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재이, 사랑둥이들

눈을 떴다.
거실이 훤하다. 아내는 자기 침상에 앉아 황◯◯ 신부의 강의를 듣고 있었다. 05시 23분을 지나고 있다.

아내는 오늘도 어김없이 04시쯤에 일어났을 것이다.
먼저, 식물 성장 조명을 모두 켰을 것이다. 그리고 어제 온종일 손주들이 놀다 간 이부자리를 개키고 장난감을 정리했을 것이다. 손주들의 수저•물병•물컵•식판 따위도 소독하고, 소리를 죽이면서 너저분한 식기를 모두 설거지했을 것이다. 이어서 남편이 좋아하는 시래기된장국을 끓여 놓고 샤워를 마쳤겠지. 정성스럽게 머리를 매만지다가, 거울 속 얼굴을 열모로 뜯어보면서 한동안 감회에 젖었을 것이다….

진이가 시술되던 날

오늘은 3월 7일, 딸이 병원에서 시술되는 날이다.
어미만 한 간병인이 어디 있겠는가? 아내가 그 곁을 지켜주기로 했다. 예약 시각은 07시 30분. 딸을 데리고 가려면 서둘러야 한다. 아내는 빈속으로 06시 50분에 집을 나섰다.

서누 고모
두이 마노라
[영][원][한] 재이 어멈
사랑하는 우리 공주, 아자자!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우리 아이들과 함께하는 단톡방에 올린 소회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딸의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휘돌아간다. 여울 굽이굽이 춤추듯 너울거렸지만, 맺힌 데 고인 데 꺾인 데 어찌 없으랴. 파이고 깎인 데가 너무 많다….

그날도 선친께서 이름을 지어줄 테니 기다리라고 하셨다.
그렇지 않아도 아들 이름이 내키지 않았던 터라, 이참에는 딸이라서 그냥 지었다고 얼버무렸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 산신령이 현몽한 이름이 곧 ‘진이(眞伊)’다. 조선 최고의 여류시인과 이름이 같다. 그 또한 지 운명이려니 하면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호적에 올렸다. 우리 딸, 진이!

아내는 중계하듯이 잇따라 문자를 띄웠다.
08:30 “난 5층 대기실에 있고, 진이는 3층 수술실로 갔다.”
09:35 “시술은 잘 끝났다. 마취 깨고 회복되면 퇴원한단다.”
09:49 “1시 반에 퇴원한대. 전신 마취라서 4시간 경과 지켜봐야 한대.”

하늘이 내린 홍복, 우리 '하니'

딸은 어느 날, “오빠 다음으로 가장 편한 남자”를 앞세우고 나타났다.
그걸로 끝이었다. 당사자도 아닌 아비가 뭘 검증하겠는가? 지네가 살 집이요, 지네가 쓸 세간붙이다. 무슨 예단이니 예물이니 상견례 따위는 부수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사위는 함진아비가 돼 청사초롱도 없이 어느 날 불쑥 들어섰다. 입이 귀에 걸린 딸은 지연 전략 없이 손잡고 맞이하는데, 지켜보던 아들은 사진을 찍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날 예비 장모는 랍스터까지 차려놓고 함값을 충분히 치렀다.
그런데 예비 신랑은 뒷전이고 횡재한 이는 따로 있다. 예비 장인만 수지맞았다. 어쨌든 사랑가를 부를 때 예행연습은 무용하다. 둘이 좋으면 그만이다.

몸이 무거워진 딸은 입덧이 심했다.
남편이 출근하면 ‘엄마 집’으로 출근했다. 그때 몸이 상할 대로 상한 아내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두고 봐라. 너한테 친정엄마가 있다는 걸 보여 줄 거야.”

