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한국에 간다. 들뜬 마음에 짐도 일주일 전부터 싸기 시작했다. 친구와 가족에게 선물로 줄 캐나다 유명과자, 메이플 시럽 그리고 메이플 버터 한가득 짐에 실었다. 선물로 가득찬 캐리어를 보며 곧 만날 사람들 얼굴이 하나둘씩 떠올랐고 설렜다.

한국으로 가는 여정은 먼저 몬트리올에서 밴쿠버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밴쿠버에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탄다. 몬트리올 출발 비행기 시간은 아침 8시였다. 설레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괜히 코로나로 인해 항공편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되서였을까?

전날 밤 잠이 전혀 오지 않았다. 결국 밤을 꼴딱 새우고 우버를 불러 일찍 공항으로 향했다. 5시 45분 공항에 도착했고 공항은 한적하게 텅텅~ 비어있었다. 체크인 하고 캐리어 무게를 재니 23kg한도를 훨씬 초과하여 27kg를 찍었다. 친절한 공항직원은 윙크를 하며 기내에 갖고 갈 수 있는 물건을 빼고 무게를 줄여보라고 조언했다. 무거운 코트 두 벌을 꺼내니 무게는 2kg이 줄었지만 여전히 2kg를 초과했다. 내가 난처해하며 더 이상은 뺄 물건이 없다하니 괜찮다며 그냥 체크인 해주겠다며 웃음을 지었다. 캐나다 사람들은 이런 면에서 깐깐하지도 엄격하지도 않다. 어떻게 보면 여유롭다. 인간미 느껴지는 제스처로 인해 한껏 긴장해 있던 마음도 조금 풀렸다. 게이트 앞에 도착하니 탑승까지 1시간이나 남았다. 천천히 아침을 먹으며 한국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음미했다.

밴쿠버로 가는 비행기는 한적했다. 양 옆자리 모두 비어있어 왼쪽 오른쪽으로 머리를 마구 기울이며 실컷 자면서 갈 수 있었다. 밤을 새워서인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쿨쿨 자고 일어나니 밴쿠버에 도착해있었다. 그리고 바로 인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로 환승하였다. 탑승하고 자리에 앉자 한국여자 승객이 좌석표를 보고 옆에 앉으려고 했다. 당연히 2m 간격을 유지해야하는 정책이 기내에서도 유효하다고 생각하여 여성분께 좌석 배치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분도 2m간격을 두지 않는 좌석 설정에 불편해 하는 눈치를 보이며 동조하였다. 우리는 직원을 불렀고 직원이 허둥지둥 달려와 바삐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실 비행기에서 2m 거리두기는 의무화가 아닙니다. 고객님들은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옆에 앉으셔야합니다. 혹시 자리가 여유 있게 되면 자리를 바꿔드리겠습니다.”

이 공지를 듣고 당황스러웠지만, 거리두기가 의무화가 아니라는 직원 말에 딱히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는 걸 알고 막연히 여유 있는 자리가 생기길 기다렸다. 옆에 앉은 여성 승객도 불편했는지 주위를 살피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저기 보니까 자리가 하나 날 것 같아요! 그럼 제가 자리를 옮기도록 할게요.”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아~ 정말 다행이네요. 잘됐어요.” 라고 대답을 했지만, 말을 꺼내고 나서 옆에 앉기 싫은 마음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 거 같아 얼굴이 후끈거렸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 직원이 여유자리가 생겼다며 여성분을 새로운 자리로 안내해주었다. 옆자리가 비자 다시 긴장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코로나가 뭐라고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옆에 앉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되었다. 기내 메뉴는 따듯한 음식이 아닌 샌드위치, 차가운 파스타가 전부였다. 음식을 덥히는 과정은 사람 손을 많이 타기에, 손이 전혀 타지 않는 차가운 음식만 서빙을 한다고 했다. 코로나는 음식도 사람들 간 관계도 차가운 비행문화를 만들었다. 착륙하기 전, 직원들은 세금신고서 외에도 해외 입국자 서류를 추가로 주었다. 입국자 서류에는 자가격리 주소 및 비상 전화번호를 기재해야 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입국 절차 과정 
인천국제공항에서 입국 절차 과정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뉴스 혹은 영화에서만 보던 장면이 펼쳐졌다. 방호복 입은 직원들이 쫙 서 있었고, 직원들 지시와 안내를 받아 3단계 절차를 거쳐야만 입국이 허용되었다. 먼저 입국자들 체온, 코로나 감염 여부, 증상 여부 등을 신속히 점검했다. 해외 입국자 서류에 기재된 자가격리 주소가 존재하는지 확인했고, 기재한 비상전화번호에 연락하여 번호 확인을 했다. 마지막으로 자가격리 앱을 깔고 입국 심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짐을 찾은 뒤 정해진 통로를 이용해 나가, 지정된 대중교통, 택시나 콜밴을 타고 자가격리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콜밴의 플라스틱 윈도우 
콜밴의 플라스틱 윈도우 

