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을 사는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집니다. 그중에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거나 소식이 없어도 항상 곁에 있는 느낌의 친구가 있지요. 그런 친구 더글러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대만이야기에서 이미 언급한 적이 있는지 모르지만 어떤 사람의 됨됨이를 알려면 그 친구를 보라는 말이 있고, 그 말은 상당히 신뢰할 만합니다.

대만에서 태어나 아주 똑똑하고 부모의 자랑거리였던 한 여학생이 고등학교 때 미국에 이민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던 어느 날 아버지에게 남자친구가 있는데 결혼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딸의 이야기를 듣고 결혼하려는 남자에 관해 물었는데 사귄 지 오래되지 않은 듯 모르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간곡하게 딸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너의 결정은 존중하겠다. 그렇지만 결혼하기 전에 꼭 그 남자의 친구들을 만나봐라. 그러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딸은 결혼하려는 남자가 사는 곳을 예고 없이 찾아갔다가 돌아왔습니다, 그 이후 며칠 집에 들어오면 방에서 안 나오더니 결혼은 없던 일로 하였습니다. 그 딸이 아버지에게 전말을 이야기하지 않아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이 아버지는 매년 여름이면 손주를 보러 미국에 갑니다. 지난여름에는 코로나로 못 가고, 대신 딸이 보내주는 귀여운 손주들 동영상을 나에게도 자주 보여줍니다.

한국에선 폭설과 한파로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던 1월 8일 금요일.  모내기가 막 끝난 대만의 논.
한국에선 폭설과 한파로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던 1월 8일 금요일.  모내기가 막 끝난 대만의 논.

주변에서 20여 년 이상 알고 지내는 친구 중에 가장 극적인, 영화나 소설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산 친구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떠오르는 친구가 있습니다. 나와는 오랜 시간 형제보다 더 가까울 정도로 지냈던 그 친구 이야기입니다. 성도 생략하고 영어 이름으로만 부르겠습니다.

더글러스를 처음 만난 건 대만이야기 전편에 기술한 光群雷射 회사의 무역 담당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느낌은 나의 정확하지 못한 중국어 발음과 어눌한 표현에도 의미를 정확하고 빠르게 알아채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외떨어진 농촌에서 태어나 돼지 닭 등을 키우며 막내로 자랐다고 합니다. 다행히 머리가 좋아 보는 시험마다 다 붙었고 유명 국립대학까지 졸업한 후, 대만에 있는 일본 회사에 다니다 무역 부문 책임자로 들어와 나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대만사람들의 직장생활은 우리와는 분위기가 조금 다릅니다. 수시로 이직을 하고, 경쟁업체로 갔다가 다시 원래 회사로 돌아오기도 하는데 모두가  당연시하는 문화입니다.

내가 대만에 가면 거의 모든 일정을 함께 했고, 한국에 일이 있으면 더글러스가 출장을 왔습니다. 만남이 잦을수록 머리 좋은 것 빼고는 유사점도 많고, 비슷한 취미나 배려 깊은 행동으로 참 편했습니다.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사람은 술 싫어하고 못 노는 사람을 보면 왜 사는지 모른다고 하는데 그 점에서도 같은 취향이었습니다.

잦은 대만 출장에 종종 저녁까지 함께 먹는 경우가 있으면 꼭 부인에게 전화를 하더군요. 그리고는 전화기를 건네 나와 통화를 시켰습니다.

부인이 지역 보건소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고 임신하기 힘든 상태라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의부증(疑夫症)이 있다며 늦어지거나 밖에 있을 때는 꼭 전화로 상대를 확인해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만에 갈 때마다 통화해서 목소리는 익숙하지만 부인을 만난 적은 없습니다.

光群雷射의 협력 업체로 홀로그램 등 각종 필름과 특수 종이류를 가공하여 수출하는 업체가 있습니다. 이 협력업체의 해외 영업 담당자가 그 회사 사장 막내딸로 제품에 대한 정보와 수출입 관련하여 더글러스와 자주 연락을 하였습니다.

한국에서 원하는 특수필름을 공급받으려고 더글러스에게 연락했더니 소개해준 회사였습니다. 그래서 나와도 자주 연락하고 대만에 가면 꼭 만나는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인이 더글러스 핸드폰의 통화명세를 뽑아들고 그 협력업체의 사무실로 쳐들어가 온갖 악다구니를 다 하였답니다. 심성이 여리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상냥하던 그녀가 더글러스 부인 이야기에 그저 머리만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친구를 높게 평한다고 해도 가능성이 없고, 내가 아는 한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지요.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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