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嘉義 공원의 진달래. <杜鵑>이라는 팻말이 있습니다.
대만 嘉義 공원의 진달래. <杜鵑>이라는 팻말이 있습니다.

더글러스가 한국에서 거주하며 회사로 출근하기 위해서는 투자회사인 대만의 光群雷射의 파견 직원 신분이어야 하고, 중국의 여자 친구가 한국에 들어오려면 더글러스와 법적인 결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느 시대나 다 그러하듯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욱 잘 사는 나라로 가기를 열망합니다. 당시 중국 여자들도 대만은 먹고 살 걱정이 없는 땅, 그리고 가장 쉽게 또 편안한 마음으로 가고 싶은 곳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만에서는 꽤 까다롭게 사실혼 관계를 증명하는 서류와 결혼증명 사진도 요구한다고 했습니다.

중국에 들어간 더글러스는 먼저 여자(L)의 부모로부터 결혼 동의를 받아야했습니다. L은 북경의 배후도시이며 발해만을 끼고 번창한 톈진(天津)시의 톈진 대학 영문과를 나온 준 천제더군요. 내가 그 대학을 잘 모르자 중국에서 서열 7위 안에 들어가는 명문이라며 설명을 덧붙여주었습니다.

천진에는 L의 큰아버지가 살고 있고, 부모님은 왕복 3~4일이 걸리는 내륙지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에는 연안 도시인 톈진, 상하이, 광동, 선전 등과 내륙의 빈부격차는 설명하기 곤란할 정도로 다른 세계였지요.

무남독녀 외동딸인 L은 그런 산간벽지에서 명문대 영문과를 졸업한 재원이었으니 부모의 기대가 얼마나 컸을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졸업하자마자 대만의 유명 대기업에 취직까지 하였으니 그야말로 자랑거리이자 자부심이었겠지요.

그런 전도양양한 딸이 갑자기 어머니와 나이 차이가 비슷하고 이혼까지 한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했으니 누가 반기겠습니까?

그 두 사람의 결혼을 성사시킨 사람은 톈진의 큰아버지라고 했습니다. 큰아버지가 동생 부부에게 “자네나 나나 딸아이보다 똑똑하냐? 공부를 많이 했냐? 어려서부터 L이 살아온 길이 잘못됐냐? 선택이 틀린 적이 있느냐?”며 설득을 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고 중국에서 혼인신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법적인 절차를 모두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어린 신부 L과 더글러스는 사무실 가까이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합니다.

두 사람 모두 한국에서의 생활을 행복해하였습니다. 특히 더글러스는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한국에 들어와 경제적인 혜택도 더 받았다고 좋아했지요. 월급 외에도 내가 대만과 다른 사업을 하면서 도움을 받으면 그 이윤을 나누었습니다.

더욱더 놀라웠던 일은 본인 스스로도 포기하고 있었는데 마흔을 넘긴 나이에 L이 임신을 하였습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대만과의 합작회사 경영이 순조롭지 못했고, 더글러스가 몹시 힘들어했습니다. 나를 돕겠다고 한국행을 선택한 더글러스의 고통에 책임감을 느꼈고, 머지않아 태어날 아이까지 그들 가정의 미래가 더 좋아지길 바랐습니다.

그동안 사업을 한다며 손댔던 등산장비나 스틸 볼, 홀로그램 등이 모두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면서 사업에 대한 자신감이 지나쳤던 시절이었지요. 주변에서는 재야 무역학교 교장이라거나 미다스의 손이라고 과장되게 칭찬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었으니 우쭐하는 마음도 있었고요.

그래서 더글러스에게 중국에서 사업할 아이템을 찾으라고 했지요. 우리가 함께 중국시장에 들어가면 기회가 훨씬 많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더글러스가 중국시장에서 사업할 물건으로 찾은 것이 글리터(Glitter) 생산 기계입니다. 글리터는 작은 반짝이로 PET 필름으로 만듭니다. 장신구, 문구, 매니큐어, 화장품 등 다양한 곳에서 사용을 합니다. 기존의 글리터는 필름을 가로와 세로로 잘랐습니다. 즉 4각이지요. 필름을 여러 장 겹쳐서 작두와 같은 원리로 자르면 크기도 일정하지 않고 버려야 하는 부분도 많이 생깁니다.

더글러스가 찾은 기계는 경기도 모처에서 독일의 글리터 기계를 모방하여 제작하였다고 합니다. 벌집 구조로 필름을 절단하게 되어 글리터가 5각형이 됩니다. 거의 원형이지요. 손실 없이 필름이 죽 들어가면서 다양한 크기의 글리터로 자를 수 있는 기계였습니다.

4각 글리터가 피부에 닿으면 절단된 모서리 면이 날카로워 상처가 납니다. 그래서 원형 글리터가 필요했습니다. 5각 글리터 생산 기계를 중국에 소개하자 관심을 보이는 업체의 구매량을 보니 백여 대가 넘었습니다.

한국 공장 사장에게 중국에서 이 기계 위조품이 얼마나 지나면 나올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2년 안에는 절대로 나올 수 없다고 장담합니다.

그래서 아주 소박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중국에 들어가서 회사를 설립하고 우선 2년 안에 글리터 기계 200대만 팔아서 그 자본으로 13억 중국 시장을 한번 누벼보자!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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