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네 밭으로 냉이를 캐러 갔다. 그동안 친구는 꽃이 피면 뻣세져서 풍미를 잃는다고 몇 번이나 성화를 부렸다. 왕복 6차로인 제2자유로 장산가좌 나들목에서 3분 거리다. 그렇지 않아도 킨텍스, 고양종합운동장과 가까운 곳에 네모반듯한 농장 부지를 꾸렸다고 아내가 먼저 몰아붙였다. 차일 피일 미루다가 지난 312일 가 보니, 아닌 게 아니라 벌써 허연 냉이꽃 천지다. 그깟 냉이꽃 좀 먹기로서니 무슨 대수랴. 하다못해 민들레, 제비꽃, 토끼풀도 식용꽃이라고 잘들 먹지 않더냐. 사실, 꽃줄기는 버려야 한다. 생각보다 훨씬 질기다. 아무튼 개의치 않고 캤다. 캐다 보니 금세 커다란 비닐봉지가 넘친다.

 

냉이는 4장의 꽃잎이 십자(十) 모양으로 달리는 십자화과이다. 꽃받침도 4장이다. 6개의 수술 가운데 4개는 길고 2개는 짧다. 배추, 무, 갓, 유채, 꽃다지 등이 모두 같은 집안이다. © 밥보샘
냉이는 4장의 꽃잎이 십자(十) 모양으로 달리는 십자화과이다. 꽃받침도 4장이다. 6개의 수술 가운데 4개는 길고 2개는 짧다. 배추, 무, 갓, 유채, 꽃다지 등이 모두 같은 집안이다. © 밥보샘

 

겨울이 모질수록 냉이 향은 진하다

 

엄격히 말하면 군데군데 제멋대로 난 들냉이가 아니다. 지난해 4, 친구가 밭을 갈아엎으면서 씨를 받아서 뿌려 놓은 냉이밭이다. 솎아 준 적 없으니 숨 쉴 틈 없이 빼곡하다. 산목숨 죽지 못해 지네들끼리 비집고 부대끼면서 한겨울을 났으리라. 이럴 때는 호미보다 삽이 제격이다. 뭉텅이째 떠서 흙을 털어내면 그만이다.

거듭 말하지만, 온실에서 재배하는 아이들이 아니다. 누구 한 사람 돌보는 이 없이 노지에서 절로 겨울을 난 냉이다. 한뎃잠 자면서 냉해, 습해 다 입은 아이들이다. 제대로 목 한 번 축이지 못하고 긴긴 겨울 가뭄까지 견뎌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 겨우 내내 버둥버둥 몸부림을 쳤으리라. 척박한 땅 깊이깊이 뿌리내리려다 보니 손발 다 트고, 갈라지고 휘어지지 않은 데가 없다. 먼지를 뒤집어쓴 이파리마다 발그잡잡하고, 매서운 뒤울이에 온 삭신 찢어진 채 너덜거린다. 볼품이랄 게 있을까마는 그래도 살아남아 꽃을 피웠다! 온실에서 자란 아이, 마트 매대에 놓여 있던 아이가 아니다. 겨울이 모질수록 뿌리는 더 깊이 들어가고 향은 더 강해지는 법. 깊고 질긴 뿌리에서 냉이 향이 진하게 풍긴다.

 

 

온실에서 자란 냉이, 허우대만 크고 향은 없다

 

마늘이나 양파는 땅이 얼기 전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래서 친구도 비닐로 집까지 짓고 알뜰살뜰 거둬 먹였다. 바로 옆집은 마늘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집인가 보다. 유공 비닐로 멀칭하고 다시 그 위를 왕겨로 덮어씌웠다. 그러니까 친구가 마늘밭에 뿌려둔 냉이는 집도 절도 없는 뜨내기가 아니다. 노지에서 천대받고 자란 아이들과 질적으로 다르다. 거름기 충분하고 찬바람 막아주니 딴 걱정은 없다. 죽기 살기로 몸부림치며 경쟁할 까닭이 없다. 그러다 보니 뿌릴 깊게 내리지 않아도 그만이다. 남보다 먼저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을 이유가 없고, 향기를 진하게 내뿜을 이유도 없다.

평생 서울시 지자체에서 근무하던 친구가 마늘에 대해 얼마나 알겠는가? 알음알음해서 이것저것 따져 가며 비싼 값에 좋은 종구(種球)를 구했을 것이다. 들은 대로 소독하고, 어설프지만 줄 간격과 포기 사이를 가늠하면서 정성껏 심었겠지. 짚으로 덮고 퇴비도 뿌리고 비닐 터널도 씌워 주면서 나름 무진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데 눈여겨보지도 않던 냉이가 마늘보다 먼저 자리잡았다.

