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는 글리터 기계를 팔 수 없었지만 프랑스에서 기계를 수입하겠다고 선전(深圳)으로 두 사람이 왔습니다. 사장인 장인과 사위가 함께 왔습니다.

자기들 제품에 사용할 글리터를 생산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제품이냐고 물었더니 카탈로그를 꺼내어 보여주는데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주로 내장재로 사용하는 건조 페인트였습니다. 페인트를 종이처럼 얇게 건조하여 필요한 크기로 부스러뜨려 벽면에 뿌리는 제품입니다.

백색에 약간의 흑색을 섞어서 뿌리면 대리석 느낌이 납니다. 우둘투둘 자연스러운 느낌과 다양한 색을 혼합하여 다른 분위기를 표현하는데 사업성이 있어 보였습니다. 나이지리아 공항 청사도 자기들 제품으로 마감을 하였다고 합니다.

선전도 더운 지역이라 한국처럼 도배지를 바르지 않고 대부분 페인트로 마감합니다. 밋밋한 페인트보다 다양하고 자연스럽게 연출할 수 있는 가루 페인트가 시장에서 환영을 받을 거란 생각을 했지요. 더글러스도 동의해서 선전에서 글리터 기계를 대체할 사업거리로 프랑스 도료를 수입해서 팔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판권을 달라고 했지요.

시공방법도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모두 수성이라 인체에도 무해하고요. 먼저 페인트 원액을 벽면에 바르고 굳기 전에 에어컴프레서로 가루페인트를 뿌립니다. 건조가 끝나고 수성 코팅 액을 한 번 발라주면 10년 이상 변색 없이 유지되니 경제성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주로 인터넷을 통해 관련 업체를 찾아 제품을 소개하고 상담을 했습니다. 대부분 카탈로그와 샘플을 요구하고 주고 나면 감감소식이었습니다.

매년 겨울철이면 한국인으로 북적이던 대만 골프장이 여유롭습니다.
매년 겨울철이면 한국인으로 북적이던 대만 골프장이 여유롭습니다.

2003~4년이면 중국에서 모바일 폰이 막 유행하던 시점이었고, 산동에 있는 한국인 공장의 여직원 월급이 500위안(현재 약 85,000원), 대도시인 선전의 대졸 직원 초임이 1,000위안(약 170,000원) 정도였습니다. 그런 정도의 수준에서 모바일 폰은 누구나 갖고 싶지만 쉽게 살 수 없었지요. 그러다 보니 뒤숭숭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돌았습니다. 더글러스도 나에게 주의를 많이 주었습니다. 통화할 때도 주변을 잘 살피라고.

공원에서 어떤 외국인이 통화 중인데 갑자기 도둑이 달려들어 뺏어가는 데 멀뚱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도 해주고요. 다행히 저는 피부색이 외국인처럼 안 보이고, 어느 나라를 가나 현지인으로 통하는지라 크게 걱정은 안 하는 편이었습니다. 특히 동남아를 포함한 남쪽지역에서는 장신에 속해서 더 불안해하지 않은 듯합니다.

선전은 광동성 남쪽의 특별자치구이고, 광동성의 성도(省都)는 광저우(廣州)로 약 한 시간 거리입니다. 그곳 광저우에서 우리 제품에 관심이 있다고 방문 요청을 여러 번 했다며 더글러스가 함께 가자고 합니다.

광저우역에 내려서 연락하니 자기들이 바쁘다고 택시를 타고 어느 장소에 도착하면 직원이 마중을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더글러스가 폰을 택시기사에게 건네자 차는 그들이 지정한 위치로 갔습니다.

택시 안에서 전화를 하자 젊은 친구가 다가와 우리를 확인하고 조수석에 탔습니다. 택시가 이동하자마자 더글러스 폰으로 연락이 오고 자기 직원을 바꾸라고 하더니 직원이 전화를 하면서 옆에 길가로 차를 대라고 하더군요. 뒷자리에 앉아있던 우리는 뭔가 싶어 보고 있는데, 차가 멈추자 통화를 하면서 문을 열고 나가더니 핸드폰을 들고 골목으로 뛰어 들어가 버리더군요.

택시기사가 도둑맞았다고 포기하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괜히 골목으로 들어가 봐야 봉변만 당한다고. 우리는 너무 황당한 일에 신고라도 하자고 경찰서로 갔습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도둑을 맞았다며 자기들이 도와줄 것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선전에서 왔으니 자기들 관할구역도 아니라고 해서 그냥 고속버스를 타고 터덜터덜 돌아왔지요. 고속버스 안에서 더글러스가 만약 자기 혼자 왔더라면 탈탈 털렸을 거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더군요.

그들은 더글러스 혼자 오는 줄 알았는데 유인하던 도둑이 우리가 두 사람인 것을 보고 계획을 바꿔 폰만 들고튀었다는 해석을 하였습니다.

더글러스가 대만 사람이라 중국과 잦은 교류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중 하나는 길거리에서 애들이 1위안만 달라고 구걸하면 절대로 주지 말라고 당부를 하더군요. 어떤 대만 사람이 구걸하는 아이에게 1위안을 주었더니 어디서 두세 명이 금세 와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주냐며 매달리더랍니다. 그래서 주고 났더니 더 많은 거지가 에워싸고 달라고 하는데 무서웠답니다. 그래서 지갑을 다 털렸다고.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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