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시민교육>에서 배울 건 없을까

미국 학생들이 교실 수업에서 활동하는 모습(출처 : 구글 무료 사진)
미국 학생들이 교실 수업에서 활동하는 모습(출처 : 구글 무료 사진)

미국 <시민교육>의 하나인 ‘다문화교육’을 흔히 용광로(melting pot) 이론으로 설명한다. 모자이크 이론이나 샐러드 보울(salad bowl)이론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는 20세기 초 <시민교육>을 감당한 미국 공립학교가 확대되는 현상 내지 시대배경과 관련이 깊다.

1900년도까지 미국 내 공립학교는 미동북부 지역에 집중돼 있었고 남서부 지역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 1900년 전후로 거대한 이민 돌풍에 직면한 미국 정부가 수많은 이민자들을 미국적 가치를 지닌 ‘미국 시민’으로 정치사회화(미국화) 시키는 방편으로 공립학교가 크게 확대되었다.

그만큼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고 ‘미합중국’이라는 국가 명칭도 그렇듯이 미국 <시민교육> 역시 ‘미국 시민’으로 재탄생시키는 게 목적이었다. 그러면 미국 <시민교육>의 특징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미국 <시민교육>은 ‘교사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사실이다.

미국 공교육은 50개 ‘주 정부’의 고유 업무이자 권한이다. <시민교육> 역시 주 정부에 그 권한이 주어져 있다. 교육과정 구성에 대한 권한이 주 정부와 지방 정부 「교육위원회」(school board)에 있다. 「교육위원회」는 지역사회의 필요에 따라 교육과정을 결정한다. 필수과목으로 할지 선택과목으로 할지, 아니면 교과서를 사용할지 사용한다면 어떤 교과서를 사용할지 최소 요건을 결정한다. 다만 그러한 결정에도 불구하고 ‘학교와 교사의 자율성’이 존중된다는 점이다.

미국 <시민교육>은 대체로 「사회과」 교과에서 다룬다. 「사회과」 교과 명칭은 주마다 ‘사회과’(Social Studies), ‘시민학’(Civics), ‘정치’(Politics) 등 다양하다. 「사회과」의 목표는 미국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체득하고 정보 문해력(literacy)을 통해 시민적 교양을 쌓음으로써 사회에 적극 참여하는 시민을 양성하는 것을 지향한다. 다시 말해 권리장전과 미국독립선언, 헌법에서 강조된 미국적 가치인 자유, 정의, 평등, 사회적 합의라는 민주적 가치와 태도를 함양하는 데 교육의 목표를 두고 있다.

「전미 사회과 교육협회」(NCSS)가 제시한 교육과정 기준과 주 정부가 제시한 교육과정, 그리고 카운티 성취기준을 바탕으로 학교마다 <시민교육> 연간계획을 수립한다. 그러나 획일적이지 않고 학교와 교사의 자율성이 존중된다. 특히 미국 <시민교육>은 SAT 시험에 들어가질 않는다. 미국 내 학교사회에서 <시민교육> 교과는 대학입시와 직결되지 않은 만큼 주마다 수업에 편차가 있다.

 

* 미국 남녀 학생들이 선생님을 사이에 두고 다양한 학습자료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출처 : 구글 무료 사진)
* 미국 남녀 학생들이 선생님을 사이에 두고 다양한 학습자료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출처 : 구글 무료 사진)

또한 <시민교육>의 경우 교사가 특정교과서에 구애 받지 않고 가르친다. ‘미국시민교육센터’나 ‘헌법적 권리재단’ 등 비영리단체(NPO)나 비정부기구(NGO)가 만든 다양한 시민교육 프로그램을 활용해 재구성하여 가르친다. <시민교육>의 경우 ‘미국시민교육센터’가 제작한 교재, 『실천하는 시민』(Civics in Practice)를 제일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요컨대 <시민교육> 교과를 독립과목으로 할지 필수과목으로 할지 여부는 주 정부의 고유권한이다. 이러한 교육환경을 배경으로 미국 내 <시민교육> 관련교과의 운영에 대해선 학교와 교사의 자율성이 매우 높다. 교과서 또한 특정된 교과서가 없다. 따라서 교사는 <시민교육> 관련 교재를 자율적으로 재구성해 활용할 수 있다.

 

둘째, 미국 <시민교육>의 교육 효능감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시각이 존재한다.

미국은 90%가 넘는 고교생들이 1개 이상 <시민교육> 교과를 이수하도록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90년대부터 시작하여 지난 30년 동안 <시민교육>을 다루는 「사회과」와 「역사」 과목은 주당 평균 수업시수가 축소돼 왔다. 덩달아 <시민교육>을 다루는 관련 교과들을 고교 졸업을 위한 필수교과로 지정한 주 정부가 2018년 기준 43개 주로 나타나는 등 계속 줄어들었다.(2014년 기준 44개 주) 형식적인 것을 넘어서서 실질적으로 <시민교육>을 졸업 의무 규정으로 정한 주는 9개 주와 워싱턴DC라는 일각의 주장도 있다.