역시 아늑한 집에 세 들어 사는냉이는 사정이 다르다. 겉보기엔 이파리가 실하고 파르족족하지만, 성장이 더딘 편이다. 상대적으로 꽃을 피운 아이들이 드물다. 팔자 좋아 늘어지게 살다가 꽃도 피우지 못한 채, 결국 내 손에 뽑히고 말았다.

 

겉보기엔 이파리가 실하고 파르족족하지만, 여리고 성장이 더딘 편이다. 노지에서 자란 아이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꽃을 피운 아이들이 드물다.
겉보기엔 이파리가 실하고 파르족족하지만, 여리고 성장이 더딘 편이다. 노지에서 자란 아이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꽃을 피운 아이들이 드물다.

 

냉이는 캐고 쑥은 뜯고 홑잎나물은 따야 한다

 

냉이처럼 뿌리째 먹는 나물류는 캔다고 한다. 씀바귀, 고들빼기, 민들레, 냉이, 꽃다지, 달래, 시금치 등이 그렇다. 그러나 쑥은 뜯고, 홑잎나물(화살나무 새순)은 딴다고 해야 옳은 표현이다. 나물이라고 해서 눈에 띄는 대로 뽑는 게 아니다. 주로 이파리나 줄기를 먹는 나물은 뿌리를 건드리면 안 된다. 그래야 다음을 기약한다. 꺾거나 자를 때도 반드시 칼을 이용해야 한다. 특히 산나물은 대개 습기가 많고 보드라운 부엽토에서 자라기 때문에 쉬이 뽑힌다. 뿌리가 뽑히면 이듬해 나물 농사는 꽝이다. 당연히 뿌리가 상하지 않도록 칼로 도려내듯이 채취해야 한다.

 

뿌리째 먹는 나물들1줄 : 민들레, 씀바귀, 시금치 / 2줄 : 꽃다지, 달래, 산달래 / 3줄 : 고들빼기, 이고들빼기, 왕고들빼기 (사진 출처 : 국립생물자원관)
뿌리째 먹는 나물들1줄 : 민들레, 씀바귀, 시금치 / 2줄 : 꽃다지, 달래, 산달래 / 3줄 : 고들빼기, 이고들빼기, 왕고들빼기 (사진 출처 : 국립생물자원관)

 

흙일꾼 청개구리, 청개구리야

 

청개구리 한 마리.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났는지 눈만 끔벅거린다. 한 걸음 내치다가 제 무게 못 이기고 뒤로 나동그라진다. 온몸이 흙투성이다. 저 여린 아이가 어디서 겨울잠을 잤을까? 아마도 깊지 않은 땅속에서 동면하다가 밭을 일구니 깨어났나 보다. 녀석은 분명 물가에서 태어나고 자랐을 텐데 아무리 둘러봐도 물이 안 보인다. 저만치 논이 보이지만 저마다 흙을 덮어 땅을 돋우고 있다. 논을 밭으로, 밭을 창고용지로, 창고를 대지로. 하여 사라지는 농지 따라 개구리도 사라질 테지. 그나저나 오늘 당장 저 아이는 어디서 눈이나 붙이려나?

 

 

농번기는 3월에 시작한다

 

냉이를 캐고 나서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부지런한 농부는 아침 내내 논을 다 갈아엎었나 보다. 밭에 있던 비닐까지 모두 걷어 한데 묶어 놨다. 가까이 다가가니, 밭 귀퉁이 한 평 남짓 땅에 무언가를 심었다. 부직포로 덮고 이를 다시 비닐로 덮어 끈으로 동여맸다. 들춰볼 수가 없다. 보물단지 감추듯이 꽉 싸매 놓았다. 뭘까? 시금치, 아니면 대파? 햇빛을 싫어하는 암발아 종자를 묻어 놓고 일이 되서 쉬러 갔나, 마실을 갔나? 경운기 혼자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들녘은 분주하다. 트랙터로 논을 갈고 굴착기로 땅을 파고 다지고 있다. 새벽에 나와 해끝에 귀가하니 도시 근교는 이미 농번기에 접어들었다. 쉴 새 없이 흙차가 드나든다. 지나갈 때마다 농로는 뿌연 흙먼지투성이다. 한마디씩 하니 객토 사업자가 살수차를 보내 물을 뿌리는데, 생각해서 그랬겠지만, 농장 진입로가 곤죽탕이 되고 말았다. 힘없는 이륜구동은 오르내리기도 버겁다. 세차는 농사철이 지난 뒤에나 할 일이다.

오래 전 선친과 어머니가 하는 말을 엿들었다. “옆집 최 씨네 가서 낼 아침 일찍 꼬꾸랭 갖구 오라고 하소.” 순간 꼬꾸랭이 뭘까? 곡괭이는 아닐 테고.’ 많이 궁금했다. 이튿날 아침, 최 영감님이 모는 포클레인이 들어섰다.

