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

1995년 문민정부 시절 ‘민주시민교육학회’가 출범했다. 그리고 15대 국회(1996)부터 20대 국회(2016)까지 무려 20년 동안 ‘민주시민교육지원법안’이 6차례 입법 발의되었다. 그러나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지도 못한 채, 매번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되었다. 그렇게 답답한 시간이 20년도 넘게 흘렀다.

▲ <학교 민주시민교육 토론회> 포스터(출처 : 하성환)
2019년 7월 22일 국회 의원회관 제2 세미나실에서 2022년 교육과정 개정을 앞두고 <학교민주시민교육의 진로와 향후 입법과제>에 대한 토론회가 강민정 의원(열린민주당), 박찬대 의원(더불어 민주당), 권인숙 의원(더불어 민주당) 주최로 열렸다.

올해 21대 국회에서 남인순 의원은 20대 국회에 이어 ‘민주시민교육지원법안’을 다시 입법 발의했다. 다행히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에 상정되었고 9/10일 법안소위에 회부되었다. 더불어민주당 180석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그와 함께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학교민주시민교육법안’도 교육위에 상정돼 역시 8/25일 법안심사 소위에 회부되었다. 바야흐로 대한민국도 ‘민주시민교육’이 전개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미 북서유럽 선진국에선 ‘민주시민교육’을 학교교육을 통해 제도화하였고 지역 사회에서 실천해 오고 있다. 독일은 ‘정치교육원’이 연방 차원에서 그리고 주 정부 차원에서 설치돼 시민들을 대상으로 일상에서 ‘민주시민교육’을 담당해 오고 있다.

북서유럽 각국에서 학교교육을 통해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하기 시작한 시대배경은 이러하다. 1980년대 들어 이민자 증가에 따른 인종 혐오, 청년 계층의 정치적 무관심과 낮은 투표율, 그리고 청소년 범죄의 증가와 만연한 극우 성향의 정치세력이 정치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었다. 그리하여 북서유럽 각국은 ‘민주시민교육’(독일은 ‘정치교양’)을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하여 학교교육을 통해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OECD 가입국가 가운데 영국, 아일랜드, 스웨덴, 핀란드, 독일, 프랑스 등 22개 국가에서 민주시민 교과를 중핵교육과정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게 오늘날 국제사회 현실이다. 영국은 1998년 노동당 토니 블레어 정부 시절, ‘민주시민교육’을 권장한 보고서를 채택했다. 바로 ‘민주주의를 위한 교육과 학교에서 민주주의 가르치기’ 보고서, 일명 ‘크릭보고서’를 채택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민주시민교과를 독립교과로 개설해 20년 가까이 민주시민교육을 실천해 오고 있다. 그 결과 청소년 범죄가 확연히 줄어들었고 청년 투표율이 오르는 등 정치적 태도에 일견 의미 있는 변화를 일궈 내고 있다. 미국 또한 2014년 기준 44개 주에서 시민교과(Civics)를 필수과정으로 가르치고 있다.

반면에 한국 사회는 OECD 국가 가운데 ‘청소년 주관적 행복지수’와 ‘사회적 상호작용’ 내지 ‘협력’부분 최하위를 기록하였다. ‘더불어 사는 능력’과 ‘관계지향성’ 역시 OECD 36개국 가운데 35위~36위로 최하위에 위치해 있다. 1993년 교육부 발간 장학자료(제96호)에서 표현한 대로 “학교교육의 성패 여부는 궁극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의 성패여부와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학교교육을 통해 제도적으로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을 하지 못한 참담한 결과였다.

결국 거기엔 교육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 교육활동은 있었으나 교육이 부재한 현실이 수십 년 지속돼 온 것이다. 교육의 목적과 어긋난 입시교육, 출세주의 경쟁교육에 학교가 밑으로부터 그리고 환경적으로 포획된 탓이다.

실제로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에서 사용하는 ‘시민교육’ 교과서 목차와 우리나라 중고교 사회과와 도덕윤리과 교과서 목차를 비교해 보면 그 제목에서 확연한 차이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독일과 프랑스 ‘시민교육’ 교과서 목차 사례 몇 가지를 열거해보자.

