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핀란드 교육개혁과 평생학습체제, 그리고 교육의 자주성과 교사의 자율성

* 이 기사 가운데 <핀란드 교육과정과 교과서> 부분은 교육부 민주시민교육 정책중점연구의 일환으로 진행된 서현수 교수(2019)의 「핀란드 학교민주시민교육의 교육과정 및 교과서 분석」을 참고해서 쓴 글임을 밝힙니다.

핀란드는 스웨덴, 러시아, 독일 등 외세의 통치 또는 지배를 받았던 나라이다. 더구나 러시아 혁명 직후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선포하자 좌우 진영으로 나뉘어 내전을 겪었다. 1918년 좌우로 맞선 핀란드 내전은 핀란드 사회 내부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특히 1930년대를 전후해 전 세계적으로 좌우 국가파시즘의 발호는 핀란드 사회에 또 다시 전쟁의 깊은 상처와 상실을 안겨다 주었다. 1939년 나치의 침공으로 소련과 두 차례 전쟁을 강요당했고 1944년 전쟁 막바지엔 나치 독일과 전쟁을 치렀다. 국제관계에서 피할 수 없는 약소국의 비애였다.

2차 대전이 끝나고 핀란드는 외교적으로 ‘중립’을 표방하며 평화정책을 추구하는 속에서 차츰 안정을 되찾아 갔다. 그러나 국경을 맞닿은 소련의 영향력이 여전해 핀란드 정세는 불안정한 상태 속에서 50년대 중반까지 총파업이 자주 발생했다.

그러다 1966년 사회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고 1968년 노사 대표들이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면서 핀란드 사회는 크나큰 전환기를 맞았다. 이른바 북유럽형 보편적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정책시스템이 제도화된 것이다. 좌우 진영 간 대결정치에서 벗어나 중도 좌우 정치세력 간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뿌리를 내렸다.

사민당 주도의 ‘타협의 정치’가 보편적 복지 국가의 기초를 다졌고 이러한 시대 배경으로 핀란드 교육개혁이 박차를 가했다. 1968년 「기초교육개혁법」(Act on Basic Education Reform)이 제정되면서 핀란드 교육개혁의 상징인 ‘종합학교’가 등장했다.

핀란드 학교 수업장면(출처 : 한겨레 자료 사진)
* 핀란드 학교 수업장면(출처 : 한겨레 자료 사진)

‘종합학교’ 교육시스템은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는데 만 7세 ~ 16세까지 청소년들을 의무교육 학제로 전국을 일원화한 것이다. 우리나라 초등과 중등 과정에 해당하는 청소년들에게 국가가 의무교육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종합학교’는 자방자치단체 소속 공립으로 2018년 현재 전국적으로 3,200개 정도 존재한다. 핀란드 내 초중등 사립학교나 국립학교는 2%에도 미치질 못한다. ‘

종합학교’ 입학하기 전 단계인 만 6세 어린이는 1년 동안 예비학교(pre-school)를 다닐 수 있다. 예비학교 교육과정은 발도르프 교육방식처럼 ‘놀이’를 통해 아이들 스스로 ‘배움의 기쁨’을 몸으로 알아간다. 교육비는 무료이고 학부모가 아이를 예비학교에 보낼 것인지 여부는 선택사항으로 자율에 맡겼다.

그럼에도 예비학교 등교 비율은 95%에 이르렀는데 2015년부터 선택이 아니라 필수 교육과정으로 바뀌었다. 국가가 제공하는 교육서비스가 학부모들의 높은 호응에 힘입어 교육복지 시스템으로 자리를 잡은 사례이다.

‘종합학교’를 졸업하면 청소년들은 인문계 고등학교와 직업학교를 선택해 상급학교로 진학한다. 교육비는 무상이지만 의무교육은 아니다. 2016년 통계에 따르면 ‘종합학교’ 졸업생 57,615명 가운데 52.7%가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42.5%는 직업학교로 진학했고 나머지 2.5%는 상급학교로 진학하지 않았다.

2001년 상급학교 미진학자가 7%에 달했던 것이 2016년 2.5%로 줄어든 것은 핀란드 학교 자체가 ‘행복발전소’로 성장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학교에 가서 ‘자기 스스로 성장하는 기쁨’을 맛본다.

