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를 죽인 건 문세광이 아니다!

박정희 비자금을 파헤치는 것은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박정희는 18년간을 장기집권하면서 정치적으로는 국민의 저항을 잠재우기 위해 ‘조작을 통한 혐북정치’를 폈고 ‘분단고착’을 위해 민족자주가 아닌 ‘친미사대’를 선택했다. 전두환이 7년간 그것을 고스란히 이어받았으니 25년간 한국은 집중적으로 혐북, 분단고착, 친미사대의 정치를 지향한 셈이다. 그것은 수구세력들의 정신세계를 끌어왔으며 적폐들의 기득권을 지키는데 이용되어 왔다.

적페들이 지키려는 가장 큰 기득권은 ‘돈’이다. 적폐들은 정치권력으로 그 ‘돈’을 확보하고, 확대했으며 유지했다. 그 선봉에 있었던 것이 박정희다. 개인이나 기업으로부터 돈벌이를 시켜주고 막대한 돈을 갈취하는 것은 ‘맨정신’, ‘양심’을 가지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인데 박정희는 NPD(자기애성 인격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박정희 사후 그 돈은 외국으로 많이 분산되기도 했지만 현재 막대한 자금이 국내에서 적폐들에 의해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NPD 박정희는 현재까지 엄청난 해악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가 NPD라는 극명한 증거중 하나가 아내인 육영수 살해다. 1편에서는 살해의혹’이라는 단어로 약화시켰지만 결단코 문세광은 북의 지령에 따라 그 사건현장에 나타난 게 아니다.

“박정희 저 간나새끼는 천벌을 받아서 부하 총에 맞아 죽었지. 물 좋아하는 놈은 물에 빠져 죽고 총 좋아하는 놈은 총 맞아 죽게 되는 거라. 어찌 사람으로서 자기 자식을 낳은 부인을 죽일 수 있나. 지 마누라 죽인 놈이 사람임매? 저 간나새끼가 많은 사람을 죽였제이요?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여 놓고 어찌 천벌을 안 받겠음매? 오살해 죽일 새끼. 무릉치 같은 종간나새끼. 아버지 돈 빨아 처먹으려고 아버지가 외출할 때 종놈이 상전 대하듯 제 손으로 신발을 닦아서 놓아드린 놈이제이요. 평생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겠다던 놈이. 아버지 돌아가시자 입을 싹 닦고 우리를 이렇게 천대해? 우리 손으로 우리 눈을 찔른 기야.”

박정희 비자금 우리통장에 있어요. 247쪽에 나오는 채권자 한희승의 아내이자 이 책의 저자 한영순 어머니 백금남이 1979년 박정희 죽자 한 달여 만에 딸에게 비로소 털어놓은 이야기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어머니 주변에는 늘 정보부요원들이 포진해있었고 그 중에는 인간적으로 친해져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요원들도 있었다. 박정희가 특사 서정신(이 책의 키맨인 서정화 아우)을 보내 가족의 이민을 종용하던 때가 있었는데 조언을 구하는 어머니에게 그들은 ‘미국으로 이민가면 그곳에서 박정희가 가족을 다 죽일 것'이라 했다. 중정 요원이라면 모두 아는 게 육영수 살해 이야기라며 제 마누라도 죽이는 놈이 무슨 짓인들 못하겠냐며  만류하더라는 것이다.

1989년 양심선언을 한 전 서울시경 감식계장(경감) 이건우의 증언(1989 월간 다리 9월호), 그것이 알고 싶다 (SBS, 2005. 2), 이제는 말할 수 있다 (MBC 2005. 3),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SBS 2021. 4) 등 여러 곳에서 드러난 1974년 8월 15일 문세광 저격사건 당시의 정황을 정리해 본다.

(사진1)  정말 문세광이 육영수를 저격했을까?

 

-당일 경호요원(경찰)들에게 참가자의 몸과 소지품 검색금지 지시

-비표 없어 퇴장 당해 로비에 앉아있던 문세광을 경호실장이 발견하고 들여보내라 지시(일반인 9시 50분 입장완료/ 문세광은 10시 13분에 재입장)

-경찰이 미심쩍어 문세광 뒤쪽 가까이에 서 있었으나 경호요원들은 뒤로 빠지라는 지시가 내려옴

-문세광이 쏜 4발은 앉아있던 좌석아래, 연단, 태극기, 천정에서 탄흔이 발견됨.

-문세광이 쏜 4발의 총성은 0초, 6초, 6.6초, 7.4초에 울림.