포클레인은 국립국어원의 공식 표기이다. 이는 프랑스계 회사 포클랭(Poclain)을 프랑스어 발음이 아닌 한국식 영어 발음이다. 그러나, 실제로 포클레인이라는 명칭의 사용 빈도는 크게 떨어진다. 구글에 포클레인이라고 검색하면 포크레인으로 바꾼 검색 결과를 돌려줄 정도다(나무위키). 한편, 건설기계관리법 시행령(2019. 3. 19.)에서 일본식 용어인 굴삭기굴착기로 순화했다.

 

이른 아침부터 곳곳이 부산하다. 쉴 새 없이 흙차가 다니면서 객토를 하고 그 앞으로 살수차가 가면서 먼지를 가라앉힌다. 이런 작업은 해가 질 무렵까지 이어진다. 포클레인 작업을 마친 한 기사는 큰 트럭 위로 싣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곳곳이 부산하다. 쉴 새 없이 흙차가 다니면서 객토를 하고 그 앞으로 살수차가 가면서 먼지를 가라앉힌다. 이런 작업은 해가 질 무렵까지 이어진다. 포클레인 작업을 마친 한 기사는 큰 트럭 위로 싣고 있다.  

 

농막인지 집인지

 

허허발판인데 단층집 한 채가 보인다. 빙 둘러선 향나무와 소나무는 지붕 위로 솟았다. 집 뒤쪽으로 커다란 비닐하우스가 보이고, 그 너머엔 매실나무 50여 그루가 꽃을 피웠다. 주변에서 일하는 분 말로는 오래전부터 빈집이라고 했다. 버젓이 주소까지 적혀 있다. 아무려면 불법 건축물은 아니겠지. 모르겠다. 요즘의 농막은 다 저렇게 짓나? 어쨌든 멀쩡한 집을 지어 놓고 빈집으로 묵혀 두는 까닭이 뭔지…….

 

 

한참 동안 에돌아도 건질 낟알 안 보이고

 

빈 들녘에 기러기 떼가 보인다. 멀리서도 희붉은 색이 선명하다. 이마의 흰색무늬와 분홍색 부리, 그리고 오렌지색 다리가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쇠기러기다. 몸길이가 75센티 정도로 기러기치고는 몸집이 작은 편이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통통하다. 잡더라도 나 혼자 감당하긴 버거워 보인다. 때까우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커 보인다.

특이하게도 열병식을 하듯 한 줄로 길게 늘어서 있다. 다가서는 낌새를 알아챘는지 모두 고개를 쑥 쳐들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마치 지네들끼리 얼음땡을 하듯이 경계가 삼엄하다. 부스럭 소리에 놀란 녀석들이 날아오른다. 한참 동안 에돌아도 낟알 몇 톨 찾으려나? 볏짚까지 몽땅 거둬간 메마른 논바닥인데……. 그나마 내가 쫓아낸 꼴이니 괜히 미안하다. 보통 3월에 돌아가는데 번식지에 따라 4월 초에 가기도 한다니, 기러기들이 내게 작별 인사를 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 : 김호기 제공(2020.12.9. 철원)
사진 : 김호기 제공(2020.12.9. 철원)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삭풍은 어데가고

봄바람이 이는구나!’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사진 : 김호기 제공(2020.12.9. 철원)
사진 : 김호기 제공(2020.12.9. 철원)

 

휴지기의 빈 들녘엔 어리버리한 풀이 무성하다

 

어쩌면 냉이는 농부의 발소리를 들으면 경기(驚氣)를 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농부가 오기 전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 꽃다지, 꽃바지, 꽃마리, 광대나물, 점나도나물, 벌금자리, 곰밤부리나물 등 이른 봄 한철 피고 지는 아이들은 다 그렇다. 농부들이 방치한 휴지기의 빈 밭과 논둑이 풍성하다.

심어 가꾸지 않는 자들, 선택 받지 못한 아이들의 숙명이리라. 뿌리를 깊게 내릴 여유도 없다. 키가 작고 이파리는 모두 자질구레하다. 이리 치고 저리 치면서 한사코 어리버리하다. 실바람이 불어와도 미련 없이 몸을 맡긴다. 반면에 개미들이 행진을 해도 밟히면 그뿐, 결코 자신을 내세우는 법이 없다. 그런다고 누울 자리 보면서 발을 뻗을 형편이 아니다. 양지와 음지, 건지와 습지, 논둑, 밭둑, 자갈밭 가릴 게 뭐냐? 사치스러운 일이다! 노천에 방치된 아이들은 자연 그대로 그렇게 살아간다. 사람 발길 닿지 않는 곳이 천국이다.

