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새로운 친구 오디오북 1

집에서 5분만 걸어가면 ‘여행공원’이 나온다. 여성이 행복한 공원이란다.

여행공원
여행공원

여행공원에서 5분만 걸어가면 이런 숲길이 나온다.

소나무 숲길 
소나무 숲길 
숲길 
숲길 

요새는 아침 업무 시작 전 운동 차, 이 숲길을 찾는다. 피가 나이에 비해 깨끗하다 소릴 들었는데 코로나로 움직이는 시간이 줄어 운동이 부족했는지.. 한 달 전 피검사에서 중성지방이 갑자기 확 올라갔다고 운동량을 좀 늘리란다.

아침 산책을 하다 보면  아침 일찍 나와 청소하는 알흠다운 아저씨도 만나고... 

출입금지 띠를 넘어 들어가 운동하는 막무가내 할아버지도 만나고...

긴 막대로 바닥을 헤집어가며 도토리를 슬쩍 하시는 할머니들을 만나 짧은 잔소리도 할 수 있어 심심치 않다

아니 심심하거나 지루하기는커녕 혼자 슬슬 걸어도 시간가는 줄 모른다. 오디오북에 푹 빠져서 걷기 때문이다. 오디오북은 올 1월에 만났다. 나는 좀 예민한 편이다. 신경 쓸 일이 생기면 잠을 깊게 자지 못하고 자주 깬다. 이런 잠 못 이루는 밤을 달래기 위해 ‘잠잘 때 듣는 음악’에서 ‘잠잘 때 듣는 이야기’로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어릴 때 책을 무척 좋아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을 거다. 한번은 <십이소년 표류기>를 보다가 엄마의 밥 먹으란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나를 수차례 부르시다가 엄마는 역정이 나셨다. 책 보고 있는 방으로 오셔서 책을 빼앗고 내 등짝을 마구 때리셨다. 그래도 또 그러고 그랬다. 책에 빠져있을 때는 밥 먹는 것도 뒷전이었다.

연애도 책보다 뒷전이었다.  <장길산>에 푹 빠져있을 때였다. 일요일, 지금 남편이 데이트 하자고 했다. 책을 놓기 싫어 요리조리 핑계를 댔다. 집 앞 찻집으로 온다고 했다. 그것도 싫어 또 핑계를 댔다. 그러나 내 의견을 무시하고 왔다. 나는 마약 같은 책을 가지고 나가 보았다. 남편은 화가 났는지 아무 말 않고 굳은 표정으로 나만 쳐다보다가 가버렸다. 그 일이 냉전으로 치달아 결혼하지 못할 뻔 했다.

그렇게 책을 좋아하던 내가 이젠 책보기가 힘들다. 서글프지만 노안이 왔다. 심한 복시도 왔다. 둘 다 고칠 수 없는 거라 적응해서 살아야 한다. 특수 안경도 맞췄는데 그 안경으로도 책을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프다. 촛점을 맞추기 위해 눈에 힘을 줘야하기 때문이다. 많이 적응했지만 신문은 글자가 작아 보는 것이 여전히 힘들다. 점점 책도 멀리하게 됐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타인의 삶을 짧은 시간에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그 삶을 음미해보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 아닌가? 그 재미를 못 느끼나보다 했는데 새로운 세계를 찾았다. 오디오북이다. 나직나직한 소리로 읽어주는 소설을 틀어놓고 그 소리에 집중하다보면 어느새 스르륵 잠이 든다. 잠들어 듣지 못한 부분은 주로 아침 산책 1시간동안 차근차근 듣는다.

그 중 인상 깊게 들은 소설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윌라 캐더'의 단편소설 <폴 이야기>다 

‘윌라 캐더’는 1873년 미국 버지니아에서 태어났다. 잡지 편집자와 교사로 일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23년 〈우리 것 중의 하나 One of Ours〉(1922)로 퓰리처상을 받아 이름을 알렸으며 1947년 세상을 떠났다.

'윌라 캐더'는 최근 국내 매스컴에 등장한 바 있다. 영화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은 '윌라 캐더'의 <나의 안토니아>를 읽고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1918년에 나온 <나의 안토니아>는 '윌라 캐더'의 체험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척박한  네브래스카 땅에서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이민자들 이야기다.

<폴 이야기(Paul's Case)>는 1920년 단편집 < Youth and the Bright Medusa(젊은이와 영리한 메두사)〉에 실린 글이다.

폴은 어려서 엄마를 잃고 아버지와 살아가는 소년이다. 안정되지 못한 가정에서 사랑도 격려도 받지 못한 채 외롭게 성장한다. 폴은 관심과 인정을 받고자 발버둥 치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문제를 일으킨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상상의 거짓말쟁이가 된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문제행동의 결과만 보고 원인을 보려 하지 않는다. 그를 불쌍히 여겨 도우려는 주변 손길도 없다. 학교선생들도 폴을 냉대하고 배척하기만 한다. 결국 폴은 학교에서 퇴학당한다. 가장 좋아하는 연주회장과 극장에서도 쫓겨난다. 폴은 갈 곳을 잃는다.

작가는 폴의 상태를 이렇게 썼다.

"지난 수년간 그는 항상 불안과 공포에 시달려 왔음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제까지 그는 항상 뭔가를 두려워하며 지내왔다. 그렇지 않았던 때를 기억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가 아주 어린아이였을 때조차 공포나 두려움은 그의 뒤나 바로 앞, 아니면 옆에 존재하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그늘지고 어두운 구석이 너무나 두려워 폴은 차마 그곳에 눈길조차 줄 수 없었지만 그곳에는 언제나 그를 바라보는 눈길이 있는 듯 했다."

폴은 이해하기 힘든 아이였다. 아니 이해할 수 없는 아픈 아이였다. 치료가 필요했지만... 그가 아프다는 것을 사람들은 어렴풋이 알았지만... 아무도 손잡아주지 않았다. 그 당시 오로지 생존을 위해 달려가야만 하는 그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인간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이해하려 한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그리하여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생명을 살리는 가치 있는 일이다. 폴의 경우를 보며 새삼 생각해본다.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양성숙 편집위원

김미경 부에디터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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