‘하니’는 그렇게 우리를 찾아왔다.
2019년 12월 24일이다. 고양시 ‘하늘마을’ 사는 필부필부에게 귀하디귀한 손을 하사하니, 어찌 하늘이 점지한 뜻이 없다 하겠는가? 내 생애 처음이다. 하늘이 내린 홍복(洪福)이었다. 하늘을 이고 사는 자의 기쁨이 이보다 더할까? 뭘 해도 재미지고, 아쉬울 게 없었다. 가진 게 없지만, 차고 넘치는 생활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가진 게 없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듬해 1월 초순, 아내는 조리원에서 요양하던 딸을 낚아채듯이 집으로 데리고 왔다.
결국 6월 23일, 우리집 옆 동으로 이사하면서 친정살이는 끝을 맺는다. 처음에는 사위도 주뼛거렸지만, 더부살이로 여기지 않고 아들보다 더 살가운 아들이 됐다. 그런 사위를 보고 아내 친구들은 ‘봉을 잡았다.’고 했고, 아내는 ‘아들이 둘이 됐다.’고 좋아했다. 사위와 딸은 물론 우리 내외는 행복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복에 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육아 체험, 6시간

약속대로 09시 40분경 사위가 왔다.
유모차 가리개를 벗기자 앉아 있던 ‘영이’가 날 보고 방긋거린다. 조심스레 안았다. 안기자마자 엉덩이부터 달싹거린다. 아기 가방을 들고 뒤따라온 사위가 아기용품을 주섬주섬 내놓는다.

‘영이’는 조금 있으면 잘 거라고 했다.
12시경에 깨워서 밥을 먹이면 된단다. 이유식은 전자레인지에 넣고 1분 30초만 돌리라고 했다.

-잘 때 이불은 덮어 주지 마세요.
-전기장판은 켜지 않는 것이 좋아요.
-쪽쪽이를 물려주면 잠투정을 멈출 거예요.
-자칫하다가는 침대에서 굴러떨어질지 몰라요.
-기저귀랑 턱받이는 따로 챙겨놨어요.
-물은 40도로 맞춰서 먹이세요.
-이유식은 뚜껑을 열고 데우세요.
-작은 종발에 조금씩 담아서 먹이세요.
-뜨거울지 모르니까 호호 불어서 먹이세요.
-‘워니’ 숟가락 말고 아기 껀 수젓집에 따로 있어요.
-참, 이유식 뚜껑에 있는 비닐은 반드시 전부 벗겨내세요.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낭패를 보거든요…….

노루처럼 맑은 사위 눈빛이 간절하다.
이것저것 깨알처럼 신신당부한다. 아니 시시콜콜 늘어놓더니, 이유식 3병을 냉장고에 넣는다.

오늘은 마침 수업이 2교시부터라서 한갓진 편이라고 했다.
부리나케 나가다 말고 옷깃을 여미면서 아들을 빤히 들여다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영이’는 상글상글 웃으면서 옹알거리느라 여념이 없다.

‘워니’는 간밤에도 10시가 이르러서야 자리에 누웠을 것이다.
미끄럼틀을 타다가 버스를 몬다고 ‘부릉부릉’, ‘빵빵’ 떠들썩했겠지. ‘엄마랑 그만 잘까?’는 말에 ‘시러시러’를 되뇌면서 요리조리 내빼고 다녔을 것이다. 오르락내리락 정신 사납게 소파 팔걸이에서 등받이로 들이뛰다가, 넘어져서 이마를 파묻고 거짓 울음소리를 내다가, 호호 불어주던 어미 목을 껴안고 연신 뽀뽀 세례를 퍼부었을 것이다. 동화책을 읽어 주는 어미 옆에서 뒤척이다가, ‘함미, 하삐 집에 가!’하고 소리소리 질렀을 것이다. 불을 끄고 한동안 다독였지만 말끝마다 ‘시러시러’ 하고 내쏘면서 도리머리하더니 지가 어쩌겠는가. 이내 쌔근거리며 잠이 들었을 것이다.

속도 모르는 ‘영이’는 11시가 넘어서도 자리에 누울 기미가 없었을 것이다.
아비가 안 되겠다 싶었겠지. 아기띠를 걸쳐 매고 어둠 속을 서성댔을 것이다. 겨우 잠든 두 아들을 바라보면서 딸과 사위는 한숨을 돌렸을 것이다. 사위는 그제서야 이튿날 수업 지도안을 들여다보았을 테지. 둘은 밤이 이슥하도록 잠 못 이룬 채 가만가만 속삭이다가 웃다가 어느 순간 곯아떨어졌겠지. 어쩌면 온밤을 꼬박 지새웠을지도 모른다.