내가 자가격리 할 곳은 화성이었다. 화성시는 버스로 이동할 수 있지만 2시간 넘게 대기해야 해 방역 콜밴을 불렀다. 방역 콜밴을 신청하자마자 운전기사가 달려왔고, 속전속결로 짐을 트렁크에 실었다. 내가 보는 앞에서 다시 한번 콜밴 실내 전체에 소독제를 뿌리고 이동했다. 운전기사와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플라스틱 윈도우가 앞좌석 뒷좌석 사이에 설치되어있었다. 운전기사님은 친절히도 어디서 오는 거냐, 거기는 상황은 어떠냐, 그리고 한국엔 얼마 만에 들어오는지 물어봐주셨고, 몇 시에 화성에 도착하는지도 친절히 알려주셨다. 따듯하고 편안한 대화 덕분에 편안하게 자가격리 장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14일 동안 자가격리가 시작되었다.

한국에 온 다음 날. 2층 베란다에 선 나라도 본다고 방문한 가족
한국에 온 다음 날. 2층 베란다에 선 나라도 본다고 방문한 가족

사실 캐나다에서 2~3개월에 거쳐 자가격리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 답답하거나 새롭진 않았다. 아침 8~9시 정도에 기상하여 요가로 하루를 시작했고, 차를 마시며 컴퓨터를 켜고 일을 했다. 캐나다 보스는 2주 자가격리 기간 동안 리뷰논문 초안을 작성하라는 업무를 주었다. 오히려 일하는 것이 더 좋았다. 컴퓨터 작업만으로도 바쁘게 보낼 수 있었기에 금방 점심, 저녁 시간이 왔다. 소화도 할 겸 홈트레이닝도 한 시간씩 꼭 했다. 밤이 되면 혼자서라도 여유를 즐기기 위해 사람들과 통화를 하거나 넷플렉스 영화나 미드를 보았다.

자가격리를 하면서 의무적으로 해야 할 사항이 몇 가지 있었다. 아침 9시전 그리고 오후 4시전 하루에 2번 자가격리 앱을 이용해 자가진단 설문지에 신체온도와 기침, 열, 몸살, 기운이 있는지 보고해야했다. 자가격리 앱은 내가 이동하는 범위도 추적하고 있었다. 휴대폰을 충전기에 꽂아 놓고, 4시간동안 가만히 두었던 적이 있었다. 4시간 후에 휴대폰을 확인하니, 자가격리 앱에서 이동이 감지되지 않아 공무원에게 연락을 취했다고 공지가 떴다. 이 공지를 보면 바로 앱으로 들어가 확인을 해달라는 거였다. 혹시 자가격리 도중 사고나 코로나로 인해 쓰러져 있을지도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이런 시스템을 마련한 것 같았다.

코로나 검사는 대기인원이 밀려 5일 후에 받을 수 있었다.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이동하자, 앱은 또 자가격리 지역을 벗어낫다며 공지 문자를 주었다. 하지만 이미 코로나 검사를 받기로 화성시 코로나 대책부에 등록이 되어있었기에, 그런 공지 문자 외 다른 경고 메시지는 뜨지 않았다. 처음 받아보는 코로나 검사.., 사실 조금 무서웠다. 검사를 받은 친구들은 코 깊숙이 막대기 같은 걸 넣고 마구 쑤셔 역하면서도 안 좋은 기분이라고 했다.

코로나 검사소에서 보내준 밴을 타고 도착하자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이 잔뜩 서서 밴을 특정 위치로 안내했다. 밴이 멈추자, 직원들이 신속히 문을 열었다. 손 소독제와 장갑을 주며 끼라고 지시했고, 저쪽 투명한 플라스틱 벽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라고 했다. 그 자리에 가자, 투명한 컨테이너 안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였다.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투명한 컨테이너에서 의사가 등장했다. 의사는 컨테이너와 연결된 소독문을 열고 그 안에 있는 막대기를 꺼내라고 지시하였다. 지시대로 행동하자 의사는 플라스틱 벽과 연결된 플라스틱 고무손에 본인 손을 넣고, 나에게 막대기를 고무손에 쥐어달라고 했다. 막대기를 쥐어주자 의사는 검사를 진행하겠다고 하며 짤막히 말을 했다.

“검사가 더 늦어질 수 있으니 기분이 이상하고 아프더라도 가만히 있어주세요. 금방 끝납니다.”

눈을 찔끔 감고 알았다고 했다. 긴 플라스틱 막대기가 코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휙휙 휘저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아프진 않지만 기분 나쁜 느낌이었다. 다시 바로 다른 막대기를 쥐고 반대쪽 코도 휙휙 휘저었다. 막대기는 내가 직접 소독 창고 문을 열고, 플라스틱 깔때기에 집어넣어야 했다. 의사는 검사 내내 한 번도 나와 접촉이 되지 않았다. 플라스틱 컨테이너에서 잘 보호되고 있었다. 이 모든 절차는 10분 내로 끝났다. 그 다음날 아침 9시, 음성 결과를 통지 받았다.