학교 자체가 ‘배움의 장소’이고 ‘성장의 즐거움이 제공되는 장소’로 인식된 것이다. 고등학생 자녀가 말을 듣지 않을 때 핀란드 부모들은 자녀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말이 ‘정 그렇게 말을 듣지 않으면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는 위협 아닌 위협이라고 한다. 그만큼 청소년들에게 ‘학교=행복발전소’로 인식돼 있다.

우리나라에선 90년대 일본처럼 청소년들이 ‘배움으로부터 도망치는 현상’이 매년 반복되는 것과 너무도 차이가 크다. 사토 마나부 교수(도쿄대)의 표현처럼 배움이 아이들에게 ‘학문하는 즐거움’과 ‘자기 성장의 기쁨’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교육의 경우 2019년 1년 동안 초중고 52,261명 청소년들이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고 학교 바깥으로 나갔던 현실과 비교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교육통계서비스, 2020)

핀란드 고등학교는 무상교육이고 담임교사가 없다. 고교 학점제 운영 방식이다.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학습계획에 따라 학점을 이수하면 졸업이 가능하다. 인문계 고등학교든 직업학교든 학점을 이수하면 졸업한다. 고교 졸업 후 고교성적과 대학입학자격시험, 그리고 대학별 시험 성적을 통해 대학에 진학한다. 인문계고등학교나 직업계고등학교 계열과 무관하게 일반대학과 응용과학대학에 교차 지원이 가능하다.

대학입학자격시험에선 핀란드 <학교민주시민교육>과정인 <사회>과목이 선택과목으로 치르는데 모두 논증을 요구하는 수준 높은 논술형 시험이다. 대학교육 역시 모두 무상으로 제공된다. 대학생들의 경우 교통비와 식비도 일부 국가가 제공한다.

* 논술형으로 시험을 치는 핀란드와 달리 우리나라는 객관식 5지 선다형 수능시험을 친다(출처 : 교육부)
* 논술형으로 시험을 치는 핀란드와 달리 우리나라는 객관식 5지 선다형 수능시험을 친다(출처 : 교육부)

핀란드는 1994년 성인 직업 교육개혁을 통해 「평생학습체제」를 확립한 나라이다. 스웨덴처럼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수준 높은 시민교육을 국가가 나서서 정책적으로 장려한다. 1899년 시민교육을 최초로 시행한 이래 오늘날 핀란드에는 184개 지역 시민교육센터가 존재한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프라를 구축한 공공도서관을 운영하는 나라이다. 그런 만큼 세계 최고 수준의 도서관 이용률과 대출권수를 자랑한다.

이 또한 ‘탐파레(Tampere) 노동자 시민교육센터’와 관련이 깊다. 핀란드 근대산업의 발상지이자 노동운동의 중심 도시 ‘탐파레’에 1899년 핀란드 최초로 시민교육기관인 ‘탐파레 노동자 시민교육센터’가 세워졌다. 핀란드 민주시민교육의 요람이자 오늘날도 높은 수준의 교육프로그램을 개설해 핵심적인 시민교육센터로 기능하고 있다. 봄, 가을 매학기 약 1,100개에 이르는 교육프로그램이 개설돼 국제사회 이슈와 현대사회의 복잡한 현안에 대해 시민들이 비판적인 안목으로 접근하도록 도와준다.

자, 그렇다면 핀란드 <학교민주시민교육> 과정을 살펴보자. 핀란드 <학교민주시민교육>은 프랑스처럼 따로 특정화된 교과가 존재하는 게 아니다. 교과서는 프랑스처럼 자유발행제이고 프랑스처럼 교과서 출간과 선택, 그리고 교과서 없이 수업하는 것 또한 모두 교사의 자율에 맡긴다. 우리나라처럼 국가가 교과서 집필기준을 제시하고 내용을 검정하는 방식이 아니다.

전문가와 교사가 함께 언론기사, 만화, 사진 영상자료, SNS자료 등 다양한 학습 자료를 통해 학생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생각하게 만들며 토론하도록 구성돼 있다. 인구가 적은 만큼 교과서 출판시장이 협소해 난립한 모습은 아니지만 꽤 우수한 교과서를 교사들이 만들어 낸다. 물론 학교에서 교과서 채택여부나 수업시간 활용 여부는 교사 자율에 맡긴다.

주로 사회과목에서 <민주시민교육>을 담당하고 나머지 국어부터 예술, 체육까지 모든 교과에 민주시민교육과정 요소와 내용이 실핏줄처럼 스며들어가 있다. <민주시민교육>과정은 국가교육위원회를 통해 국가교육과정에 포함된다. 국가교육위원회는 1985년에 최초로 국가교육과정을 수립했는데 거의 10년 주기로 국가교육과정을 수립해 배포한다.