 

지난 3월 12일, 일산 구산동 논둑에서 본 아이들. ‘ㄹ’ 자 모양대로 돌나물, 망초, 개망초(담배나물), 갈퀴덩굴, 벼룩나물(벌금자리), 배암차즈기(곰보배추), 민들레, 꽃다지, 별꽃(곰밤부리나물), 소리쟁이(소루쟁이), 좀개소시랑개비, 지칭개.
지난 3월 12일, 일산 구산동 논둑에서 본 아이들. ‘ㄹ’ 자 모양대로 돌나물, 망초, 개망초(담배나물), 갈퀴덩굴, 벼룩나물(벌금자리), 배암차즈기(곰보배추), 민들레, 꽃다지, 별꽃(곰밤부리나물), 소리쟁이(소루쟁이), 좀개소시랑개비, 지칭개.

 

쉬이 뭉크러지던 풀이 어느 순간 꼿꼿해진다

 

풀이라고 늘 부드러운 건 아니다. 메마른 땅일수록 뿌리는 열 갈래 스무 갈래로 나뉘고, 몸길이의 수백 배까지 늘어난다. 꽃줄기는 으레 질기고 빳빳하다. 꽃이 핀다는 것은 결혼 적령기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곤충바람 할 것 없이 너도나도 매개체를 자처하니 바로 수정이 된다.

냉이든 뭐든 꽃차례를 자세히 들여다보라. 꽃을 머금은 꽃봉오리, 이제 갓 피어난 꽃봉오리, 활짝 핀 꽃, 열매 주머니, 터진 열매 주머니 등 어디까지가 부모 자식이고 어디부터가 형제자매인지 모를 지경이다. 때로는 한 몸에 삼대가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먼저 수정한 아이는 꽃 색이 바래고 향을 없앤다. 무엇보다도 고개를 푹 숙인다. 수정하지 않은 꽃을 위해 곤충의 접근을 거부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풀은 배려심이 충만하다. 또 실바람에도 하늘거리고 쉬이 뭉크러지는 풀이지만, 꽃 피우고 열매 맺는 순간 엄마 이상으로 강인하고 도도하다. 한껏 유세를 떤다. 그때는 꺾여지고 부러질망정 눕거나 휘어지는 법은 없다.

 

냉이야, 놀자

 

냉이 종류에 따라 열매 주머니 모양이 다르다. 보통 역삼각형으로 여문다. 이를 갈라 보면 개미알보다 작은 스무 개 정도의 종자가 들어 있다. 이를 아이들과 같이 돋보기로 살펴보면 저마다 탄성을 지른다. 바로 생명의 신비와 함께 외경심이 가득한 눈빛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래 사진은 다닥냉이다. 이름에 걸맞게 열매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사진 원작자 : 현진오 © 국립생물자원관
사진 원작자 : 현진오 © 국립생물자원관

 

바나나 껍질 벗기듯이 열매 자루를 아래쪽으로 조금씩 늘어뜨린다. 줄기에 열매 자루가 붙어 있어야 한다. 두 손으로 줄기를 비비듯이 꼬면 휘늘어진 열매 주머니들이 부딪히며 소리가 난다. 열매 자루의 개수, 길이, 크기, 그리고 꼬는 속도에 따라 다른 소리가 난다. 다다다다, 드르드르, 따락따락, 띠리띠리! 비록 불규칙 화음이지만 우리 아이들은 좋아한다. 악기 이름은 냉이 딸랑이.

 

냉이딸랑이 만들기 사진 설명(시계 바늘 방향 차례) : 꽃줄기가 길고, 열매 주머니가 잘 여문 냉이를 준비한다 ⇒ 열매 자루를 하나씩 아래쪽으로 조심스럽게 벗겨낸다. ⇒ 완성한 냉이딸랑이 ⇒ 아기의 귓가에 대고 두 손으로 비비면서 소리를 둘려준다. 어린이들끼리 놀 때는 여럿이 둘러앉아 누가 만든 딸랑이 소리가 아름다운지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각자 비비도록 한다. © 밥보샘
냉이딸랑이 만들기 사진 설명(시계 바늘 방향 차례) : 꽃줄기가 길고, 열매 주머니가 잘 여문 냉이를 준비한다 ⇒ 열매 자루를 하나씩 아래쪽으로 조심스럽게 벗겨낸다. ⇒ 완성한 냉이딸랑이 ⇒ 아기의 귓가에 대고 두 손으로 비비면서 소리를 둘려준다. 어린이들끼리 놀 때는 여럿이 둘러앉아 누가 만든 딸랑이 소리가 아름다운지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각자 비비도록 한다. © 밥보샘

 

 

냉이밭 너머 솔밭에 포식자가 산다

 

바로 이웃한 축사 너머에 너른 밭이 있다. 그곳에서는 멧비둘기 세 마리가 연신 땅을 쪼고 있다. 아직 갈아엎지 않은 밭엔 지난해 가을 떨어진 풀씨밖에 더 있으랴. 종일 쪼아봐야 볼가심거리도 되지 않을 텐데……. 영리한 녀석들! 그래서 한곳에 붙어 있지 않고 띄엄띄엄 떨어져 지내는구나. 우리들도 먹이가 부족하면 절로 거리 두기를 실천할까?

