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그램 필름이 대량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곳이 포장지와 쇼핑백 분야입니다.

한국의 공산품은 일본 제품보다 저렴하고, 동남아 제품보다 품질이 뛰어나 수출이 잘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1인당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기고, OECD에 가입한 업적을 남기려는 정권의 욕심 때문에 원화가치를 높여 달러당 원화가 900원대(현재 1,120원)에 이릅니다. 그러자 한국제품의 위상이 가격은 비싸고 품질은 떨어진다고 외면받는 상황이 되었지요.

IMF 금융위기를 맞이한 이유가 한둘이 아니겠지만, 1997년 전후 제가 주목하는 상황입니다. 당시 경기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기꾼들도 넘쳤고 어수선한 사회에서 여자를 납치해 팔아넘긴다는 흉흉한 소문도 자자했습니다.

가격에 민감한 수출업체들이 생산기지를 옮깁니다. 포장지 쇼핑백 업체들이 한국에서 가깝고 기후가 비슷한 산둥성 칭다오(청도)시로 몰려갑니다. 큰 업체들은 자체 인쇄설비와 인력을 가지고 가고요. 한국의 인쇄설비가 들어가니 기존 중국시장에서만 통하던 중국 인쇄공장에서 한국에 사람을 파견하기도 하고, 한국의 중소 인쇄공장들도 따라서 들어갑니다.

포장재전람회에 찾아왔던 S사는 쇼핑백 업계의 거두였습니다. 시흥대로에서 안양 평촌 쪽으로 가다 보면 우측에 우뚝 솟은 빌딩이 S사 본사였습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그리고 연말연시로 이어지는 핫 시즌이 끝나면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데, 미국 바이어가 홀로그램 필름을 적용한 쇼핑백과 포장지를 요구했습니다. 샘플작업이 끝나고 오더가 결정되면 봄여름 내내 생산해서 10월 전에 엄청난 양이 미국시장으로 들어가는 구조입니다.

S사가 홀로그램 필름을 적용하면 그 아래 2~3개 중견 업체도 주문이 옵니다. 쇼핑백과 인쇄업체의 일로 청도에 자주 갔습니다. 90년대 청도 공항은 램프도 없이 작고 허름했습니다. 공항을 막 벗어나면 먼지 풀풀 날리고 고추와 콩 같은 익숙한 농작물이 반가운 한적한 곳이었습니다.

칭다오는 청나라 말 독일의 조차지로 유럽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며, 칭다오 맥주는 한국인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칭다오에 있는 라오산은 황해를 끼고 있으며, 한국의 산세와 흡사한 바위와 소나무가 친근했습니다. 대만 친구와 가볍게 산에 올라갔다가 중국에서도 유명한 도교사원인 태청궁을 구경하고 장삼봉이 수련했다는 동굴을 찾아 올라갔습니다. 장삼봉은 무협소설에 나오는 무당파 조사로 알려졌지요.

칭다오 라오산(嶗山) 타이칭궁(太清宮) 사진 출처 : Wikimedia
칭다오 라오산(嶗山) 타이칭궁(太清宮) 사진 출처 : Wikimedia

 

기대가 컸는데, 동굴 같지도 않고 겨우 비나 피할 것 같은 곳이라 의혹과 불신만 더 키우고 날이 어두워 급히 내려왔습니다. 원효대사가 수행했다는 설악산 금강굴 정도면 우화등선하여 선계에 들어갔다고 해도 믿을 텐데.

당시 청도에는 한국인 업체가 5만여 개에 이른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호텔에서는 한국 TV 프로와 뉴스가 나오고 한국 음식점들이 많아 불편할 일이 없겠더군요.

S사 공장을 찾았다가 엄청난 규모와 인력에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3,000여 명의 여직원들이 쇼핑백을 접고 있더군요. 지금은 환율과 인건비 상승으로 말이 안 되지만 98년, 99년경에 그곳 여직원 월급이 500위안(당시 원화 5~6만 원)이라고 했습니다. 여직원 한 달 일해서 나이키 운동화 한 켤레 못 산다고 한국인 상무가 안타까워하더군요.

중국인 직원들은 매년 춘절(설)이 되면 회사에서 주는 선물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그곳에서 친구들끼리 정보를 나눕니다. 다른 공장으로 가는 사람도 있고, 자기 친구를 데려와서 입사를 부탁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쇼핑백이나 포장지는 백화점 혹은 다른 업체의 로고를 인쇄하는 제품과 로고 없이 매장에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제품이 있습니다. 유명 화장품이나 보석 시계 등을 포장하는 낱개 박스 같은 경우는 아주 고가였습니다. 그 박스를 담는 백도 아주 까다롭고 정교하게 만드는데 아무래도 한국인의 손기술과 정성 그리고 미적 감각이 통하는 업종이었습니다.

나중에 홀로그램 필름을 중국 현지에서 생산하여 훨씬 싸게 공급하겠다고 해도 굳이 저를 통해 수입하여 해상운임을 부담하면서 중국 공장으로 보냈습니다. 저와의 의리 때문은 아닙니다. 바로 회사의 이익을 한국으로 가져오기 위한 방법이지요.

중국에서 물건을 생산하거나 2차가공하여 판매한 후 이익이 생기면 한국으로 이유 없이 그냥 송금하기에는 법적 한계가 있습니다. 그럴 경우 원재료나 부품을 한국에서 수입하고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송금하면 됩니다.

쇼핑백과 포장지는 얇고 저렴한 OPP 필름에 알루미늄 증착을 한 홀로그램 필름을 종이에 붙여 사용합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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