핀란드 국가교육과정 수립 과정을 설명하는 국가교육위원회 마르요 라사넨 박사.(출처 : 서현수, 한겨레 자료사진)
핀란드 국가교육과정 수립 과정을 설명하는 국가교육위원회 마르요 라사넨 박사.(출처 : 서현수, 한겨레 자료사진)

교사노조, 지자체, 교육학자, 학생(청소년단체), 학부모단체, 학교 등 정책전문가 내지 정책이해관계자들 간 논의 끝에 국가교육과정을 수립해 오고 있다. 다시 말해 교사와 고등학생 대표들이  국가교육과정 수립에 직접 참여한다. 따라서 400-500쪽에 이르는 국가교육과정은 교육주체들 간 오랜 논의와 숙의 끝에 완성되는 핀란드 교육활동의 기본계획서인 셈이다. 우리나라처럼  교사와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채 만들어져 학교현장에 일방적으로 내려보내는 국가주의 관료행정과는 차원이 다르다.  

1985년 처음 수립된 국가교육과정은 1994년, 2004년, 2016년 개정을 통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다른 서방 선진국과 달리 국가교육과정이 거의 500쪽에 이르는데 거기엔 학교교육이 추구하는 공통의 가치와 교육목표, 학교교육활동을 위한 일반원칙이 자세히 서술돼 있다.

2016 개정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제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 종합적 사고와 창의적 문제해결능력을 중시하는 등 역량을 중시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융합적 사고를 중시하면서 기후 위기와 지속가능한 환경, 미디어와 정보 리터러시, 유럽난민문제, 정치참여, 노동과 기업가정신 등 주제별 테마 수업을 통해 학생참여를 유도하는 게 특징이다. 교과목 간 연계와 상호 협력에 기초하고 있는 「핀란드 2016 교육과정」에서 중시하는 7대 역량은 아래와 같다.

① 생각하기와 배우는 것을 배우기

② 문화적 역량, 상호작용과 표현

③ 참여와 영향, 지속가능한 미래구축

④ 다중문해력(Multi-literacy)

⑤ 정보통신기술(ICT) 역량

⑥ 노동세계의 역량과 기업가정신

⑦ 자신과 타인의 돌봄, 일상생활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학교민주시민교육> 내용이 상대적으로 잘 드러나 있는 핀란드 ‘종합학교’ <사회> 과목과 고등학교 <법률> 과목의 목차를 일부 살펴보면 7대 역량을 강화하고 있는 교육과정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래 내용은 <교과서 내 주제별 목차>를 열거한 것이다.

① 핀란드 내의 이민자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다양한 핀란드

② 쾌적한 환경, 안전한 삶, 기후변화와 사회, 생태적 일상은 작은 선택들이다

③ 미디어 세계, 미디어 모든 것을 믿지마, 우리의 미디어

④ 네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영향력 있는 주체로서의 시민, 「정치-이상한 게 아니야!」

지방자치단체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의회-시민들의 미니어쳐, 선거와 투표,

핀란드는 유럽연합(EU)에 속해 있다

⑤ 어린이의 권리, 우리에게는 또한 책임이 있다, 복지국가에서의 삶,

다양한 사람 다양한 관계, 어린이 최우선, 우리에게는 권리가 있다,

⑥ 이성적으로 소비하기, 기업가정신과 서비스, 노동생활에서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지 않는다,

실업과 실업대책, 노동과 노동계약, 단체 활동에 관심이 있는가, 환경권, 공공정부

⑦ 소비자 보호, 임대주택에 살까?, 범죄수사로부터 재판으로, 갈등사안들-법원에서 만납시다

우리나라 중학교에 해당하는 핀란드 ‘종합학교’ 상급반(7학년-9학년) <사회> 과목 교과서에는 ‘시민은 신민(臣民)이 아니다’ 는 문장이 나온다. 나아가 시민은 정치 사회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와 동시에 EU시민으로서 EU의회 선거에 투표할 권리가 있다고 서술돼 있다.

기본권은 핀란드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며 지방선거에서는 비록 다른 나라 시민들조차 일정한 제한 속에서 투표할 권리인 선거권과 선거후보가 되는 피선거권을 지닌다고 기술돼있다.