멧비둘기 얘기가 나오자 친구는 고양이가 다 잡아먹는다고 했다.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면서 농장 한쪽의 솔밭을 가리킨다. 여기도 천적 없는 들고양이들의 천국인가?

농장 한쪽에 키 작은 소나무 서른 그루 남짓 자라고 있다. 관리하지 않은 탓에 수형이 모두 제멋대로다. 한가운데쯤 이르렀을 때였다. 아닌 게 아니라, 솔이파리 틈새마다 짧고 허연 깃털이 흐트러져 나뒹군다. 어렵지 않게 불룩하게 도드라진 새털 무덤을 찾았다. 필시 소나무 위에서 자던 멧비둘기가 봉변을 당했으리라.

 

너구리들의 공동화장실, 똥무더기

 

그 옆에는 만찬을 즐긴 녀석들의 똥무덤이 보인다. 그렇다면, 누구냐고 의심할 필요가 없다. 들고양이가 아니다. 일정한 장소를 정해 놓고 배설하는 똥자리! 이는 곧 너구리 분장, 똥무더기가 분명하다. 단순한 배설물이 아니다. 너구리는 한곳에 모여서 똥을 싸는 경향이 있다. 냄새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위계를 확인한다. 그렇지만 똥을 싸면서도 천적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려는 방어 기제가 낳은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똥색도 가지가지이다. 오래된 똥과 그렇지 않은 똥이 섞여 있다. 막 배설했을 때는 검은색을 띠지만 시간이 지나면 말라서 회색을 띠게 된다. 흰색 똥은 다른 동물의 뼈를 먹은 흔적이다. 그렇다면? 식성이 좋아 각종 곡물의 뿌리나 열매, 곤충, 양서류, 설치류 등은 물론 사체까지 닥치는 대로 먹는다고 하지만 때는 겨울의 허허벌판이다. 인가도 드물어 쓰레기통도 귀하니 애먼 멧비둘기나 꿩이 희생양이 되나 보다. 지금쯤 사람들 눈을 피해 굴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영어로는 너구리를 '라쿤을 닮은 개'라고 해서 라쿤 도그(Raccoon dog)라고 부른다. 한편, 라쿤은 한국어로 미국에 사는 너구리 비슷한 동물이라고 해서 미국너구리라고 부른다(위키백과).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한국도 미국도 작명법이 재밌다.

도심 개발로 서식지가 줄어들면서 예전보다 농지나 민가 출현이 증가하고 있다. DMZ 생태연구소에서 조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영진 선생은 너구리는 주로 야행성 동물이다. 그러나 낮에도 숲속에 나타날 때가 있다. 외모가 둔하고 어리숙해 보이지만 사람을 잘 따르고 경계심이 부족해서 쉽게 덫에 걸린다. 파주고양시 인근 주변에 너구리들이 자주 출현하고 있다. 함께 공생하는 배려가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너구리는 갯과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다. 또 나무를 타는 종으로 알려져 있다. 잡식성인 너구리는 무엇이든 잘 먹는다. 두꺼비까지도 침으로 독을 희석해 먹는다고 한다. 이곳 가좌마을에서 가까운 돌곶이마을이 출생지라는 이수엽 선생은 50여 년 전 당시에도 너구리가 참 많았다고 회상한다.

형들은 심학산 근처에서 너구리나 멧토끼를 잡았다. 짚불을 피워 굴사냥을 한 것이다. 한편 미군들이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면 먹다 남은 시레이션을 찾아 심학산을 누비는 일이 일과였다. 그때는 누구나 다 배가 고팠거든.”

 

너구리의 분장(糞牆), 즉, 똥무더기가 곳곳에 즐비하다. 너구리는 한곳에 모여서 똥을 싸는 경향이 있다. 냄새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위계를 확인한다. 막 배설했을 때는 검은색을 띠지만 시간이 지나면 말라서 회색을 띠게 된다. 흰색 똥은 다른 동물의 뼈를 먹은 흔적이다.
너구리의 분장(糞牆), 즉, 똥무더기가 곳곳에 즐비하다. 너구리는 한곳에 모여서 똥을 싸는 경향이 있다. 냄새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위계를 확인한다. 막 배설했을 때는 검은색을 띠지만 시간이 지나면 말라서 회색을 띠게 된다. 흰색 똥은 다른 동물의 뼈를 먹은 흔적이다.

