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사람들 간 교류가 자유로웠을 때 종종 집에서 하는 House party에 가곤 했다. House party는 한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외국 문화 중 하나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문화다. 친구와 친구 지인들을 불러놓고 술을 마시고 얘기를 나눈다. 술은 BYOB(bring your own beer에 약자)라고 각자 알아서 마시고 싶은 술을 갖고 온다.

House party 중

서로 건너 건너 아는 사람들이기에 분위기는 어색하지 않고 시끌벅적하다. 다들 취기가 돌아 영어 발음을 흘리며 배시시 웃기도 하고, 거하게 바디 랭귀지를 하며 토론에 심취하기도 한다.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모여서인지 공기는 뜨겁게 달아오르고, 서로 만난 남녀들은 대화를 나누기 바쁘다. 맥주 한잔만 마셔도 취하는 나 또한 취기가 돌아 영어 발음은 신경 쓰지 않고 살짝 흥분해서 긴장을 풀고 사람들과 대화를 주고받는다.

몬트리올 생활 초기, House party 중 나를 당황하게 하는 질문 하나를 받았다.

“지산, 한국에서 왔구나. 근데 너 남자친구 있니?”

내가 수줍게 “남자친구는 한국에 있고 우리는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어”라고 얘기를 하면 눈을 커다랗게 뜨고 위로 굴리며

“그게 가능하니??? 난 절대로 못해. 너 정말 대단하다. 근데 장거리 연애면 자주 못 볼 거 아냐. Open relationship을 해보는 게 어떠니?” 라고 조언을 했다.

내가 당황해 Open relationship이 무엇이냐 물어보니 그것도 모르냐는 눈빛과 제스처를 취하며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Open relationship은 만나고 있는 애인이 있어도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연애방식을 말해. 인생은 길고~~ 매력적인 사람은 많고~~ 한사람만 바라보며 연애를 한다는 게 조금 우습다고 생각하거든. 인간은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고 좋아하게 되어있어. 이런 본능을 억압하는 것보단 본능에 맞는 자유로운 연애를 하는 거지. 왜 주위에 애인이 바람피우는 경우 많이 봤잖아? 숨어서 바람피우고 거짓말 하는 것보단 당당히 파트너 동의하에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고 봐”라고 얘기하며 음흉한 미소를 보냈다. 

몬트리올에서 2년 반 넘게 살다보니 Open relationship은 곳곳에서 자연스레 만날 수 있었다. 아는 친구인 마리아라는 여자는 양성애자이고 남자와 여자를 둘 다 만나는 Open relationship을 하고 있다. 또 다른 게이커플도 Open relationship을 하고 있으며 서로 2명까지 만나는 걸 허용해준다고 한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 Open relationship을 허용할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대화는 필수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캐나다인들이 Open relationship을 선호하는 건 아니다. 친한 친구 티파니는 2년 반 동안 몬트리올에서 다양한 남자들과 연애를 시도했다. 하지만 많은 남자들이 Open relationship을 추구하고, 한사람만 만나는 연애를 원치 않아 관계는 진전되지 못했다. 옆집 친구인 샘도 여러 번 사귐을 시도했는데 대부분이 Open relationship을 원한다며 한사람만 만나는 정상적인 연애를 하는 사람들은 찾을 수 없다며 푸념을 늘어놓곤 한다.

House party 중
House party 중

연애는 그렇다 치고 결혼은 어떨까? 한사람만 만나는 연애, 일반적인 연애를 하면 결혼은 하려할까?

