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 pxfuel.com / 출처 :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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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는 온통 1957년 이후 최고의 10월 한파라고 했다. 한강공원 연인들은 담요를 뒤집어썼고 홍대 근처의 주점가 인파가 경찰과 공무원의 거리두기 단속에 순순히 응했다고 전했다. 건강한 젊은이도 추운 날씨에 밤 10시 넘어까지 거리에 서성이려 하지 않았다고 취재기자가 덧붙였다. 내일도 오늘 못지않게 춥다는데, 20대 마지막 시기를 구가하는 막내는 10시가 넘도록 집에 들어올 기미가 없다.

뉴스 진행자는 농작물 냉해를 걱정했다. 설악산은 영하 9도를 기록했다는데, 고랭지에서 주로 재배하는 김장용 배추와 무가 얼어붙는 건 아닐까? 경기도 북쪽에 사는 SNS 친구는 마당에 살얼음이 끼었지만. 해가 떠오르자 녹았다고 귀띔했다. 이번 주가 지나면 예년 날씨를 회복한다고 하니 기상 담당 기자의 걱정과 달리 냉해 없이 지나가길 바라는데, 64년 만의 추위의 기록이 조만간 경신된다면? 장담할 수 없다. 너도나도 다수확 품종만 심는 요즘 고랭지 채소는 기상이변에 약하므로.

10월 한파를 걱정한 뉴스는 화제를 바꿔 강원도 고성 바닷가에서 수확하는 사과를 보도했다. 환경부는 현재 추세로 온난화가 진행된다면 금세기 안에 한반도에 사과 재배지가 사라질 거라 예견한 적 있는데, 재배지 상승 소식이 그리 반갑게 들리지 않는다. 특산물 가능성을 살피는 고성군의 기대가 언제까지 유효할지 궁금해진다. 그런데 뉴스 화면의 사과나무가 이상하다. 가지가 아니라 줄기에 붉은 사과가 드문드문 붙였다. 어린나무에서 사과를 따려고 육종한 품종이다. 인건비는 아끼겠지만, 나무의 수명은 짧을 것이다. 유전 다양성의 폭이 좁으니 기후변화에 속수무책이겠지.

카메라 앞에 선 젊은이는 기자의 의도가 보이는 질문에 장단을 맞췄지만, 그다지 추워하지 않았다. 담요로 야외의 쌀쌀함을 견뎠고, 언제든 따뜻한 실내 공간으로 피할 수 있지 않은가. 내일도 마찬가지일 거고, 매서운 한겨울에도 근처 실내는 늘 따뜻하다. 두툼한 양가죽과 오리털 외투는 웬만한 바깥 추위는 무시하게 만든다. 오히려 따뜻한 겨울이 걱정이다. 작년과 재작년은 제설차가 필요 없을 정도로 따뜻했는데, 올해는 어떨까?

뜻하지 않은 더위와 추위가 문제다. 난방이 필요 없던 미국 텍사스에 작년 겨울 한파가 몰아쳐 분수가 얼어붙었다. 부자들은 난방 공간으로 재빨리 피신했지만, 비용 부담이 어려운 계층은 오돌오돌 떨어야 했다. 2003년 프랑스에 섭씨 42도의 열파가 급습하자 에어컨 없는 주민과 번듯한 직장이 없는 이주민 3만이 사망했다. 최근 45도를 넘나드는 열파에 휩쓸리지만, 2003년처럼 희생되지 않는다. 대피소에 에어컨을 켠다.

2018년 1월 ​ 미국 북동부를 강타한 기록적인 한파로 2일(현지시각) 나이아가라 폭포가 얼어붙었다. 연합뉴스(원문보기: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826470.html#csidx37c2953e38434a6bc3883a9598c8f19 )
2018년 1월 ​ 미국 북동부를 강타한 기록적인 한파로 2일(현지시각) 나이아가라 폭포가 얼어붙었다. 연합뉴스(원문보기: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826470.html#csidx37c2953e38434a6bc3883a9598c8f19 )

올해 우리 여름은 몹시 더웠다. 폭염주의보가 30일 넘게 이어지자 전기 사용량이 폭증했다. 사람이야 에어컨으로 폭염을 피했지만, 선풍기에 의존하는 가축이 걱정이었다. 올여름을 넘어서는 폭염이 닥친다면 가축을 다닥다닥 붙여 사육하는 축사마다 에어컨을 가동해야 할지 모른다. 전기 소비가 늘어나는 만큼 이산화탄소 배출이 늘겠지. 덩달아 기후위기가 심해질 것이 틀림없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 걱정이 크다, 급작스러운 기온변화는 유전 다양성의 폭이 협소한 농작물에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 다수확을 믿었던 걸까? 지자체장은 농토에 아파트와 공장을 허가했는데, 정작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곡물 기준으로 20퍼센트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수입해야 생명을 부지하는데, 우리나라에 주로 수출하는 미국의 기상이변은 심각하다. 경작지의 사막화를 석유로 극복하지만, 한계가 다가온다.

1957년 가을, 엉금엉금 기는 아기는 아궁이에 군불 지피는 어머니를 성가시게 했을 것이다. 당시 추위를 기억하지 못하는 아기가 64년 만에 10월 추위를 만났는데, 전혀 춥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호강은 계속될 수 없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속담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낙타를 탔는데 나는 롤스로이스를 타고 아들은 제트비행기를 탄다네.” 그 속담은 “손자는 다시 낙타를 타야 할 걸세” 하고 마무리한다. 위기를 맞은 기후변화는 2000년 이후 기상이변의 기록을 거듭 바꾸게 만드는데, 이 땅의 현재 손주들은 10월 한파를 견딜 수 있을까?

* 출처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www.catholicnews.co.kr)에도 실렸습니다.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904

 

1988년 인하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환경 관련 강의를 수행하며 있으며 2021년부터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어쩌면 가장 위험한 이야기>(이상북스 2019) 외 다수의 저서를 발간했다.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박병상 독자통신원  Brilsymb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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