나아가 ‘종합학교’ 상급반(7학년-9학년) 교과서엔 나이별로 권리와 의무를 명기하고 있다. 14세가 되면 방학 동안 가벼운 노동을 할 권리가 주어지고 15세가 되면 보호자 동의를 조건으로 노동계약을 맺을 권리가 있음을 교과서에서 가르쳐주고 있다.

「평등한 사회」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핀란드 헌법 제6조 2항을 근거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실현되는 사회를 「평등한 사회」라고 쓰고 있다. 그밖에 여성이 어머니라는 이유로 구직활동에 차별을 받아서도 안 되며 구직활동에서 차별은 ‘범죄’이고 재판으로 처벌 받을 수 있다고 쓰고 있다.

장애인 또한 모든 장소로 이동과 접근 권한이 있음을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심지어 동성커플이 불안해하지 않고 서로 손을 잡은 채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사회가 「평등한 사회」라고 기술하고 있다. 한 마디로 ‘차별이 없는’ 「평등한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핀란드 교과서는 구체적인 상황과 장면을 명확히 제시하며 가르쳐 준다.

핀란드 <사회> 교과서 문장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대목은 난민센터가 특정 지역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님비(NIMBY)현상조차 ‘차별’이라고 쓰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학생들에게 어떤 종류의 차별이 학교와 친구들, 그리고 취미활동 가운데서 발견돼 왔는지 구체적으로 성찰하게 하면서 ‘핀란드가 평등한 모범국가’라는 명제에 대해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자신의 논거를 제시하라고 성숙한 시민으로서 과제를 던져준다.

핀란드는 인구 550만 명, 국회의원 200명인 지구상 최상의 복지국가이자 한때 노키아로 강소국가였다. 2011년 이후 노키아가 흔들리고 신자유주의가 핀란드 사회를 조금씩 잠식해 들어갔음에도 핀란드는 여전히 교육선진국이자 문화선진국임에 틀림없다.

<민주시민>교육이 학교교육과정에서 여실히 관철되고 매년 184개에 이르는 <노동자 시민교육센터> 평생학습체제를 통해서 핀란드 시민들은 수준 높은 정치의식과 사회참여의식을 간직하고 있음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핀란드에는 현재 13만 5천개에 이르는 NGO가 존재한다. 회원수가 모두 1500만 명이니 핀란드 시민 한 명당 평균 3개 시민단체에 가입돼 있을 만큼 NGO활동에 열정적이다.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노르딕 국가들(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웨덴)이 풍요로운 복지생활을 누리면서도 제3세계에 대한 해외 원조에서 미국, 일본을 두 배 이상 제치고 선두그룹을 형성한 것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아가는 모습 모두 <민주시민교육>의 결실인 셈이다.

다시 ‘종합학교’ 상급반(7학년-9학년) <사회>교과서 20장에 나와 있는 「정치-이상한 것이 아니야!」를 살펴보자.

그 교과서엔 핀란드 정당들을 좌우 이념으로 구분한 뒤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우파 정당들을 ‘부르주아 정당’이라고 명명하면서 <국민연합당>, <중앙당>, <기독민주당>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파정당들은 개인의 삶이나 경제활동에서 국가의 간섭을 싫어하고 개인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기업경영에서 개인에게 보상이 주어질 것을 강조한다.

반면에 좌파정당들은 국가의 역할을 의료, 교육 등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자 소득불평등에 반대하며 경제활동에 규제를 가하는 존재로 규정한다. 그리고 현재 핀란드 좌파정당으로 <사민당>과 <좌파동맹>을 소개하고 이들의 뿌리가 ‘노동운동’에 있음을 교과서에 서술하고 있다. 나아가 중도정당으로 <핀란드 중앙당>과 <녹색당>을 소개하고 있다.

심지어 각 정당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핀란드인당>을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당’으로 간주한다고 스스럼없이 기술한 점이 그러하다. 각 정당을 학생들에게 사실적으로 소개하되 객관적 관점을 잃지 않으면서 적극적으로 가치판단을 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핀란드 사회가 중산층이 두터운 복지국가로 발돋움하면서 좌우 정당들이 정책과 강령을 통해 서로들 닮아간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럼에도 유권자인 핀란드 시민들은 비판적 사고와 높은 정치의식을 동원해 이들 정당 간 미세한 차이를 날카로운 안목으로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교과서 20장(「정치-이상한 것이 아니야!」)의 말미에 ‘역동적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요구한다.’ 는 사실을 특별히 ‘기억할 내용’으로 명기하고 있는 게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핀란드 <학교민주시민교육>에서 특기할 점은 교과서에서 다양한 얼굴을 지닌 미디어에 대해 상세하게 분석한 서술내용이다. 미디어가 현대사회 권력의 ‘감시견’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권력’이 되어 「제4부」로 불리기도 한다고 쓰고 있다.