(육영수의 피격시점은 7,2초로 물리적으로  0.2초 만에 문세광이 4탄을 쏠 수는 없음)

 

사진2) 0.2초 만에 다음 발사를 할 수는 없다

 

-당일 자정 경호실에서 탄두 샅샅이 훑어가고 다음날 수사감식반 현장투입지시.

-문세광 31시간 묵비. 8. 16일 밤 자백시작. 중정의 보고서는 8월 15일에 나오고 당일 석간부터 문세광에 관해 기사 쏟아짐. 문세광의 자백을 받은 검사는 김.기.춘(당시 중정 법률보좌관)

사진3) 문세광은  16일 밤부터 자백을 시작

사진4) 중정의 보고서는 15일에 작성(중정은 미리 다 알고 있었다.)

 

-호텔방에 한국말을 하는 의문의 남자가 있었다(8월 8일, 13일)는 진술을 한 여행사 여직원들에게 김종필(당시 총리)이 묵비 지시 . 확인하는 기자에게  "우리가 김종필 얼굴을 모르겠어요?"

-문세광이 호텔에 타고 온 고급승용차 포드M 서울2바 1091은 위장번호

-공소장에 검찰은 합창단 여학생(장봉화)도 문세광이 쓴 것으로 기록(경호원이 쏜 것으로 이미 언론에 공개된 사실 조차 공판과정에 감추려 한 검찰)

-증거물에 육영수  머리를 관통한 탄두는 제외시킨 검찰 

-첫발이 대퇴부를 관통하였다면서 다리부상을 이유로 현장검증을 대타로 실시.(실제로는 첫발은 오른발 살짝 빗겨쏘았음. 이건우계장은 ‘나, 나간다’는 신호라고 생각)

-사건 당일 한국 수사관이 일본에 찾아와 다짜고짜 문세광이 선배에게 맡겼다는 물건을 달라고 했고 수사관은 받은 열쇠로 문세광이 사 놓고 간 승용차 트렁크에서 일본 경찰서 권총 절도 도구라며 연장들을 수거해 감. 그러나 경찰서에서 발견된 침입 흔적(족적, 지문)은 문세광의 것이 아니었음. 문세광의 배후라고 한국 정부가 발표했던 조총련 김호룡도 한국 경검의 수사를 받지 않았고 일본 경찰도 그와 무관하다고 결론 냄.

-사건 1년 전부터 문세광을 만났던 동경에서 왔다는 Y라는 남자는 사건 이후 증발됨

-위궤양이라며 조청련계 개인이 운영하는 병원(문세광 집에서 차로 7시간 거리) 1개월 입원. 옥상에서 총격 훈련했다고 진술(옥상은 3면이 트인 곳/ 여럿이 입원한 병실. 위궤양이라며 매끼 많은 식사, 잦은 외출. 병원장은 일본인 이름으로 입원한 문세광은 알지도 못함.)

-문세광은 민단산하 한청 소속. 검찰은 조총련이 배후라고 발표(일본 경찰은 조총련과 관련 없다고 결론)

-오사카 항에 정박한 북의 만경봉호에 승선해 암살지령을 받았다고 한국 정부 발표(일본 정부는 문세광의 승선 사실은 없으며 부정 승선도 어렵다고 발표)

문세광은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았으므로 곧 나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가 육영수의 사망 소식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문세광은 사형 전 “나는 속았다. 나는 참으로 바보였다."고 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사실들이 있지만 이 정도만 보아도 현명한 독자라면 육영수의 사망은 박정희, 경호실, 중앙정보부 등이 치밀하게 계산하고 기획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육영수 사망 후 종신대통령을 시도한 유신 개헌과 김대중 납치사건 등으로 흉흉했던 여론으로 골머리를 앓던 박정희의 근심은 순식간에 사라지게 되었다. 영부인의 역할은 박근혜가 대신 하면 되었고 평소 주색을 밝혔던 박정희에게 큰 걸림돌이 되었던 육영수가 사라졌으니 이 사건은 박정희에게 여러모로 날개를 달아 주었다. 이래도 문세광이 북의 지령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바보가 있을까?

<박정희비자금 우리통장에 있어요>는 NPD박정희가 정치적, 경제적으로 한국을, 한반도를 얼마나 피폐하게 했는지를  밝히고 있다.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서도 NPD박정희의 민낯은 확실하게 밝혀져야 한다. (3탄에 이어집니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고은광순 주주  koeunks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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