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합니다] 부모님 결혼기념일 축하하는 딸의 글

왼쪽부터 아버지 이명수, 어머니 유홍숙씨 부부. 딸 이미나 작가 제공
왼쪽부터 아버지 이명수, 어머니 유홍숙씨 부부. 딸 이미나 작가 제공

우리 부모님이 새로 태어났어요! 새롭게 탄생한 36년차 신혼부부 이명수·유홍숙 부부 결혼기념일을 축하합니다!

저희 부모님은 1986년 11월 11일 오전 11시에 결혼해서 88년 첫째딸 미란을 낳고, 90년 둘째딸 저, 미나를 낳았대요. 2021년 11월 11일을 보내기까지, 36년 세월을 함께 동고동락하고 있지요. 2013년과 2019년 각각, 반려견도 입양하여 가족이 더 늘었어요.

청소년 시절 ‘부모님은 일만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할 만큼 두 분이 늘 일로 바쁘셨어요. 먹고 사는 생계가 급하다 보니 서로를 들여다보고 사랑할 여유가 없으셨나봐요. ‘행복하려고 결혼을 했을 텐데, 왜 안 행복해보이지?’ 속으로 질문도 여러차례 했지요.

‘우리 부모님이, 누군가의 엄마와 아빠가 아니라 서로의 아내이자 남편으로 행복하면 좋겠다, 서로 사랑하면 좋겠다’라는 소원이 생겼어요. 그러면서 “사랑이 흘러넘치는 가족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엄마아빠가 다시 연인처럼 서로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 기도의 힘으로, 새롭게 태어난 우리 부모님을 너무너무 소개하고 싶어요! 자랑하고 싶어요! 엄마아빠 결혼기념일을 함께 축하하고 또 축복해주세요!

이참에, 엄마에게,

‘귀엽다. 사랑스럽다. 자랑스럽다. 올 시간이 됐는데 안 오면 그립다. 보고 싶다. 기다려진다.’ 요즘 우리 엄마는 내게 그런 존재예요.

열 달 동안 나와 한 몸이었던 사람, 내 팔뚝만 잡아도 체중 증감을 정확하게 맞추는 사람.(소름) 내일 모레 환갑인데 언니랑 자매처럼 보이는 사람, 그만큼 동안이랍니다. 냄새를 못 맡는데 커피를 내리고, 커피를 못 마시는데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 그래서 웃긴 사람. 음치에다 박치인데 누구보다 열심히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 그래서 더 웃긴 사람입니다. 음식을 맛있게 해서 예쁘게 담는 사람, 접시 위에 작품을 창조하는 사람, 그 장점을 살려 내 책에 큰 도움을 주는 사람, 색 감각과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입니다. 식물을 잘 이해하는 사람, 동물을 참 배려하는 사람, 훗날 큰 땅을 사서 다양한 꽃과 식물을 심고 작은 카페를 지어 즉석에서 사람들에게 꽃차를 대접하고 싶은 사람, 동물도 식물도 사람도 생명이라면 누구나 들어와서 한데 어울려 놀 수 있는 에덴동산을 짓고 싶은 사람, 그 꿈을 위해 현재 작은 카페를 운영하며 식물과 차를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한평생 가족에게 헌신한 사람, 받을 때보다 줄 때 더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가장 많이 기도하는 사람, 행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울었던 만큼 웃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 기도 응답을 지금 누리고 있습니다. 30년 살면서 봐온 엄마 모습 중 요즘 최고 행복해보입니다.

매일 웃습니다. 매일 웃깁니다. 점점 순수해지고, 더더 온유해지고 있습니다.난 엄마가 행복할 때 제일 행복해요. 유홍숙의 딸로 살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내가 행복한 만큼 엄마도 행복하면 좋겠어요. 나보다 엄마가 더 행복하면 좋겠어요. 정말 좋겠어요.

작가 이미나님 언니가 그린 엄마와 아빠
작가 이미나님 언니가 그린 엄마와 아빠

이참에, 아빠에게.

스물한 살 때, 대학에서 방과후 학교 봉사활동을 할 때, 한 선배 언니를 만났어요. 성도, 나이도 모르고 이름만 알았죠. 두 번째 보는 날, 언니가 슬픈 표정 지으며 말했어요. “어머니가 아픈데 돈이 부족해서 수술을 못 하고 있어. 금방 갚을 테니 200만원만 빌려줘.” 그보다 더 딱한 사연이 있을까, 마음이 아팠죠. 기다려 달라하고, 그날 밤 아빠와 산책하며 상황을 전했어요. 아빠는 딱 한 마디 하셨어요. “미나야, 미나가 믿는 사람이야? 미나가 믿는 사람이면, 아빠도 그 사람 믿어.

”우리 아빠, 이런 사람입니다. 나보다 나를 더 믿어주는 사람, 내 눈물을 가장 많이 본 사람, 내 미소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생일마다 용돈과 손편지를 머리맡에 두는 사람, 아직도 딸 손잡고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는 사람, 딸이랑 드라이브 가는 사람입니다. 여전히 아내를 아끼고 사랑하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홍숙이 꽃!”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하늘에 별을 따달라고 하면, 일단 사다리 타고 올라갈 사람입니다.

눈빛만 봐도 내 통장 잔고를 아는 사람, 몰래 용돈 챙겨주는 사람입니다.(자기도 없으면서) 작가란 모름지기 늦게 빛을 보는 법이니 조급해 말라며 토닥이는 사람, 내가 쓰는 글마다 박수치며 최고라고 칭찬하는 사람, 가장 열렬한 내 팬입니다.

아빠가 늘 뒤에 있으니 아무것도 두려워말라고 하는 사람, 듬직한 사람, 든든한 사람, 어깨 위에 앉혀놓고 자랑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한평생 딸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 신앙을 물려준 사람, 살아갈 이유를 알게 해 준 사람, 그것만으로 내게 전부를 준 사람입니다.

지구상에서 나보다 아빠 사랑 많이 받고 자란 딸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장담하건대 없을 거예요. 난 이미나보다 이명수의 딸로 불릴 때 더 행복해요. 아빠 딸로 살 수 있어서 영광이어요. 죽어서도 아빠 딸이고 싶어요.

 

칠곡/이미나 작가

■ 원고를 기다립니다. 

<한겨레>는 1988년 5월15일 창간 때 돌반지를 팔아 아이 이름으로 주식을 모아준 주주와 독자들을 기억합니다. 어언 34년째를 맞아 그 아이들이 부모가 되고 있습니다. 저출생시대 새로운 생명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합니다. ‘축하합니다’는 새 세상을 열어갈 주인공들에게 주는 선물이자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나 축하의 글을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겨레 주주통신원(mkyoung60@hanmail.net) 또는 인물팀(people@hani.co.kr).

* 이글은 2021년 11월 12일 <한겨레>에 실린 글입니다. 
* 원문 보기 : https://www.hani.co.kr/arti/society/media/1019019.html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김경애 편집위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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