“공화국의 가치, 차이와 차별의 사례, 성차별‧인종주의‧반유태주의 거부, 인종주의가 없는 학교 만들기, 차별에 맞서 싸울 수 있는가, 인종주의 반대 포스터 만들기, 연대와 박애 정신, 교실과 학교생활에서 규칙, 어린이의 인권과 사법적 지위, 민주적 참여와 책임, 유럽적 시민성, 고등학생 권리와 의무,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은 가능할까, 정보의 출처, 유튜브는 충분한가,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더 많은 민주주의를 이끌어 낼까, 극단주의와 인종주의는 민주주의를 얼마나 해치고 있는가, 청년 극우주의자의 범죄행위에 어떻게 행동할까,

지구 온실, 자동차와 기후, 자동차 산업은 환경보호의 적(?), 기후변화, 에너지 이용을 신중하게 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할까, 온난화 대책의 미래 전망,

전형적인 여성 직업, 남성 직업 -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 왜 국가는 시장에 개입할까, 난민위기, 세계화의 명암, 근로의 권리와 노동조합, 정당 가입, 노동세계에서 동등한 권리, 단체와 연대하기...”

우리나라 중고교 사회과와 도덕윤리과 교과목 목차는 대체로 개인윤리와 가정윤리가 중심이고 공동체 윤리는 비중이 약한 편이다. 몇 가지 목차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사회화와 청소년기 특징, 민주정치와 정부형태, 근로자의 권리와 보호, 선거와 선거제도, 지방자치와 시민 참여, 기업의 역할과 사회적 책임” 등 개념적 지식 중심으로 교과목이 구성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 2020년 7월 22일 국회 의원회관 제2 세미나실에서 열린 <학교민주시민교육법> 입법 관련 토론회에서 김원태 소장(학교시민교육연구소)이 발제하는 장면(출처 : 하성환)

그러다 보니 지식과 태도의 분리, 이론과 실천의 괴리, 가치와 행동의 분열을 낳거나 앎과 삶이 일치되지 않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선거와 선거제도를 지식의 측면에선 암기하지만 실제 한국 사회 총선 투표율은 50~60%대에 머문다. 북서유럽 선진국 투표율 70%~80%와 확연히 차이가 난다.

프랑스 중학생들은 학교교육을 통해 왜 노동조합에 가입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배운다. 시민 사회단체와 어떻게 연대하는지도 학교교육을 통해서 배운다. 심지어 사용자와 단체 교섭하는 기술도 학교교육을 통해 배운다. 우리나라 학교교육에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프랑스 시민교육 교과서와 한국 사회 2015개정 사회과 교과서를 〘노동교육〙의 내용 측면에서 비교해 평가한 결과, 프랑스 교과서는 91.82점을, 한국 교과서는 18.38점을 받았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노동의 소중함과 노동자의 권리, 노동자의 자긍심을 심어주기보다 지배자인 자본의 시각에서 교과서 지식을 외우고 시험 치며 성장한다.

이러할진대 한국 사회 일각에선 주권자 의식에 기초해 걸음마 단계인 ‘민주시민교육’을 마치 ‘좌파교육의 온상’인 것처럼 매도한다. 국회의원회관 같은 공간에서 토론회를 개최하며 ‘민주시민교육지원법안’이나 ‘학교민주시민교육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도록 학술대회 형식을 빌려 여론전으로 맞대응하는 형국이다. 20-30년 전 선진국에서 실천해 온 것처럼 한국 사회도 일찌감치 ‘민주시민교육’을 법적으로 제도화하여 체계적으로 가르쳤어야 했다. 늦어도 너무 늦은 것이 한국 사회 ‘민주시민교육’의 실상인 것이다.

▲ 민주시민교육지원법 입법 발의에 대응하여 보수단체에서 개최한 토론회 포스터(출처 : 장은주 교수)
 민주시민교육지원법을 반대하는 토론회가 정경희 의원(국민의 힘)과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 교수 모임(정교모) 공동 주최로 공교롭게도 국회 의원회관 제2 세미나실에서 개최되었다.

그러함에도 한국 사회 후진적인 정치상황 속에서 매번 기회를 놓친 것을 21대 국회 들어서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시민교육을 펼쳐보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30년 가까이 추진해온 ‘민주시민교육’ 관련 법안들을 낡은 이념의 색깔을 덧씌워 ‘좌파교육’ 이니 ‘이념 편향교육’이니 하면서 매도하는 게 과연 온당한 태도인지 참으로 황당한 상황이다.

비판적 사고와 독립된 인격적 주체로서 주권자 의식을 갖춘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자는 ‘민주시민교육’이 왜 좌파교육인가? 우리나라 교육기본법 제2조(이념)에는 교육의 목적을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것을 명문화하고 있다. 1993년 교육부에서 발간한 『민주시민교육 지도자료』에도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만일 교육은 잘 되었는데 민주시민교육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교육의 개념을 오도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민주시민자질의 함양에 있다. 모든 것에 성공하고 이 점에 실패했다면 그것은 교육 전체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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