이렇게 철저하고 빠를 수가.... 나는 한국의 코로나 검사와 진단에 감동했다. 캐나다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아본 사람들에 의하면 3시간대기는 기본이다. 의사는 직접 대면으로 검사를 진행한다. 코로나 검사실 사무직원은 방역복이 없을 뿐더러, 검사 결과는 3일 지나야 공지된다. 그래서 일까? 캐나다는 의사나 간호사가 코로나에 감열될 확률이 꽤 높다고 한다.

내가 받은 구호물자 
내가 받은 구호물자 

자가격리 5일째 구호 물품이 도착했다. 생수, 햇반, 라면, 참치 통조림, 김, 찌개류 및 국, 체온계, 손 소독제, 마스크, 쓰레기봉투 등이 들어있었다. 구호 물품을 받자, 한국에서 한 개인을 위해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직접 느낄 수 있어 마음이 따듯해졌다. 한국 정부가 더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또한 자가격리하는 도중 2번 정도 심리상담사 전화가 왔다. 혼자 지내면서 우울하거나 힘들지는 않냐며,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 달라고 했다. 

그렇게 철저한 14일 자가격리를 마치고 가족과 재회했다. 정확히 12시, 나는 자가격리 앱을 삭제하고, 밖으로 나가 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12시 7분에 도착해 쓰레기 버리는 걸 도와주셨다.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이게 꿈이야!! 생시야!!”하시며 팔짱을 끼셨다. 캐나다에 있으면서 겪었던 코로나 블루 그리고 불안했던 마음은 부모님과 사람들과 재회 그리고 따듯하고 철저하게 진행하고 있는 K-방역시스템 덕분에 점점 녹아 사라졌다.

캐나다로 돌아와서 다시 2주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정부가 해주는 것은? 캐나다 입국 시 한국에서 발급받은 ‘코로나 음성확인서'만 꼼꼼히 보고, 앱을 깔고 매일 증상을 보고하는 것 외에 뭘  어떻게 하라는 안내가 없다. 2주가 지나면 그냥 알아서 밖에 나가면 된다.  

이러다 보니 한국에 있으면서 겪은 K-방역과 캐나다 방역을 자꾸 비교하게 되었다. 먼저 캐나다는 마스크를 의무화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마스크 자체도 확보하기 어려워 많은 사람들이 옷을 잘라 헝겊 마스크를 하곤 했다. 지금은 좀 유통이 되지만 처음에는 K94 마스크 같은 방역마스크는 구할 수도 없었다. 현재도 밖에선 대부분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는다. 실내 입장 시 마스크는 필수지만, 체온 측정도 하지 않고 연락처도 기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코로나 확진자가 생기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과 접촉하여 코로나를 전파했는지 전혀 파악할 수가 없다.

캐나다 코로나 신규 확진자 그래프(3월 12일 기준 총 확진자 906,201명 / 자료 출처  : https://news.google.com/covid19/map?hl=ko&gl=KR&ceid=KR%3Ako&mid=%2Fm%2F0d060g)
캐나다 코로나 신규 확진자 그래프(3월 12일 기준 총 확진자 906,201명 / 자료 출처  : https://news.google.com/covid19/map?hl=ko&gl=KR&ceid=KR%3Ako&mid=%2Fm%2F0d060g)
캐나다 코로나 신규 사망자 그래프(3월 12일 기준 캐나다 코로나 사망자 22,434명  / 자료 출처 : https://news.google.com/covid19/map?hl=ko&gl=KR&ceid=KR%3Ako&mid=%2Fm%2F0d060g)
캐나다 코로나 신규 사망자 그래프(3월 12일 기준 캐나다 코로나 사망자 22,434명  / 자료 출처 : https://news.google.com/covid19/map?hl=ko&gl=KR&ceid=KR%3Ako&mid=%2Fm%2F0d060g)

그래서일까… 겨울이 되면서 캐나다 코로나 확진자와 사망자는 가파르게 증가했다. 병원 입원 코로나 응급환자가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하자 정부는 최대 축제인 크리스마스에도 모든 실내시설을 닫게 했다. 가족 외 2인 이상 집합금지 정책도 고수했다. 그래도 확진자는 줄지 않았다. 퀘벡주만 볼 때 1월 초순에 신규 확진자가 매일 2,000~3,000명에 달했다. 캐나다 전체는 하루 확진자가 최대 1만 명이 넘은 적도 있었다. 보다 강력한 정책이 필요했는지 1월부턴 통금까지 시행되었다. 저녁 8시 이후 밖에 돌아다니지 말라는 금지령이 내려졌고 아직도 시행중이다. 다행히 이런 강력한 정책으로 캐나다 코로나 확진자수는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갇힌 사회를 지속할 수 있을까?

현재 캐나다 사람들 대부분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1년 가까이 진행된 코로나와의 전쟁은 사회와 사람들을 고립시켰다. 이런 고립감을 견디지 못하는 한 친구는  확진자가 적어 고립정책을 펴지 않는 주()로 이사 가려는 계획까지도 세우고 있다. 그리고 모두가... 백신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  양성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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