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부터 지금까지 2달을 피고 지는 꽃나무. 12월 하순이 가장 왕성했음. (타이난 )
12월부터 지금까지 2달을 피고 지는 꽃나무. 12월 하순이 가장 왕성했음. (타이난 )

지역 보건소 공무원으로 일하던 더글러스 부인이 부업을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이 쉽게 생각하는 돈벌이 수단으로 식당을 차립니다. 경험이 없어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팔다 남으면 가족이 먹으면 되고, 원가 대비 이윤도 높으니 위험 요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쉽게 뛰어들 수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쉽게 망할 수 있다는 함정이 있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하려면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발생하기에 온힘을 다해도 부족한 법이지요. 그런데 공무원 신분을 유지하며 돈만 투자하여 번드르르하게 차렸으니 안 망할 수가 없습니다.

더글러스는 부인이 사채까지 썼다는 걸 몰랐습니다. 이자는 불어나고 빚 독촉이 심해지자 더글러스에게 돈을 요구합니다. 얼마만 해주면 마지막이라는 말이 몇 달 안 되어 수없이 반복되고 주식도 모두 처분하고 결국 사는 집까지 팔게 됩니다.

안 해줄 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부엌칼을 자기에게 들이대며 협박하거나 본인 목에 대고 자살하겠다고 하는데 어쩔 수가 없다고 그러더군요. 누나한테 빌려서까지 돈을 해줬지만 밑 빠진 독이었습니다.

심지어 더글러스 카드까지 몰래 가지고 나가 돈을 인출해가는 바람에 신용불량자가 됩니다. 비밀번호를 수시로 바꾸었고 현금지급기에서 비밀번호를 누를 때도 가렸는데 손이 움직이는 방향을 기억해 비밀번호를 알아내고 신용대출로 돈을 빼갔답니다.

더글러스는 월급으로만 살 수가 없다며 회사에 해외근무를 지원합니다. 외국에서 근무하면 월급이 본국에서보다 1.5배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3~4년간 나를 도와주던 더글러스가 미국 지사로 나가고 후임으로 온 여직원도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일을 잘 했습니다.

미국으로 간 더글러스에게서 소식은 계속 들었습니다. 부인이 전화를 걸어 지속해서 돈을 요구했답니다. 지금 어디 건물 옥상이라며 뛰어내릴 거라고 하는데 안 해줄 수 없다고 하더군요.

더글러스는 부인과 이혼하기로 합의하고 회사를 퇴직합니다. 미국에서 돌아와 퇴직금까지 모조리 주고 가족들 빚을 다 떠안은 알거지가 되지요. 그래서 그 빚을 갚으려고 새로운 회사에 중국 지사 대표로 나가는 조건으로 입사를 한 후 톈진(天津)으로 나갑니다.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 한다고 해서 항상 꽃길만 걸을 수는 없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한다고 다 행복할 수만도 없고요.

1월 내내 볼 수 있었음. 한꺼번에 피고 최근에 꽃잎이 떨어지고 있음.(타이난)
1월 내내 볼 수 있었음. 한꺼번에 피고 최근에 꽃잎이 떨어지고 있음.(타이난)

光群雷射와 한국지사를 설립할 때 톈진의 더글러스에게 연락을 취해서 한국에 들어와 나를 돕겠느냐고 물었더니 아주 반가워하며 승낙하였습니다. 지사를 설립하는 사이에 더글러스는 대만으로 복귀해 光群雷射로 출근하였습니다.

일정보다 앞당겨 한국에 들어온 더글러스가 진지하게 말을 꺼내더군요. 중국에 여자가 있다고.

199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당시의 중국에 대한 인상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우리나라 1960~70년대를 연상하면 비슷합니다. 당시 일본 남자들이 한국에 오면 거의 기생관광을 생각하듯이.

한국이 일인당 국민소득에서 처음 대만을 앞지른 시점이 노무현 정부 때였으니 1990년대나 2000년 초엔 한국인보다 대만인들의 구매력이 훨씬 높을 때였습니다. 남자들끼리 중국여행을 가면 자주 ‘대포여행단’이라는 은어로 입에 오르내렸는데 매춘관광을 의미합니다. 마치 한국 기생관광단처럼. 그래서 중국의 관광이나 유흥업계에선 대만사람이 아주 중요한 고객이었고, 어떤 섬은 아애 대만인들을 위한 위락시설로 알려진 곳도 있었습니다.

그런 선입관 때문에 혹시 유흥업소에서 만난 여자와 정이 든 건 아닐까란 생각에 저의 첫 질문이,

“나이는?”, “25살!” 오잉???

“예쁘냐?”. “아니!”

“너 알거지인 거 아냐?”, “내가 빚이 많고 나이도 마흔이 넘는 걸 알고 있다.”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전 부인과의 결혼 생활은 거의 지옥이나 다름이 없었는데 어떻게 또 결혼을 생각할 수가 있는지?

중국에서 자기만 기다리고 있다며 한국으로 데리고 올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리고는 법적 수속을 위해 중국으로 들어갔습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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