 

냉이, 열한 번을 치대고 헹구다

 

집에 오니 저녁 즈음이다. 아내는 냉이를 먹으려면 칼칼하게 씻으라며 욕실로 날 밀어냈다. 열 번은 씻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도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 닦달하지 않아도 어련히 알아서 씻을까라며 시큰둥하게 되받았다. 냉이를 반만 덜어 냈는데도 널따란 소쿠리가 두 개나 필요했다. 씻어도 씻어도 흙물이 나왔다. 검불과 부스러기를 건지고 떼어 냈다. 열 번도 넘게 치대고 헹궜다. 많이 캔 걸 후회했다. 족히 한 시간은 걸린 듯했다. 저녁을 먹기도 전에 거실 바닥에 퍼질러 눕고 말았다.

 

똑같은 크기의 소쿠리 두 개 분량의 냉이를 씻었다. 꼬박 열한 번을 씻었다. 내 사전에 더 이상 깨끗한 냉이는 없다고 자부했는데 아내는 이를 다시 손질했다. 거의 반은 추려 냈나 보다. 아래 왼쪽은 아내가 다시 추려서 버린 쭉정이다. 아내는 자기가 다시 다듬은 것이라며 소쿠리에 받쳐 두었다(아랫줄 오른쪽).
똑같은 크기의 소쿠리 두 개 분량의 냉이를 씻었다. 꼬박 열한 번을 씻었다. 내 사전에 더 이상 깨끗한 냉이는 없다고 자부했는데 아내는 이를 다시 손질했다. 거의 반은 추려 냈나 보다. 아래 왼쪽은 아내가 다시 추려서 버린 쭉정이다. 아내는 자기가 다시 다듬은 것이라며 소쿠리에 받쳐 두었다(아랫줄 오른쪽).

 

맛매 좋은 냉이 한 상

 

아내는 받쳐 놓은 소쿠리에서 먼저 냉이 한 옴큼을 집으면서 한마디한다.

앉아서 드시기만 할 때가 좋았지? 근데 이렇게 하면 자금거려서 못 드세요. 묵은 이파리 뜯어내고 뿌리도 한 번 더 치대야 하거든. , 어여 일어나세요.”

그러거나 말거나 이젠 더 이상 서비스는 없다고 눈 한번 끔쩍이지 않았다. 아내는 이내 누워 있던 내게 냉이 무침 한 자밤을 들이댄다.

그때였다. 사위가 들어선다. 사전에 장모랑 내통했나 보다. 내가 좋아하는 막걸리에 회까지 한 접시가 들려 있다.

그날 저녁, 식탁에는 냉이 한 상이 차려졌다. 아내는 냉이무침, 냉이된장국, 냉이오징어부침개, 냉이굴밥까지 냈다. 사실, 냉이를 캘 때부터 맛매 좋은 냉이로 막걸리 한잔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바람이 이루어졌다.

 

아내는 냉이무침, 냉이된장국, 냉이오징어부침개, 냉이굴밥까지 냈다. 막걸리까지 곁들이니 금상첨화다.
아내는 냉이무침, 냉이된장국, 냉이오징어부침개, 냉이굴밥까지 냈다. 막걸리까지 곁들이니 금상첨화다.

 

이정이 발호하던 조선, 그리고 2021년 신축년 한국

 

봄에 취했다. 노닥거리던 손주의 재롱을 떠올리면서 냉이를 검색했다. 그중에서 다산시문집 제2권에 실린 시 한 편을 인용한다. 교지를 받들고 지방을 순찰하던 중 적성의 시골집에서 지은 시이다. 들냉이는커녕 술찌겡이도 구하지 못해 굶어 죽어 가는 무리가 떠오른다.

 

시냇가 찌그러진 집 뚝배기와 흡사한데 / 臨溪破屋如瓷鉢
북풍에 이엉 걷혀 서까래만 앙상하다 / 北風捲茅榱齾齾
묵은 재에 눈 덮여 부엌은 차디차고 / 舊灰和雪竈口冷
체 눈처럼 뚫린 벽에 별빛이 비쳐드네 / 壞壁透星篩眼豁
집안에 있는 물건 쓸쓸하기 짝이 없어 / 室中所有太蕭條
모조리 다 팔아도 칠팔 푼이 안 된다오 / 變賣不抵錢七八
개꼬리 같은 조 이삭 세 줄기 걸려 있고 / 尨尾三條山粟穎
닭 창자 같은 마른 고추 한 꿰미 놓여 있다 / 鷄心一串番椒辣
깨진 항아리 뚫린 곳 헝겊으로 발랐고 / 破甖布糊穿漏
찌그러진 시렁대는 새끼줄로 얽매었네 / 庋架索縛防墜脫
놋수저는 지난날 이정에게 빼앗기고 / 銅匙舊遭里正攘
쇠냄비는 엊그제 옆집 부자 앗아갔지 / 鐵鍋新被隣豪奪
닳아 해진 무명이불 오직 한 채뿐이라서 / 靑錦敝衾只一領
부부유별 그 말은 가당치도 않구나 / 夫婦有別論非達
어린것들 입힌 적삼 어깨 팔뚝 나왔거니 / 兒稚穿襦露肩肘
태어나서 바지 버선 한번 걸쳐보았겠나 / 生來不著袴與襪
큰아이 다섯 살에 기병으로 등록되고 / 大兒五歲騎兵簽
작은애도 세 살에 군적에 올라 있어 / 小兒三歲軍官括
두 아들 세공으로 오백 푼을 물고 나니 / 兩兒歲貢錢五百
어서 죽길 원할 판에 옷이 다 무엇이랴 / 願渠速死況衣褐

