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도 타이난 지역에서 유난히 많이 먹는 쇠고기 탕. 막 손질한 생고기를 뜨거운 육수에 담가 살짝 익혀먹거나, 소고기 샤브샤브처럼 탕을 공용으로 먹는다.
대만에서도 타이난 지역에서 유난히 많이 먹는 쇠고기 탕. 막 손질한 생고기를 뜨거운 육수에 담가 살짝 익혀먹거나, 소고기 샤브샤브처럼 탕을 공용으로 먹는다.

전 세계가 코로나 19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모두가 마이너스 성장으로 고전하는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선전하는 국가가 대한민국이라고 하니 우리나라의 산업구조가 그만큼 튼실하다는 이유겠지요.

조선, 자동차등의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 그리고 미래의 먹거리인 바이오, AI, 로봇, K-문화 등등 격세지감입니다.

농업 이외에는 이렇다 할 산업이 없던 우리가 중공업 국가로 넘어가는 데 큰 역할을 한 분야가 섬유산업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은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로 많이 옮겨갔지만, 특수섬유나 기능성 섬유는 아직도 한국이 중요한 공급처로 알고 있습니다.

홀로그램을 원단에 접목하는 작업이 한국에서 최초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동안 반짝이는 무대복은 원단에 PET 필름을 실로 꿰매거나 열에 녹는 접착제를 바른 후 원하는 부분만 원단에 붙게 하고 나머지는 제거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 경우는 딱딱하고 날카로운 필름 때문에 착용감이 좋지 않습니다.

원단을 수출하는 업체 사장과 섬유 원단에 박을 치는 기술을 가진 공장 사장이 찾아왔습니다. 당시 포장용 홀로그램 OPP 필름 다음으로 대만 공장이나 한국에서 많이 팔리던 제품이 홀로그램 박(Hot Stamping Foil)이었습니다. 기존 박(Hot Stamping Foil)의 폭은 63cm입니다.

그들은 우리 제품으로 테스트를 했는데 홀로그램 효과가 그대로 살아있다며 문제는 폭이라고 했습니다. 적어도 폭이 1m는 넘어야 되고 만약 1m 50cm를 만들어주면 아주 좋다고 했습니다.

대만에서도 한국이 섬유 강국임을 잘 아는지라 적극적으로 개발에 착수하였습니다. 처음에 1m 폭으로 생산을 했고, 오래지 않아 1m 50cm 폭의 홀로그램 박 원단이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홀로그램 품질도 중요하지만, 박을 원단에 접착하여 매끄럽게 분리하는 과정이 아주 중요하였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시도했지만 홀로그램 효과가 현저히 떨어지는데, 이 공장에서는 스판 소재 원단에서도 홀로그램 효과가 그대로 살아났습니다.

대만에서 샘플 오더를 하더니, 회장 부인이 빨간 홀로그램 원단으로 드레스를 만들어 망년회에서 입고 직접 무대를 오르기도 했습니다.

섬유 수출업체에서는 시장에 처음 등장한 홀로그램 원단을 자기 바이어들에게 보내고 해외 섬유 전시회에 참가하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특히 조명 아래서 더욱 현란하기에 밤무대 무희들이나 요가복 등으로 많이 나간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상 입는 옷이라 한국 의류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지만, 외국에서는 한국산 옷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저도 종종 여행 중에 디자인도 괜찮아 사서 입어보지만 오래 입지 못합니다. 심지어 일본 여행 중에 산 셔츠도 만족도가 떨어졌습니다.

일본에서 유통되는 많은 의류가 과거엔 Made in Korea이었지만, 국내 인건비 상승으로 봉제공장이 옮겨간 곳이 주로 산둥(山東)성 칭따오(靑島)였습니다.

수많은 봉제공장이 저임금만 믿고 중국으로 가자마자 부딪히는 문제가 언어입니다. 그러다 보니 발생하는 사건도 대부분 유사하게 진행됩니다.

중국에서 회사 등록하고 은행 계좌 만들기도 쉽지 않습니다. 외국인은 지분 제한도 있고,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지인 고용 조건도 있습니다. 무역업무와 세금문제, 관공서 출입도 하세월이지요.

무역회사를 운영했고 중국어가 통하는 저도 중국 심천에서 회사 만들 때 결국 대만인 친구의 중국부인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했으니까요. 돈을 투자했어도 법적인 주인이 아니면 자연히 경영에서 멀어지는 것 또한 이 세계입니다.

대부분 봉제공장 사장은 조선족 여자를 비서 겸 경리로 채용하여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흐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여직원의 어머니나 언니가 회사에 들어와 식사를 담당하고. 조금 더 지나면 오빠나 남동생이 들어와 차를 운전하는 직원으로 일하지요.(조선족은 소수민족으로 한 가구 한 자녀 정책에서 예외)

일본으로 의류를 수출하던 지인이 거래하던 공장에 상담하러 갔는데 언제부터인가 사장은 멀뚱멀뚱 앉아있고, 여자 경리가 중간에 끼어들어 일을 처리하더라며, ‘저거 xx 다 됐네’라며 나왔다고 하더군요.

사장도 모르는 사이에 회사는 남의 이름으로 되어 있거나 신용불량자로 변해있어 빈 몸으로 야반도주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도 없는 처지에는 거지처럼 숨어사는 불법체류자가 된다는 풍문을 많이 들었습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삼창식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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