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는 뭔가 서글프다. 하얀 나무껍질을 가졌기 때문일까? 추운 곳에서 살기 때문일까? 하얀 광목천으로 만든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허허벌판에 서 있는 모습 같다. 온기 없는 한복 속으로 찬바람은 씽씽 들어오고 가야 할 길은 아득하고.... 이상하게 자작나무에는 고향을 떠나 춥고 고단한 삶을 꾸려가야 했던 우리 조상들의 애환이 느껴진다. 그래도 자작나무는 그 추운 지방에 뿌리를 내렸다. 우리 조상들이 시베리아에 건너가 살아남은 것처럼...
자작나무는 한자로 백단(白椴 흰 백에 자작나무 단) 또는 백화(白樺 흰 백에 자작나무 화)라 부른다. 자생하는 자작나무의 남방한계선은 북한이다. 북한에서 시베리아까지 그리고 북유럽 꼭대기까지 영하 20~30도의 혹한을 견디며 자작나무는 산다.
하얀 자작나무 껍질은 종이처럼 얇지만 껍질을 겹겹이 쌓고, 껍질에 기름 성분까지 두어 자신을 보호하여 추위를 이겨낼 수 있다. 자작나무 흰 껍질에 불을 붙이면 기름기 때문에 자작자작 소리를 내면서 탄다고 자작나무라 이름 지어졌다 한다.
자작나무는 낙엽 활엽 큰키나무다. 높이 15~30m로 무리 지어 곧게 자란다. 수명도 100년 전후다. 흰 껍질은 종이를 대신하여 불경을 새기거나 그림을 그리는 데 쓰였다고 한다. 주로 산속 깊은 곳에서 자생하지만 강원도 북부 지역에서는 식목하기도 한다.
지난 10월 말, 인제읍 원대리 산75-22번지, 매봉산 원대봉 정상 인근에 있는 자작나무숲을 찾았다. 이 숲은 원래 소나무 숲이었다. 솔잎혹파리로 소나무 피해가 심해지자 소나무를 벌채하고 1989~1996년 동안 18,000여 평에 자작나무 70만 그루를 심었다.
자작나무 숲 입구에서 1시간 너머 걸어가면 25~30년 된 자작나무 40만 그루가 서식하고 있는 숲을 만난다. 이 숲을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이라 부른다. 아마 조밀하게 심어진 자작나무 잎들이 서로 부딪혀 사락사락 속삭이는 소리를 낸다고 이름이 지어지지 않았나 싶다.
주차장에서 자작나무숲으로 가는 길은 두 개다. 원정 임도는 80분 걸리고, 원대 임도는 100분 걸린다.
둘 다 임도를 따라가는 길이지만 원정 임도는 볼 것이 없는 오르막길이고 원대 임도는 탐험코스를 지나면 구불구불 산자락을 끼고 도는 길이라 전경이 아름답다. 운동 겸 올라간다면 원정 임도를 택하고 원대 임도를 따라 내려오면서 구경하길 권한다. 4시간 정도 잡으면 실컷 구경하고도 남는다.
하얀 눈이 내린 동토에 처연히 서 있는 자작나무 모습도 무척 아름답다고 한다. 겨울에는 11월~2월까지만 문을 연다. 2시까지는 입산해야 한다. 월·화요일을 쉰다. 겨울에도 한 번 오고 싶다.
자작나무숲을 보고 나니 2년 전 갔던 동화나라 숲도 보고 싶었다. 자작나무숲에서 1시간 거리인 인제군 남면 갑둔리 산 121-4에 있다. 요새는 그 숲을 아는 사람만 안다고 해서 ‘비밀의 정원’이라 부른다고 한다. 군사작전 구역이라 인가가 없는 고요한 산자락을 끼고 각양각색 나무들이 각자 목소리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달님도 그 소리에 살포시 눈을 떴다.
아침 안개가 깔리는 새벽에 와서 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지만...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비밀의 정원도 내 눈에는 아름답다. 겨울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궁금하다.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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