부스스 눈을 뜬 딸은 자는 ‘워니’를 말끄러미 바라보다가, ‘영이’ 아침을 데웠겠지.
사위는 처를 배웅하고 ‘영이’에게 아침을 먹였을 거다. 눈맞춤을 하면서 갖은 아양을 부리던 ‘영이’는. 그 깜찍한 조댕이를 내밀고 달게 받아먹었을 거다. 이윽고 ‘영이’를 보행기에 앉혀 놓고, 자던 ‘워니’를 깨웠을 것이다.

몇 차례 응석을 부리던 ‘워니’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엄마’를 찾았겠지.
‘엄마’를 부르며 눈물을 갈쌍이던 ‘워니’를 어르고 달래면서 아침을 먹였을 것이다. 이내 어푸어푸 얼굴을 씻기고 치카치카를 마치고 머리를 빗겨 주었을 것이다. 또다시 주섬주섬 옷을 입히느라 씨름했을 것이다. 그때마다 ‘워니’는 ‘낸니’라고 외치면서, 지가 바지를 입고 단추를 채운다고 응석을 부렸겠지.

겨우 ‘워니’ 신발을 신기고 둘을 유아차에 태울 때 다시 한바탕했을 것이다.
숫진 ‘영이’야 앙탈이랄 것도 없지만, 우리 ‘워니’는 문도 지가 닫아야 하고 승강기 단추도 지가 눌러야 한다고 얼마나 벋댔을까? 또, 승강기를 기다리는 동안 열린 방화문 밖을 기웃거리며 ‘우와’를 연발하면서 겅중겅중 뛰어다녔을 거다. 곁눈질로 흘끔흘끔 아비를 살피다가 한두 걸음 계단으로 내려가지 않았을까? 결국 아빠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가까스로 승강기에 올랐을 거다. 만나는 이마다 허리를 있는 대로 굽히고 인사를 했겠지. 그러다가 ‘안뇽!’하고 손을 흔들었을 거다.

사위는 어린이집에서 처갓집으로 한 바퀴 돌았다.
차마 안 떨어지는 아들 둘을 뒤로한 채, 09시 50분에 출근했다.

아내의 비밀방, 베란다 정원

자, 이제 시작이다!
집에 ‘영이’랑 둘만 있다. 냉큼 ‘까짓것’하고 당차게 오냐오냐했지만, 벌써부터 조마조마하다. 어쩌다가 한두 번 데리고 있었을 뿐, 그나마 길어야 몇십 분이라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아내는 빨라도 14시가 넘어야 올 것이다. 꼼짝없이 줄잡아 네 시간은 데리고 있어야 한다.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되는데…. 전화기부터 챙겼다.

‘영이’는 유난히 나를 잘 따른다.
내 소리만 듣고도 둘레둘레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잽싸게 기어와서 덥석 안긴다. 안기기도 전에 손을 벋어 뭔가를 가리킨다. 그쪽으로 데려다 달라는 거다. 그중에서도 점멸하는 불빛과 어항 속에서 헤엄치는 구피와 기포 발생기, 그리고 알록달록한 꽃을 특히 좋아한다.

베란다는 아내의 쉼터요, 놀이터요, 비밀방이다.
크고 작은 반려 식물이 대략 400여 개니, 꽃동산이라 불러도 손색없다. 34평 아파트다. 그러니까 베란다에서는 사실 움치고 말 게 없다. 내 몸 하나 겨우 비집고 다닐 처지다.

베란다 안방 쪽 바닥에는 제법 큰 화분이 놓여 있다.
창문 쪽에는 천장에서부터 3단으로 걸이 화분이 늘어져 있다. 양옆으로 화분대 겹겹이 트레이 묘목과 삽수판이 즐비하고, 급수대와 작업대, 분무기, 원예 도구 등이 가지런하다. 차를 마시는 원탁 테이블 위에도 앙증맞은 화분이 빼곡하다.

그러니 빨래통을 들고 세탁기까지 오가려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온몸을 오그리고 더수기를 푹 숙인 채 조심조심 내디뎌야 한다. 창고 쪽도 마찬가지다. 상토, 마사토, 펄라이트 등 분갈이 흙과 각종 퇴비가 쌓여 있고, 매트 채반 지주대 결속끈 연장통 등이 선반 위에 널려 있다.