그러나 2019년 9월 현재 애리조나, 조지아, 인디애나, 아이오와 주 등 10개 주에서는 <시민교육> 교과를 이수했다는 인증을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캔자스, 켄터키, 조지아주 등 8개 주에서는 학교성과를 평가하는 지표로 「사회과」를 포함시키고 있다. 문제는 미국 <시민교육> 성취도가 낮다는 데 있다.

실제로 시민권 시험 합격이 졸업요건임에도 ‘숙달’ 수준의 지식을 갖춘 미국시민이 겨우 1/3에 지나지 않는다는 조사가 나온 것도 사실이다. 미국 청년들 투표율 또한 매우 저조한 것도 매한가지이다. 미국 <시민교육>이 연방정부나 주 정부가 의도한 ‘미국화’ 또는 ‘미국시민’ 만들기에 일정 부분 실패한 모습이다.

* 미국 고등학생들이 경기에서 성조기를 들고 응원하는 장면(출처 : 구글 무료 사진)
* 미국 고등학생들이 경기에서 성조기를 들고 응원하는 장면(출처 : 구글 무료 사진)

더구나 <시민교육> 이수 수준에서 미국 내 인종 간, 지역 간, 계층 간 격차가 두드러진 점은 <시민교육>이 실패하고 있다는 점을 더욱 명확하게 해주는 느낌이다. 심지어 학생들의 봉사활동 등 사회참여 역시 공동체와 연대의 정신으로 이루어지기보다 개개인의 스펙을 쌓기 위한 사회참여라는 위선적인 형태로 진행된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해 미국식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지식과 가치, 그리고 민주시민으로서 간직할 태도란 측면에서 과연 <시민교육>은 교육적 효능감을 발휘하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식 학생부 종합전형을 2008년부터 대학입시전형으로 도입, 적용해오고 있다. 이젠 학생부 종합전형이 대학입학 전형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등 대세로 굳어진 상황이다. 문제는 학생부 종합전형이 우리나라에서도 ‘입시=정보력’이라는 차원에서 계층 간 격차를 초래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비교과 활동조차 학종전형에서 개인 스펙을 쌓기 위한 -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생활기록부에 화려하게 기재하기 위한 – ‘교육’ 아닌 교육활동이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게 사실이다. 과연 ‘입시교육’ 의 이름으로 이러한 위선적인 행태를 방조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교육’ 현실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현실은 분명 가치가 전도된 현상으로 ‘교육’ 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미국 <시민교육>은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목표나 내용에서 북서유럽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니나 ‘실천’의 측면에서 차이가 크다. 미국 <시민교육>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와, 헌법, 그리고 미국 정치과정을 지식의 측면에서 이해하게 한다. 그 위에 비판적 사고와 함께 정치과정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책임감 있는 시민으로 참여하려는 시민적 기술을 강조한다.

그리고 민주시민으로서 중요한 태도인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과 책임 있는 독립적 시민으로 성장하기를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정치사회현안에 참여하는 시민적 태도를 함양하는 게 미국 <시민교육>이 지향하는 방향이다.

2018년 미국교육에 대한 브라운 센터 보고서도 <시민교육>의 구성요소로서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현재 발생하는 <이슈들에 대한 토론>과 <학생의 학교 협치 참여>, 그리고 <미디어 리터러시>와 <행동하는 시민> 등을 제시하고 있다.

<시민교육> 교과인 사회과목을 고등학교 3년 내내 의무교육으로 시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시민학’(Civics) 시험을 고등학교 졸업자격 시험으로 포함시킨 메릴랜드 주 몽고메리 카운티 공립학교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이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 중등교육과정에 해당하는 9학년 때 ‘미국 역사’를 학습주제로 제1차 세계 대전을 ‘제국주의’와 연관 지어 공부하면서 미국의 역할 변화를 학습한다. 나아가 냉전정치(1946-1963)를 공부하고 미국 시민권 전개과정(1946-1968)에 대해 탐구한다.

10학년에선 ‘국가, 주, 지방정부’를 학습주제로 사고력과 문해력을 평가하고 미국 정부의 구조와 권력에 대해 학습한다. 나아가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것과 정의 실현, 그리고 권리 보호에 대해 공부한다. 외교정책과 금융 리터러시에 이어 11학년이 되면 ‘근현대 세계사’를 주제로 글로벌 혁명, 글로벌 경쟁, 그리고 세계 재편성에 대해 공부한다.

요컨대 미국 <시민교육>은 미국 ‘정치’를 중심으로 프로젝트형 형성평가와, 분석, 그리고 논쟁적 글쓰기와 발표를 통해 비판적 사고를 간직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참여를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민교육>은 북서유럽과 달리 학생들이 정치사회현안에 적극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실천보다는 ‘토론’에 머물고 있는 게 미국 <시민교육>의 또 다른 특징이다.

해방 이후 미국 교육으로부터 거의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아왔고 오늘날도 학교운영위원회와 학생부종합전형 등 대학입학전형을 비롯해 미국 교육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다. <시민교육> 역시 학교교육과정이 이루어지는 장면에서 왜곡되거나 실천과 괴리된 채, 지식의 측면에 머물고 있는 점 또한 비슷하다.

주권자로서 정치사회 현안에 관심을 갖고 사회적 책임감을 바탕으로 능동적으로 참여하려는 ‘시민성’(citizenship)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시민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점 내지 우리교육이 직면한 한계를 절감한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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