(중략)

들냉이나 캐려 하나 땅이 아직 아니 녹아 / 野薺苗沈待地融
이웃집 술 익어야만 찌끼라도 얻어먹지 / 村篘糟出須酒醱

(이하 생략, 한국고전번역원, 송기채 (), 1994)

 

하다못해 이정[里正]이 놋수저까지 앗아가는 세상이었다. 이를 본 다산 선생도 어지럽고 못된 근원 하도 많아 손도 못 대라고 한탄했다. 여기에서 이정은 조선 시대 지방 행정 조직의 최말단 단위인 이()의 책임자를 가리킨다. 호적법 시행에 있어 수령의 직무를 보좌하는 말단 조직의 실무자였다. 이정은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오늘날의 이장(里長)으로 바뀌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말길이 활주로처럼 뚫려 있는 시대에 저주와 증오가 판을 치고

 

예나 지금이나 관의 민폐는 항존하고, 노회한 저들의 사특함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2021년 신축년! 조선 시대와 무엇이 다른가? 말길이 활주로처럼 뚫려 있는 시대에 하필이면 추깃물 뚝뚝 듣는 말들만 쏟아낼까?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않고 봇물 터진 듯이 쏟아붓는다. 양아치나 시정잡배도 저렇지는 않겠다. 째진 입으로 뱉는 말마다 구취가 진동한다. 그래서 저들의 DNA는 판독 불가 판정을 받는다. 검체가 구려도 너무 구려 유전자 분석 업체 어디에서도 이를 회피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대놓고 대통령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다. 오늘도 저주와 증오의 퍼레이드는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문재앙이라 부른다. 그가 이끄는 K 방역은 Kill 방역으로 둔갑시키고, 그를 지지하면 달빛창녀가 된다. 야만의 세월이다. 이 또한 그동안 독재의 압슬과 포락에 입을 꿰매고 산 탓인가.

말끝마다 위선자’, ‘지진아’, ‘간신’, ‘빨갱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으로 닦아세운다. ‘문재인을 연호하며 신발을 던지는가 하면, 대구의 초등학생들까지 문재인 빨갱이를 외친다. 급기야 한국을 구하기 위해 문재인을 죽여라(Kill Moon to save Korea)”와 문재인을 칼로 찔러 피가 흐르는 그림이 그려진 피켓을 들고 광화문을 활보한다. 그런가 하면, “문재인 당신 빨갱이야, 이 문좌파 인간아라고 국민청원을 올리고, “자유 대한을 떠나라”, “문재인 찢어 죽여라.”, “다이너마이트로 청와대를 폭파시키자."라는 말을 공공연히 까발리는 자도 있다.

 

같잖은 게 갓 쓰고 장 보러 다니는 대한민국

 

윤석렬 전 총장은 MB 때가 가장 쿨했다고 했다. 과연 진실은? 머잖아 역사가 증언하리라.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더니 막상 자신에게 충성하는 측근을 위해 마지막까지 감싸 주고 덮어버렸다. 자신에게 충성할 것 같은 정치꾼에게는 드러난 죄를 묻지도 않았다. 자신에게 충성하지 않는 자들은 골방에 몰아넣고 사소한 허물까지 난도질했다. 처절했다. 부관참시도 유분수지, 무슨 불구대천지원수라도 되는 양,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듯이 삼대를 잡아 조지고 능멸했다.

서울시장이 되려는 자가 전광훈 목사 쫓아다니며 하루에도 열두 번씩 대통령을 향해 독재자, 중증 치매 환자, 정신 나간 대통령이라 하지 않았더냐?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지, 어느 날 갑자기 '중도 보수'를 표방한다. 그러면서 지난 3월 27일 서울숲 유세에서 다시 문재인을 두고 '대역죄인이라고 생발광을 떨고 있으니, 제아무리 당의로 포장한들 마각을 감추랴? ‘정신 나간후보가 아니라면, ‘중증 치매 환자가 아니라면, 백주에 대로에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씨불거리지 마라. 적어도 서울의 머슴이 되려고 한다면, 흰소리 잡소리 선소리 집어치우라. 명심하라, 대한민국 대통령을 망령되이 저주한 자에게 투표할 대한민국 국민은 없다는 것을.