한편, 베란다 쪽 거실은 또 다른 꽃동산이다.
가지가지 제라늄과 칼랑코에로 빈틈이 없다. 군데군데 페라고늄과 칼란디바도 섞어 놓았다. 그래서 우리집에서는 연중 하루도 거르지 않고 홑꽃과 겹꽃을 볼 수 있다. 꽃색도 무척 다양하다. 붉은색만 하더라도 연붉은색 검붉은색 희붉은색 새붉은색 누르붉은색 연분홍색 진분홍색 등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민망하다.

아무튼 ‘영이’는 꽃을 제법 좋아한다.
꽃색까지 가릴 줄 아는 걸까. 손을 벋을 때마다 특정 색깔을 고집한다. 진득하지 못하고 쉬이 뉘를 내는 건 아기의 속성이리라. 이 꽃 저 꽃을 집적거리다가 ‘끄으’ 소리와 함께 어항을 가리킨다. 어김없이 어항 앞으로 뽀르르 다가가지만,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다시 ‘끄으’ 소리를 낸다.

필자가 사는 집 거실
필자가 사는 집 거실

 

나 말고 아무도 없다.
오로지 나만 바라본다. 잠시도 가만있질 못한다. 내려놓으려는 기미만 보여도 울먹울먹한다. 자신을 숨기는 법이 없다. ‘끄앙’ 하고 서럽게 운다. 어서 안고 놀아 달라는 강력한 신호음이다. 한눈을 팔 수가 없다.

다시 엉덩이를 바치고 도닥인다.
‘보, 보, 보봉’ 소리가 리듬을 타고 흐른다. 먹고 놀고 자는 것만 귀여운 게 아니다. 세상에 이런 사랑받이가 또 있을까?

돌맞이가 열흘 앞이다.
80cm 아기가 내는 방귀 소리는 정말 아름답다. 도닥도닥 소리에 맞춰 ‘보봉 보봉 보보보봉’ 할 때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이 또한 사랑앓이인가 보다. 절로 웃음이 나온다. 어깨 너머에서 도리반대다가 고개를 바짝 세운다. 누군지 확인하는 거다. 나도 웃고 ‘영이’도 웃는다.

똥 기저귀 한번 빨아 보고 싶다

아닌 게 아니라 되긴 되다.
유아차를 끌고 나갈 형편이 아니다. 날이 쌔코롬허다. 희부연 하늘이 원망스럽다. 잘 때가 지났는데 놀아달라고 보챈다. 별수 없다. 포대기로 싸 업었다. 좋은가 보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팔다리를 요란스레 흔들어젖힌다. 쉽지 않다. 소파에 앉아 요리조리 두르면서 겨우 끈을 묶었다. 곱사춤사위가 그럴까? 엉거주춤히 온데를 싸돌았다.

대체 딸은 온종일 어떻게 지낼까?
하루 이틀이 아니다. 아들 셋에 치여 지낸 지 4년 9개월째이다. 단 한시도 뺜한 틈 없이, 친구들과 맘 놓고 차 한 잔 마시지 못한 걸 안다. 오로지 육아에만 전념한 채, 오 년을 하루같이 살아온 아이다.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사실 아이 셋 가진 어미가 한 손 놓고 지낸다는 건 가당치 않으리라. 그래도 그렇지, 저러다가 복직하면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나 있을까? 기를 쓰고 ‘워니’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새삼 딸이 안쓰럽다.

아내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길렀을까?
나는 그때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었지? 기저귀를 찬 아들과 딸이 삼삼하다. 내 손으로 기저귀를 갈아준 때가 있었나? 가물가물하다. 하물며 턱받이나 똥 기저귀를 빨아본 적이 있을 리 없다. 유모차도 없었다, 딸을 업고 아들은 걸리고 한손엔 시장바구니를 들고 다녔다. 성산동에서 가좌동 모래내시장까지 걸어가서 남편 저녁거리를 준비하던 새댁이었다. 그 흔한 천 원짜리 슬리퍼를 기워 신고 다녔다. 아내는 백 원이 아까워 마을버스를 타지 않았다. 아프다. 미안하다. 부끄럽다. 그냥 목이 멘다.

