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대 표창장 파문으로 표창장 하단 왼쪽에 동양대 로고가 은박인가 금박으로 들어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사이는 컬러복사기 성능이 좋아져 일반 인쇄물은 분간하기 어렵게 복사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금박이나 은박 부위를 복사하면 검게 나타납니다.

그럴 경우 똑같은 형태의 금형을 만들어서 박을 쳐야 하는데 한 장을 위조하기 위한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금형을 만들거나 박을 치는 공장에서 확인 안 하고 만들어주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금박 은박은 시중에서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고 기술이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아 위조방지 효과는 크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만 원권 지폐에도 언뜻 보면 사각 은박처럼 보이지만 각도를 달리하면 한반도와 10000 그리고 태극문양이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위조방지 기능의 홀로그램 박이 널리 사용된 곳은 상품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업 초창기에는 주로 쇼핑백 업체에 납품했었는데, 어느 날 대만 공장에서 한국으로부터 홀로그램 박 문의가 왔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한국의 에이전트인 저에게 연락하라고 회신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연락처를 주더군요.

제가 먼저 연락을 했는지, 그쪽에서 연락이 왔는지 기억은 불분명합니다. 전화 연결이 원활하지 않았던 것만 기억됩니다. 어렵게 연락이 된 업자로부터 도안을 받아서 대만으로 보냈습니다. 부산의 건설업체 금감이라는 곳의 의뢰를 받아 인쇄물에 사용할 거라는 설명만 들었습니다.

光群雷射는 생산설비기 폭 1m가 넘는 대형 홀로그램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업체라 15cm 작은 폭의 위조방지용 소형 필름은 다른 전문 업체보다 가격이 비쌌습니다. 상황설명을 하고 비싸다고 해도 납기가 급하다며 생산을 재촉하더군요. 다른 곳에 이미 의뢰를 했었는지 도안도 다 되어있었습니다. 홀로그램 일반 상표와는 다르게 거의 동양대 로고와 비슷하게 큰, 5x3cm 정도의 타원형이었지요.

대만 공장에서는 샘플을 보여주고 고객이 수락하면 계약금을 먼저 받고, 결제 후에 완제품을 납품합니다. 의뢰자는 샘풀이 오갈 시간이 없다며 대만에 가서 샘플 확인하고 바로 생산해서 직접 들고 한국으로 오겠다고 합니다.

사업가가 아닌 일반 사람이라도 이 정도의 상황이라면 의심을 해야 마땅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어리바리한 저는 상대방 말이라면 우선 믿고 보는 천성 어디 갔겠습니까? 샘플이 완성되는 날 의뢰인과 함께 대만에 갔습니다.

대만은 장례식에 많은 정성을 들입니다. 이승을 떠나는 망자의 꽃길을 기원함인지 늘어선 화환이 영구차를 맞이합니다.
대만은 장례식에 많은 정성을 들입니다. 이승을 떠나는 망자의 꽃길을 기원함인지 늘어선 화환이 영구차를 맞이합니다.

샘플을 확인하고 한국에 전화하더니 가져온 달러로 계약금을 내고 이틀인가를 기다려서 물건을 받았습니다. 자기는 인쇄업자인데 금감건설에서 홀로그램을 확인하고 승낙하면 돈을 받아서 주겠다고 합니다. 자기가 얼마나 급했으면 비행기까지 타고 와서 물건을 가지고 가겠느냐며 믿어달라고 합니다. 대만에선 저에게 의견을 물었고, 저는 당연히 열정과 성의를 봐서 주어야 한다고 했지요.

그렇게 물건을 들고 한국에 들어왔고, 공항에서 헤어졌습니다. 다음날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더군요. 하루 이틀 더 지나서 간신히 한 번 연결이 되었는데 바쁘다는 사람 위로의 말을 전했지 싶습니다. 그 이후 다시는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외부에 나갔다가 점심을 먹고 있는데, 음식점 벽에 거치된 TV 뉴스에서 금강제화 상품권을 위조한 범인 일부를 경찰이 체포했다는 내용과 홀로그램까지 위조했다는 멘트가 나왔습니다. 순간, ‘아니 이런?’ 그때서야 퍼뜩 정신이 들더군요.

사무실에 들어와 금강제화 본사에 전화를 걸어, 아무래도 그 홀로그램을 만드는데 제가 관여된 거 같다고 하고 상황을 물어봤습니다. 상품권이 시중에 풀리지 않아 회사 피해는 없고, 경찰에서 수사 중이니 나중에 연락이 갈 거라고 하였습니다.

오래지 않아 사복형사가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아마 내용은 다 파악을 했겠지만, 절차상 찾아온 듯했고, 질문에 사실대로 대답을 했습니다. 떠나기 전에 전두환이 자주 쓰던 ‘개전의 정’이 없어 보였거나, 범죄에 연루된 인간이 비굴하게 조아리지 않아서 그랬는지,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경제사범이 사회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지 아느냐?”며 위조지폐, 형량 등 어울리지 않는 협박성 언사를 남기고 나가더군요. 자기가 연락하면 경찰서로 와서 조서 작성을 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고.

그래서 경찰서에 가서 처음으로 조서를 작성했습니다. 조서는 제가 쓰는 게 아니라 형사 옆에 앉아서 묻는 거에 답만 하는 거였습니다. 컴퓨터가 보급된 지 얼마 안 돼서 그랬는지 형사도 나와 같은 독수리 타법인데 속도는 나보다 더 빨랐습니다. 모니터에 전에 사용했던 조서를 띄우고 이름 생년월일만 바꿔 치고, 내용 중간중간 지우고 내가 대답하는 내용으로 채웠습니다. 오래지 않아 출력한 조서에 서명하고 나왔습니다. 구로동에서 꽤 먼 동부경찰서였지요.

첨언 : 위조범들은 우리를 속이기 위해 필요로 하는 약 1x0.5cm 금강 로고 주변으로 불필요한 도안을 크게 넣었고, 로고 안의 작은 글씨 금감도 크게 확대를 하면 ㅇ과 ㅁ 차이가 불분명.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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