같잖은 게 갓 쓰고 장 보러 간다고 했다. 가증스럽게도 썩을놈마다 자유’, ‘민주’, ‘법치’, ‘정의’, ‘국민을 부르짖는다. 그러다 보니 이젠 모지리가 따로 없다. 웃프다! 성한놈이 더 지지리 궁상을 떨기도 한다. 썩을놈 눈 밖에 날까 봐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자라목을 한 채 물어물어, 피맛골로 고샅길로 줄행랑을 친다.

더 추접스러운 것은 글쟁이, 말쟁이 들이다. 입은 비뚤어져도 주라는 바로 불라 했다. 상장(喪杖)을 치면서 통곡을 해도 시원찮으니, 곡소리 자지러질 때쯤 방갓 뒤로 젖히고 크게 한번 웃어 볼까? 차라리 가짜 뉴스의 진원지가 지하 언론이라면 좋겠다. 늙다리간재미마냥 쏠린 눈으로, 매사 꽈배기처럼 비틀고 보니 거짓이 난무한다. 참은 온데간데없다! 썩어 문드러져도 거짓과 맞서는 것은 언론인의 본령이요, 신앙인의 정령이다. 권력에도 물력에도 곁눈질 말고 오로지 한길, 참을 말해야 한다.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모리배가 기특했을까? “청와대에서 찬송가 소리가 울려 퍼지도록 해달라.”는 말로 화답한다. 막판에 이르러, 촛불 시민을 빨갱이로 규정하며, "경찰, 검찰, 기무사, 국정원을 동원해 빨갱이들을 잡아들이라."고 몰아세우고, 청와대는 사탄의 무리들이 이 땅에 판을 치지 못하도록 기도해 달라."고 주문한다. 그때가 언제인가? 불과 13년 전이다.

 

냉이 한 상 받쳐 들고 천렵이나 갈까나

 

도둑이 도둑더러 도둑을 잡으라 하니, 도둑이 도둑을 잡았다고 도둑한테 고자질한다. 이를 본 왕초가 졸개들을 거느리고 나타나 좀도둑은 표창하고 날강도는 수장(授章)하니, 돈맛의 묘미를 체득한 도둑들이 권력의 단맛에 취해 민중을 개돼지라 부르고, ‘우리가 남이가를 되뇌며 개나발을 불고 있다. 여기에 반하는 자에게는 위아래도 모르는 무엄한 놈, 세상 물정 모르는 무지렁이, 근본 없이 굴러다니는 무골충이라는 혹독한 족쇄를 채워 주릿대질을 일삼고 위리안치도 서슴지 않는다.

보라, 도처에 도적이 요동친다.
바보새 함석헌 선생은 씨알의소리(197110)’에서 우리말엔 도둑질이란 말이 없고 도둑은 중국말의 도적(盜賊)을 옮겨 쓴 것이라고 했다. “좀도둑은 도()의 무리다. (버금 차)(그릇 명)이 합해서 된 글자인데, 는 침이요, 은 음식을 담은 그릇이다. 그릇에 담긴 음식을 보고 침을 흘리다 못해 슬쩍 훔쳐 버린다.”는 뜻이요, “은 강도다. (병기 융), , 무기를 들고 (조개 패), , 돈 혹은 보물을 뺏어간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LH나 교도소에는 좀도둑들이 넘치고, 날강도는 광화문, 여의도, 서초동, 세종시, 연희동에 무리지어 산다. 공도(公盜)와 공적(公賊)은 모두 공적(公敵)이다. 대한민국의 적이다.

총성 없는 증오 범죄가 만연한 오늘, 효시는 조선의 이정이다. 그의 포악질이 한국의 관료교수기자법조인의원장관장성종교인에게 전수됐다. 한마디로 대한의 팔천(八賤)이요, 팔적(八賊)이요, 팔괴(八怪). 편의상 가나다순으로 나열한 것일 뿐 순서는 어떤 의미도 없다. 도긴개긴이다. 밥 먹고 하는 짓거리가 하도 다랍고 인색하고 좀스럽다. 무슨 염병도 아닌데 급기야 해외로 번져, 어제의 광주는 오늘의 미얀마와 상통한다.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대체 어쩌라는 것인가?

내남없이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날은 언제 올까? 아니 그런 날이 오기나 할까? 인면수심범, 여덟 종자의 공적(公敵)이 없는 세상 말이다. 그날이 오면, 냉이 한 상 받쳐 들고 율량다리(필자가 어렸을 때 놀던 충북 청주시 외곽에 있던 다리 이름이다. 그 밑으로 맑은 개울이 흘렀다.) 밑으로 가련다. 벗님네 불러 모아 꾀벗고 춤이라도 출 요량이다.

 

천렵(川獵), © 국립민속박물관
천렵(川獵), © 국립민속박물관

 

편집 :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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