다시 말해 미디어는 특정 사안에 대해 많은 관심과 지면을 할애하는 반면에 다른 사회현안에 대해선 관심조차 주지 않거나 보도를 아예 하지 않음으로써 미디어 스스로 ‘현실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디어가 얼굴 없는 존재이지만 그 배후에는 자신들의 목표와 가치,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정향을 지닌 개인들이나 기업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통찰해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 가짜뉴스 앞에서 맹목적인 태도로 기사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는 민주시민으로서 심각하게 문제가 된다고 밝히고 있다.

즉 ‘미디어 리터러시’를 간직한 건강한 시민들로 성장할 것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그 점을 교과서엔 이렇게 서술하며 결론을 맺고 있다. “미디어가 던져주는 메시지가 ‘유일한 진실’이 아니라 ‘사건의 해석’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생각하건대 핀란드에선 학생들의 사회참여나 정치활동이 학교 울타리를 넘어설 수 있도록 학교와 지방자치단체(국가)가 적극 권장한다는 사실이다. 청소년들은 학교자치회 활동 이외에도 ‘청소년 위원회’나 ‘청소년의회’ 활동을 하는데 ‘청소년위원회’는 지자체장이나 지방의회와 소통하고 교류한다.

2019년 7월18일 핀란드 민주주의 축제인 ‘수오미 아레나’에서 정당 청년 조직 대표들이 토론하는 모습.(출처 : 한겨레 자료 사진)
2019년 7월18일 핀란드 민주주의 축제인 ‘수오미 아레나’에서 정당 청년 조직 대표들이 토론하는 모습.(출처 : 한겨레 자료 사진)

특히 지자체는 핀란드 ‘청소년위원회’가 제안한 정책이나 의견을 적극적으로 정치현실에 반영한다. 그런 만큼 핀란드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만큼 지역사회가 변화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면서 성장한다. 따라서 핀란드 청소년들은 정당의 청년조직에 가입할 뿐만 아니라 불온할 정도로 현실 정치적이다.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기후변화회의> 당시, 핀란드 고등학생들은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세계 정상들을 향해 서명을 촉구하는 천막농성을 전개했다. 중국의 후진타오, 미국의 오바마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2019년 12월 30대 산나 마린 여성 총리와 여성 당수, 그리고 30대 장관들이 다수 배출되는 게 핀란드 정치현실이다. 모두 <학교민주시민교육>의 자연스러운 결실인 셈이다. 일찌감치 <학교민주시민교육>을 통해 정치적 존재로 성장하고 정치활동을 일상에서 경험한 덕분이다.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 2019년 12월 연정내각 장관들을 발표하는 산나 마린 핀란드 여성 총리(출처 :  한겨레 자료사진)총리와 장관들이 30대 여성들인 것이 특징적이다.
* 2019년 12월 연정내각 장관들을 발표하는 산나 마린 핀란드 여성 총리(출처 : 한겨레 자료사진)총리와 장관들이 30대 여성들인 것이 특징적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할까?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청소년의 ‘교실 내 토론의 개방성’ 수준이 조사대상국 24개국 가운데 꼴찌이다.(2016년 청소년 정책연구원 보고서) ‘교실 내 토론 개방성’ 수준은 평등한 학교문화와 토론 문화, 바로 <학교민주시민교육>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우려스럽다. 부끄럽게도 학교교육에서 ‘비판적 사고 교육’은 140개 국가 중 90위에 멈춰서 버렸다(세계경제포럼, 2018)뿐만 아니라 시민활동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비율 역시 최하위 수준이다.