실험실에서 같은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친구 클라우디아는 키란이란 남자친구와 6년간 달달한 연애를 했다. 연애를 시작한지 1년 만에 둘은 같이 살기 시작했고, 집도 구매했다. 둘은 집세를 같이 내며 매달 집대출금을 갚아나가고 있다. 둘은 결혼한 관계는 아니지만, 'Common law'라는 법에 의해 결혼한 커플들이 갖는 혜택을 받을 수 있다. Common law는 1년 이상 같이 살고 진지한 연인이라는 관계를 증명할 수만 있으면 등록이 가능하다. 둘은 세금을 같이 내고, 건강보험도 같은 이름하에 등록하였다 한다. 하지만 둘이 헤어졌을 경우 위자료, 가족유산, 보상수당 및 결혼 제도와 같은 법적 권리는 없다. 캐나다 통계청에 의하면 결혼을 하지 않고 Common law로 살고 있는 커플이 22%라고 한다. 왜 캐나다 커플들은 결혼하지 않을까?

클라우디아한테 이런 제도가 너무 신기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더니, 클라우디아는 명확한 답을 주었다.

“일단.. 캐나다는 이혼율이 54.7%로 정말 높아. 우리 부모님도 그렇고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해. 이혼은 법적으로 맺어진 관계를 끝내야 하기 때문에 주로 변호사를 선임해서 이혼 절차를 밟게 되지. 위자료, 가족유산, 보상수당 등을 나누기 위해 복잡하고 긴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런 이혼과정을 거친 사람들이 털어놓은 바에 의하면 이혼소송절차는 엄청난 시간과 돈을 허비하게 만들더라고. 그런 걸 목격하다 보니 결혼이라는 게 오히려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어.”

클라우디아에 얘기를 들으니 왜 캐나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키란과 클라우디아 부모님도 이런 관계를 허용하고 이해할까?

“키란 어머니는 매일 우리가 언제 결혼할 거냐며 물어보셔. 지인 자식이 결혼하면 드라마틱하게 반응하시지. 마치 우리가 결혼하는 게 본인 삶의 목적인 양... 지난번엔 키란 할머니가 사용하던 반지를 주겠다며 얼른 결혼하라고 막 독촉하시더라고. 하지만 나와 키란은 단호해. 사실 결혼이라는 행사는 돈도 많이 들어가잖아? 차라리 그 돈을 모아 삶을 더 안정적으로 시작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해. 더불어 나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결혼식 통로를 걷는 걸 상상하면 소름끼치도록 부끄럽고 부담스러워. 현재 나와 키란은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가 함께 할 것을 알고 있어. 굳이 결혼이란 제도로 우리 사랑을 입증할 필요는 없다고 봐” 라고 당당하고 확신에 찬 대답을 해주었다.

클라우디아의 설득력 있는 대답을 듣는 순간 서로를 확신한다면 굳이 결혼이란 제도로 두 사람 관계를 묶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캐나다 통계청에 의하면 캐나다는 결혼률이 34%, Common law로 동거하는 커플이 22%, 결혼도 동거도 하지 않는 사람은 43.7% 라고 한다. 그래 그런지 내 주위 많은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고 살고 있다. 특히 이혼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시 결혼하지 않고 남자친구, 여자친구로 산다. 나이 많은 직장 상사, 동료들과 얘기를 나눌 때 주말에 무엇을 할 거냐고 물어보면 '내 남편 혹은 부인과 00을 할 거야~'라는 말보다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와 00을 할 거야~~' 라는 대답이 많다. 보스 스테판도 이혼을 하고 새 여자친구와 같이 살고 있다. 회식 모임이 있으면 여자친구도 자연스럽게 데리고 온다.

한국에선 이혼한 상사가 회식자리에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를 데리고 오는 일이 가능할까? 이에 대해 우리는 편견 없이 그 둘 관계를 인정해줄 수 있을까? 젊은 커플들이 결혼을 안 하고 동거만 하겠다고 양가 부모님한테 당당하게 말씀 드릴 수 있을까?

한국도 이혼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요새는 동거하는 커플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러 사회적 현상에 맞춰 우리도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자유롭고 다양한 연애와 결혼방식을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는 캐나다인들이 아직까지는 낯설지만, 곧 우리나라에도 다가올 일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특히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30분 결혼식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클라우디아의 실속 있는 확신과 실행이 부럽기도 하다.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이지산 주주통신원  elmo_part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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