 않을까 싶다.

백담사 경내 은행나무가 마음껏 노랑을 뽑내고 있다.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밝은 햇빛을 받고, 맑은 물을 먹고 자라서 그런지 유난히 샛노랗다.  

백담사 위로 영시암을 지나 수렴동 대피소까지 이어지는 계곡이 수렴동계곡(水簾洞溪谷)이다. 수렴동계곡은 이름 그대로 여러 계곡이 하나로 모인 계곡이라 넓다. 구곡담계곡, 가야동계곡, 백운동계곡이 모여 수렴동계곡을 이룬다. 8㎞ 거리지만 계곡을 끼고 길이 잘 닦여 있어 어린아이들도 쉽게 다녀올 수 있다.

수렴동계곡
수렴동계곡
수렴동계곡
수렴동계곡

수렴동 대피소를 지나면 봉정암까지 구곡담계곡이 이어진다. 구곡담계곡은 폭포와 담 9개가 구비구비 이어진다 하여 이름 붙었다. 수렴동계곡만큼 아름답지만 비탈진 곳이 많아 아이들이 가긴 어렵다. 구곡담계곡을 지나 박박 기어오르다 보면 소청, 중청, 대청이 나온다. 총 길이 21㎞다. 하루에 등반하기는 어려워 보통 영시암이나 봉정암에서 자고 가야 한다. 젊은 시절 발이 푹푹 빠지는 눈 덮인 겨울에 영시암터에서 텐트 치고 1박, 대청봉에서 2박하고 내려온 적이 있다. 다시는 해볼 수 없는 그리운 추억이다.

수렴동계곡
수렴동계곡

올해는 어딜 가나 유난히 단풍 색이 곱다. 9월, 10월 비 한 방울 오지 않고 날씨가 화창해서 그런지 수렴동계곡 단풍도 선명한 색이다. 외설악에서 천불동계곡이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라면 내설악은 수렴동계곡을 으뜸으로 친다. 특히 가을 단풍과 어우러진 계곡은 정신이 아뜩할 정도로 화려해서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수렴동계곡 단풍길
수렴동계곡 단풍길
수렴동계곡 단풍길
수렴동계곡 단풍길
수렴동계곡 단풍길
수렴동계곡 단풍길
수렴동계곡 단풍길
수렴동계곡 단풍길

영시암에 왔다. 예전에는 터만 있었는데 지금은 어엿한 절이 턱 하니 자리 잡고 있다. 영시암 지나 20-30분만 가면 수렴동 대피소가 나온다. 왕복 40분은 잡아야 하는데...

수렴동계곡 단풍길
영시암

수렴동 대피소 근처에 가면 여러 계곡을 만날 수 있고 폭포도 만날 수 있는데... 늦게 출발한 데다 단풍구경에 속도를 내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하산했다. 하산 길에 병꽃나무를 만났다. 5월에 피는 꽃이 10월에 피었다. 나는 단풍에 취해 잠시 님을 잃어버렸다지만... 너는 무엇에 취해 계절을 잃어버렸니?

내려오는 길에 한 뿌리에서 나온 세 그루의 나무를 보았다. 가운데 나무만 버섯이 가득 자랐다. 어찌 된 일이지 가운데 나무만 죽어 제 몸을 버섯에게 내줬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은 죽고 나서도 자연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화장을 해도, 매장을 해도 다 자연의 신세를 지는 거다. 멕시코의 어떤 은퇴마을에 살던 노인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녀는 평소에 자신이 죽으면 식탁을 책임져주던 호수, 물고기 밥이 되게 해달라고 관리인에게 유언을 남겼다. 관리인은 그녀가 죽자 불법인줄 알면서도 그녀 몸에 돌을 달아 수장했다. 자연에게 제 몸뚱이 내주는 장례방식이 합법적 틀 안에서 만들어지고, 그걸 선택하고 싶다고 하면 아이들이 끔찍하다고 질색하겠지? 사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건데...

올라갈 때는 계곡 단풍에 취해 길을 걸었다면 내려올 때는 오솔길 단풍에 취해 길을 걸었다. 올해 볼 수 있는 단풍을 수렴동계곡에서 다 본 것만 같다. 언젠가 다시 와도 이렇게 아름다운 단풍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수렴동계곡 단풍길
수렴동계곡 단풍길

 

수렴동계곡 단풍길
수렴동계곡 단풍길

돌아와 백담사로 건너는 다리에서 계곡과 산을 다시 만났다. 해가 지면서 물들기 시작하는 하늘과 은은한 가을 단풍이 잘 어울린다. 멀리 돌탑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올 여름 그토록 모진 비에 셀 수없이 쌓여있던 돌탑들은 다 무너졌을 터인데 다시 또 하나, 둘 쌓여간다. 인간의 염원이 자연보다 질긴 걸까?

백담사 돌탑
백담사 돌탑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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