사회적 연대의 기초가 되는 ‘관계지향성과 사회적 협력’부문, 그리고 ‘더불어 사는 능력’ 점수에서도 우리나라 청소년은 0점으로 OECD 36개국 가운데 36위였다. 높은 교육열과 치열한 입시경쟁교육은 민주시민이 간직하고 추구해야 할 덕목인 ‘협력과 연대의 정신’을 최하위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핀란드를 비롯해 OECD 평균 투표율이 70%인데 반해 우리의 총선 투표율은 50% 초중반에 머문다. 결코 우리의 민주주의가 건강하다고 볼 수 없는 대목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대목은 한국 사회 내 차별과 편견, 혐오에 기반한 사회갈등지수가 OECD 34개국 중 멕시코, 터키 다음으로 매우 높다는 점이다(한국경제연구원, 2016) 거꾸로 사회통합지수는 OECD 회원국 가운데 29위에 머물렀다. 거의 하위권 수준이다. 사회갈등에 따른 국민 1인당 손실액은 연간 900만원에 이르고 국가 전체로 246조원에 이른다는 천문학적인 연구추정치도 있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7)

이젠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할 시기이다. 학교 교육 역시 타인을 배제하는 ‘경쟁교육’의 시대를 더 이상 지속해선 안 된다. ‘경쟁교육’을 끝내고 ‘협력교육’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올해가 <학교민주시민교육>의 원년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 2020년 7.22에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열렸던 <학교민주시민교육> 토론회 포스터(출처 : 강민정 의원실)
* 2020년 7.22에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열렸던 <학교민주시민교육> 토론회 포스터(출처 : 강민정 의원실)

다가오는 미래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창의력과 상상력, 비판적 사고와 통섭적 사고, 그리고 주권자로서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하는 주체적 삶이다. 그러한 자주성을 바탕으로 타인과 공존하려는 연대와 협력, 공동체성이 발휘될 수 있다. ‘민주시민’은 저절로 탄생되지 않는다. <학교민주시민교육>을 통해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길러낼 때 주권자로서 비판적 사고를 지닌 ‘민주시민’을 만날 수 있다.

* 2018년 10월 27일 서울 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국민주권시대 학교민주시민교육의 현황과 과제> 학술대회에서 축사하는 유은혜 교육부장관(출처 : 하성환)
* 2018년 10월 27일 서울 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국민주권시대 학교민주시민교육의 현황과 과제> 학술대회에서 축사하는 유은혜 교육부장관(출처 : 하성환)

식민지 시절부터 100년 넘게 지속돼온 <학교통제정책>을 즉시 폐기하고 교사와 학생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학교민주시민교육>을 뿌리 내릴 시기이다. 이를 위해 핀란드처럼 ‘장학감사제도’를 전면 폐지하고 교사를 ‘감시와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눈길을 당장 멈춰야 한다.

핀란드 사회에서 교사들은 연구와 연수가 강제사항이거나 의무가 아님에도 자율적으로 거의 100% 교사들이 열정적으로 연구하고 연수에 참여한다. 교사로서 당연한 직업윤리이자 소명의식이기 때문이다.

또한 핀란드 교사들 대부분 노동조합에 가입돼 있다. 무려 95%가 「핀란드교원노동조합」에 가입돼 있다. 50만 교사 가운데 전교조(5만), 교원노조연맹(3만 5천) 등 8만 5천명(17%)만 노조에 가입돼 있는 우리나라와 비교되는 장면이다.

핀란드 교원노조는 핀란드 교육정책 결정 초기 단계부터 깊숙이 개입한다. 교원노조를 배제한 채 핀란드 교육부가 정책을 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해마다 차등성과금을 동원해 천박한 ‘교원평가’를 강제하는 우리현실과 다르다. 그런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전교조의 항의시위를 핀란드에선 찾아볼 수 없다. 정책 초기 단계부터 대결보다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고 협력하여 정책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 2020년 7월 2일 인천교육청 앞에서 교원능력개발평가 시행 철회를 촉구하는 전교조 인천지부 기자회견(출처 : 전교조)
* 2020년 7월 2일 인천교육청 앞에서 교원능력개발평가 시행 철회를 촉구하는 전교조 인천지부 기자회견(출처 : 전교조)

핀란드 교육부나 지방정부 모두 교원노조를 존중하며 정책 실무단계에서 긴밀히 대화하는 풍토가 일상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육문제 전문가인 교사들과 교육자들이 핀란드 국회에 진출하여 국회의원 가운데 10%를 차지하고 있다.

핀란드는 교사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존경심이 매우 높다. 그리하여 교직에 대한 선망 또한 높아 매년 경쟁률이 10:1에 이를 정도이다. 핀란드 교육만큼 핀란드 교사양성체계에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이다. 이 모든 현상이 ‘교육의 자주성과 교사의 자율성을 극대화한 결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점이 우리가 핀란드 <학교민주시민교육>에서 얻게 되는 소중한 교훈이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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