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실명제 세상에 무슨 비자금이냐고?

박정희 비자금 우리통장에 있어요(3).

 

박정희 비자금이 한 씨네 통장에 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한다.

1) “에이, 요즘 같은 실명제 시대에 어떻게 남의 통장에 비자금을 숨겨요?”

2) “자기 통장에 관한 정보를 자기가 알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나요?”

3) “박정희 비자금이 모두 한 씨네 것은 아니겠지요? 왜 다른 사람들은 조용한가요?”

4) “스위스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국내에도 있어요?”

5) “CD나 채권 같은 형태로 되어 있어 남이 꺼낼 수 없다고 하던데요?”

6) “그걸 지금 누가 관리하고 있는데요?”

(1) 남의 통장에 비자금을 어떻게 숨기나?

 

대통령이 되면 한희승씨가 북에 두고 온 재산을 찾아주겠다며 1953년부터 1955년까지 3년에 걸쳐 막대한 자금을 갈취한 박정희는 1956년 크게 싸운 뒤 당일 한희승씨가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나 채권자 한 씨의 아내가 집요하게 갚을 것을 요구하며 김영삼을 찾아가는 등 자구책을 쓰자 대통령이 된 뒤 1964년 경 이후락을 시켜 7남매중 하나에게 돈을 넣었다. 그는 한 씨의 아내 앞에 통장을 흔들어 보여주었으나 통장의 주인이 누구인지 얼마인지 알려고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 통장에 대해서 가족끼리 말하지 말 것. 말하는 순간 가족 모두 죽을 것이다!”

한 씨의 아내는 더 이상 외부로 발설하지도 못하고 자식들에게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점점 멀어져가는 자식들을 보며 애태우고 피눈물을 흘리다가 여관 옥탑방에서 사망했다.

 

박정희가 이후락을 통해 돈을 넣은 통장은 셋째딸(1944년생) 한춘자 계좌였다. 그러나 한춘자 역시 그 통장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 이후락이 통장을 만드는 즉시 김종찬이라고 하는 부하(청와대 요리사 출신)를 시켜 20대 초반의 한춘자를 손에 넣고 통장을 관리했기 때문이다. 김종찬은 그 통장을 이용해서 땅을 사고팔며 차관을 들여오는 등 부지런히 굴렸다. 둘의 관계는 박정희가 사망할 때까지 지속되었으며 전두환이 들어서자 김종찬은 30조가 들어있는 통장과 한춘자의 인감도장을 전두환에게 내어놓고 도미 후 숨졌다. 박정희는 집권동안 월남 참전군인 전투수당의 92%를 떼어 먹고, 재벌들을 키워 이익을 독점하게 한 뒤 정치헌금을 받아 챙겼다. 토지개발을 통해 이윤을 갈취하는 등 임기가 무한대(?)인 종신대통령의 비자금 확보는 땅 짚고 헤엄치기여서 그 규모는 말할 수 없이 커갔다. (박정희가 죽자 박정희의 경리과장으로 불렸던 이후락은 잽싸게 돈을 여기저기 빼돌렸다.)

 

그 이후 비자금은 전두환, 하나회, 국정원 등이 관리하면서 여러 사람의 통장에 분산시켰는데 1998년 경 ()안기부와 ()국정원이 내부에서 충돌하면서 밖으로 유출된 자료에는 안기부에서 특수계좌로 834명의 차명인을 파악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100조가 넘는 통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9명이라고 정리된 메모를 보면 그 전체 규모는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진1)  (구)안기부와 (신)국정원 충돌과정에서 드러난 차명비자금 일부
사진1)  (구)안기부와 (신)국정원 충돌과정에서 드러난 차명비자금 일부

 

(2) 자기 통장에 관한 정보를 자기가 알 수 없다고?

특수계좌의 돈은 특별 관리된다. 박정희 생전에 비자금으로 사 두었던 많은 토지들 역시 특별 관리된다. 계좌 주인이 금감원에 요청해도 금감원은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고 답변할 뿐이다.

사진2) 금감원은 본인의 정보를 본인에게 공개 못한다고 회신했다.
사진2) 금감원은 본인의 정보를 본인에게 공개 못한다고 회신했다.

 

토지의 등기나 폐쇄등기의 열람, 발급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 박정희 사후 적폐들은 연중 7~8개월은 5성급 호텔에 한춘자를 감금해놓고 그녀로부터 인감증명서 등 각종 서류들을 챙겨 돈을 활용했다. 때로 하루에 400장 이상의 인감증명서도 받아갔다. 그녀가 늙고 기동력이 떨어지자 저들은 호텔 대신 종로의 허름한 여관에 거주하게 하고 인감을 떼어가며 여관비와 생존에 필요한 밥값만 주어왔다. 그마져도 5월에 <박정희 비자금 우리통장에 있어요>가 출판되자마자 풀 방구리에 쥐새끼처럼 드나들던 심부름꾼들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

사진3) 심부름꾼들은 인감을 하루에 400통도 가져갔다. 인수증의 일련번호가 같은 것은 '뭐 어떠냐'며 그들이 정정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3) 심부름꾼들은 인감을 하루에 400통도 가져갔다. 인수증의 일련번호가 같은 것은 '뭐 어떠냐'며 그들이 정정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 박정희 비자금이 모두 한 씨네 것일까? 왜 다른 사람들은 조용한 건데?

채권자 한희승씨의 25녀 중 아들 둘은 병을 앓다가 사망하거나 행방불명이 되었다. 다섯 딸 중 큰 언니는 90, 둘째 언니는 사망, 가운데인 한춘자씨는 박정희, 이후락의 먹잇감이 되어 최근까지 인감자판기처럼 생활해 왔고 넷째 언니는 역시 꿀 바르고 입을 다물고 있고 뒤늦게 전모를 파악한 막내딸 한영순씨가 십여 연전부터 힘겨운 싸움을 하다가 책을 내게 되었다.

834(1998년 당시)의 차명인 대부분이 입을 다물고 있는 이유는 그들은 말 그대로 창고지기에 불과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의 현지처, 누구의 부하... 등 그들은 통장의 돈과 특별한 관계가 없다. 한영순씨는 통장의 뿌리가 부모의 돈이라는 것을 알기에 부모의 한을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저자 한영순씨는 서정화(90. 국회의원 20+국힘당 상임고문 20), 윤증현(실명제 팀장+이명박 정부 기재부 장관), 박주선(김대중 비서, 윤석열 대통령취임식준비위원장) 등을 상대로 그간 수십 번의 소송을 제기한 바 있는데 불행히도 그것은 여론의 주목을 받지도, 승소하지도 못했다. 상대는 검경과 사법부를 손아귀에 쥐고 법 그물을 찢고 유유히 빠져나갔다. ‘박정희 비자금은 기업을 삥뜯은 거지, 당신 아버지 돈이 아니다. 부친 돈이라는 증거가 있냐?’는 조롱도 숱하게 들었다. 한춘자 한 사람의 계좌를 초기 것부터 탈탈 털면 알 것 아닌가?

이 책의 키맨이라 할 수 있는 서정화는 민주당에도 서정화가 있다며 아마도 그 사람일 것으로 생각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명서를 판사에 제출했다. 한춘자를 처음 만났을 때 한동빈이라는 가명을 썼던 철면피 미꾸라지다.

 

사진4) 5조 인출을 주도해 먹튀한 인간말종 서정화, 윤증현, 박주선
사진4) 5조 인출을 주도해 먹튀한 인간말종 서정화, 윤증현, 박주선

 

(4,5,6 질문에 대한 답은 4탄에서 이어집니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고은광순 주주  koeunks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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