허울뿐인 K브랜드

언제부턴가 ‘K브랜드’ 정책(?)을 남발했다.
K팝 K드라마 K푸드 K컬처 K뷰티 K방역 K리빙 K관광 K디지털 K콘텐츠 K경제 K조선 K국방 K무기 따위가 그것이다. 나중에는 ‘K일상’까지 부르짖었다. 누가 만든 말인지도 모르지만, 신조어치고는 참 조악하다. 게다가 국적불명이다. 제발 ‘KKK’ 좀 그만 뇌까리라.

하여튼 다 좋다.
그러면 ‘K출산’ ‘K육아’ ‘K보육’ ‘K돌봄’ ‘K유아’ ‘K키즈’ ‘K의료’ ‘K복지’는 어떤가? 입 뒀다가 얻다 쓸 건가? 먹고 씹고 마시지만 말고, 가슴에 손을 얹고 답해 보라. 총선을 앞두고 개나 소나 ‘먹튀 공약’을 쏟아내는데, 뭣 하나 와 닿는 게 없다. 물기 없는 어미아비 마른가슴 들춰내랴? 우질우질 타들어가는 늙은이 소가지를 보여 주랴? 손주 잃은 천하의 모질이도 그쯤은 알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은 각자도생이었음을.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나라가 되어 버린걸.

[영][원][한] 재이를 위한 자장가

보채던 ‘영이’가 잠잠하다.
얼씨구나, 됐다 싶어 거울에 비춰본다. 잘듯 말 듯 움직임이 없다. 아이고, 여전히 눈이 말똥말똥하다. 나는 다시 그네가 된다. 침대에 걸터앉아 흔들거리는 앉은그네가 되고, 거실을 돌아다니는 회전그네가 된다. 그네를 태우면서 자장가를 부른다. 어쩌면 어설픈 자장가가 자려는 아기, 깨우는 건 아닌지…

자장자장 우리영이 잘도잔다 우리영이
먹고놀고 놀고자고 자고싸고 다시먹고

둥개둥개 우리워니 어허둥둥 우리워니
자다깨서 다시놀고 놀고먹다 다시싸고

오매불망 우리하니 사랑둥이 재롱둥이
하늘나라 부귀둥이 초롱초롱 눈밝혀라

우리영이 우리워니 어짜든지 잘도커라
집도절도 죄다싫다 아프지만 말아다오

니가자면 나도자고 니가깨면 나도깨고
니가놀면 나도놀고 니가울면 나도울고

영이워니 다있는데 우리하니 가고없다
함미하삐 예있는데 어찌너만 가고없냐

얼척없는 시상에서 태어난게 잘못이다
우룽우룽 불태우고 얼싸절싸 놀아보자

어미아비 함미하삐 니네보고 살아간다
눈물없는 시상에서 달강달강 놀아보자

니가가고 내가사니 사람세상 아니로다
우리하니 다시만나 천년만년 살고지고

둥개둥개 내사랑아 어절씨구 잘도잔다
어허둥둥 내사랑아 콜콜쌕쌕 잘도잔다

사랑사랑 우리영이 천금사랑 우리워니
사랑옵던 우리하니 영원불멸 우리재이

이내몸이 나이들어 흐슬부슬 무너진들
돌고도는 인생이라 홍복으로 알고가마

 

☛딸은 아들이 셋이다. 차례대로 ‘재한’, ‘재원’, ‘재영’이다. 돌림자 – 재(在) -를 빼면 ‘[한원영]’이다. 딸은 이를 막내둥이부터 적는다. 그래서 아들 셋은 ‘[영][원][한] 재이’다.

‘하니’는 2021년, 첫정을 주고 떠났다. 어미가 결혼한 12월 22일 하늘로 갔다. 그로부터 이틀 뒤, 12월 24일 청아공원에 묻혔다. 그날은 우리하니가 세상에 나온 날이었다. 불과 729일 동안 살다 갔지만, 너무나 크고 너른 하늘이었다. 하니를 기억하는 우리 모두에게는....

김유진(이모)이 하니에게 쓴 편지
김유진(이모)이 하니에게 쓴 편지
하니와 워니(2021년), 하니는 워니가 태어난 지 49일 되던 날 하늘강을 건넜다.
하니와 워니(2021년), 하니는 워니가 태어난 지 49일 되던 날 하늘강을 건넜다.
워니(좌)와 영이(우), 영이의 돌 기념 사진(2024년 3월)
워니(좌)와 영이(우), 영이의 돌 기념 사진(2024년 3월)

편집 :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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