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새로운 친구 오디오북 5

책에 욕심이 많았다. 봤던 책, 보지 못했던 책도 버리지 못하고 끌고 다녔다. 작년 1월에 한국에 다니러 온 딸과 아들이 집 정리 좀 하자고 했다. 자신들이 무거운 것들을 버려주고 가겠다는 거다. 이것저것 버리는데 군말 없이 따랐지만, 책과 영화 비디오테이프만큼은 버리기 싫다고 버텼다. 책은 내 일부 같았기에 버릴 수 없었다. 영화 비디오테이프는 25년 전부터 착실히 모아 온 것이기에 끌어안고 싶었다. 한국에선 구할 수 없는 정말 귀한 영화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단호했다. ‘없는 손주들 이야기하지 말고... 앞으로 볼 거냐 말 거냐’를 선택하라고 했다. 할 수 없이 아이들 말에 따랐다. 비디오테이프는 다 버렸고 갖고 있던 책도 반 정도 버렸다. 버릴 책과 테이프를 수없이 들었다 놨다 하면서 결심했다. 앞으로 되도록 책을 사지 않을 거라고... 눈도 불편한데 소유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최근에 책을 사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오디오북에서 맛보기로 들려준 <레슨 인 케미스트리>(Lessons in Chemistry/보니 가머스 Bonnie Garmus)가 무척 재미있었다. 다음 줄거리가 궁금했다. 책을 살까 생각 했지만 책을 갖지 않고도 보는 방법이 있었다. 지난 5월 집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작은 도서관이 생겼다. 새로 생기고 내부 공간이 작아 보유한 책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찾는 책이 없어도 신청하고 최대 이틀만 기다리면 우리 구에 있는 다른 도서관에 있는 책을 가져다준다.

지난 5월 개관한 한옥도서관
지난 5월 개관한 한옥도서관

<레슨 인 케미스트리>는 미국에서 1950~1960년대를 살아간 여성 화학자 이야기다. 그 시대는 여성은 과학자로 자리를 잡기 힘들 정도로 성차별이 만연했고 심지어 성폭행도 있었다. 주인공 엘리자베스 조트는 온갖 차별과 모함 등에 짓밟히고 좌절한다. 그래도 엘리자베스는 꿈을 놓지 않는다.

엘리자베스는 동료 과학자이자 평생 동반자로 생각했던 남자친구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비혼모가 된다. 비혼모라는 이유로 일하던 연구소에서도 해고된다. 그는 집에 화학실험 장비를 갖추고 자신의 연구를 이어 나간다. 다른 연구원들 연구도 도와주고, 연구 결과도 공유한다. 하지만 남자 과학자들은 그의 연구를 가로채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엘리자베스는 우연한 기회에 TV 요리 프로그램 '6시의 저녁 식사' MC로 나가게 된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는 다른 요리 프로그램과 달리 요리와 화학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독특한 진행을 한다. 또한 가정주부가 주 대상인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요리는 화학입니다. 화학은 생명이지요. 모든 것을 바꾸는 여러분의 능력, 자신을 바꾸는 능력도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라며 여성의 능력을 지지하고 꿈의 실현을 강조하는 수업으로 인기가 폭발한다.

엘리자베스는 그 시대의 다른 사람보다 앞서 나간 페미니스트다. 여성들의 숨겨진 혹은 억눌린 능력을 일깨우며 자신감을 넣어준다. 동시에 자신의 역경을 하나하나씩 헤쳐 나가며 소원하던 연구소의 책임연구원으로 복귀한다.

워낙 줄거리가 흥미진진해서 'OTT 애플TV+'가 8부작 드라마 제작을 결정했다고 한다. 노안 등으로 눈이 불편해 책보기가 어려운 이들은 드라마를 기다렸다 봐도 되겠다. 

작가 ‘보니 가머스’는 65세 나이에 첫 작품 <레슨 인 케미스트리>를 발표했다. 데뷔작이 ‘2022년 최고의 소설’로 극찬받고 있다. 수십 년 동안 가머스는 머릿속에서 와글와글 돌아다니는 이야기를 어떻게 눌러놓고 있다가 뒤늦게 끄집어냈을까? 참으로 궁금하다.

얼마 전 <한겨레>에서 엘리자베스 조트와 비슷한 여성 과학자 기사를 보았다.

30년 뒤에야 연구 성과 인정받아 노벨상 받은 여성 유전학자

기사 내용을 요약해보면 바버라 매클린톡(1902~1992)은 과학자로 대학교수로 있을 때, 열쇠를 안 가져왔다며 건물 벽을 타고 연구실에 들어간 적이 있다. 연구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과학자의 전형이랄까? 매클린톡은 1940년대 여성 과학자로서 인정받았지만, 학계에서 고립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그의 연구를 뒷받침하는 연구들이 하나둘씩 발표되었다. 드디어 198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런데 집에 전화기가 없어서 라디오로 그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매클린톡의 수상 소감도 재미있다. “나 같은 사람이 노벨상을 받다니, 불공평합니다. 옥수수를 연구하는 동안 나는 모든 기쁨을 누렸어요. 옥수수가 이미 충분한 보상을 해줬습니다.”

매클린톡은 옥수수를 무척 사랑한 것 같다. 과학자들은 정말 엉뚱하고도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편집 : 김미경 편집장

김미경 편집장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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