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합니다] 광복 77돌 강제동원 희생자 기리는 글

2018년 청년 6명 ‘기억의 봄’ 꾸려
귀국 못한 징용노동자 집터 찾아 추모
2019년 일제 징용 현장 군함도 답사
일본 ‘왜곡 설명’ 분노…추모식도 막아

기억의 봄 회원들은 2018년부터 강제동원 희생자들이 일제 때 살았던 집터를 찾아내 ‘평화 디딤돌’ 표지석을 놓았다. 
기억의 봄 회원들은 2018년부터 강제동원 희생자들이 일제 때 살았던 집터를 찾아내 ‘평화 디딤돌’ 표지석을 놓았다. 


“절대 잊지 않고 다시 가겠다 다짐”“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 우리 주변에서 흔히 그리고 널리 쓰이는 말이다. 어쩌면 현재도 잊혀져갈지 모른다. 어지러운 세상. 우리는 어디서 지혜를 찾아야 할까.‘어디에도 실리지 않은 기억의 파편이 있다.

’ 2018년 봄 강제동원에 대하여 학습하고자 모인 청년들은 한 가지 의문점에 도달한다. 왜 우리는 강자의 기록, 강자의 언어, 강자의 시선에서 역사를 배우는 것일까? 이후 이들은 소수자의 관점에서 잊힌 이들을 찾기 시작했다. 특별한 사람도 위대하지만, 그 뒤에는 항상 ‘보통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교과서에서 배운 강자의 기록이 아닌, 개인의 기억에 도달하게 된다.

‘피해자가 없는 사건은 실종된다.’ 도시 혹은 마을재생 사업에서는 ‘가옥 개선’, ‘벽화 그리기’, ‘특산물 홍보’ 등 화려하고 긍정적인 것들을 내세우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마을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극복하여 역사의식을 고취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렇게 청년들은 작은 돌을 땅에 놓기 시작했다.

광복 77돌을 맞이한 지금 강제동원, 강제징용, 강제노동, 위안부 피해를 당하신 분들은 고령화로 몇 분 남아계시지 않는다. “피해자가 없는 사건은 실종된다”는 말을 계기로 삼아 청년들은 자신들을 ‘기억의 봄’이라고 불렀다. 희생자 분들의 기억에, 그리고 그 가치를 가슴에 품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것이다. 그렇게 '기억의 봄'은 한 발 한 발 차근히 기억을 이 땅 위에 놓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평화 디딤돌’이다.

‘이 동네 사람’, 이 추모비에는 ‘이 동네 사람’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강제동원 희생자 분들은 특수한 역사적 사례가 아닌, 우리 마을 주민이자 이웃 그리고 자신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모여 함께 디딤돌을 설치하고, 이 마을에서 자행되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의 역사 아래 또 다시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나아가게 되었다.

일본 군함도 강제노동 희생자 길영산씨가 살았던 서울의 집터에 놓은 평화 디딤돌 표지석. ‘일제 강점기 이 동네 사람’이라고 적어 놓았다. 
일본 군함도 강제노동 희생자 길영산씨가 살았던 서울의 집터에 놓은 평화 디딤돌 표지석. ‘일제 강점기 이 동네 사람’이라고 적어 놓았다. 

‘지옥의 섬, 군함도’ 2019년 8월 기억의 봄은 강제동원 현장이자 세계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일본 하시마섬(군함도)을 방문했다. 이국 땅에서 돌아가신 강제동원 희생자 분들은 아직까지도 조국 땅을 밟지 못하고 계신다. 현지에서 방문한 곳 중에는 조선인의 유해를 몇 년 동안 보관하다가 한국 정부의 송환 거부로 합장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당장 모시고 올 수는 없지만, 뵙기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일본 땅을 밟게 되었다. 그리고 절대 잊지 못할 충격에 휩싸이게 되었다.

‘얼룩진 섬’ 강제동원 현장에서 추모제를 지내 영령을 기리고자 했던 마음은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그곳은 역사 왜곡과 차별로 물들어 있었다. 일본인 가이드는 이곳에서 고강도의 노동이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임금이 높아 많은 조선인이 서로 오고자 싸웠다고 설명했다. 그 해설을 듣는 외국인들의 끄덕이는 고개에 절로 억장이 무너졌다. 더구나 일본 쪽의 격렬한 제지로 청년들은 헌화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육지로 돌아오게 되었다.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조차 허락되지 않는 곳이었다.

기억의 봄 회원들이 하시마섬 현지에서 강제동원 희생자 추모제를 올리지 못한 채 배를 타고 나와 항구에서 추모문을 읽으려다 끝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기억의 봄 회원들이 하시마섬 현지에서 강제동원 희생자 추모제를 올리지 못한 채 배를 타고 나와 항구에서 추모문을 읽으려다 끝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읽지 못한 추도문’. 청년들은 할 수 없이 항구에서라도 추모식을 지내기로 하였고, 그 순간 비가 내렸다. 비를 맞으며 마른 안주를 놓고 소주를 따라 드렸는데, 그 누구도 추도문을 읽지 못했다. 분노에 뻣뻣해진 목 뒤와 억울함에 울컥한 심정을 비가 대변해주는 듯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들을 위로한다는 말은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추도문을 태워 바다에 흩날리며 말했다. 다시 돌아올 때는 당당한 모습으로 추모를 드리겠다고, 그리고 아직까지 찾아뵙지 못했다.

‘우리의 위기를 낭비하지 말자.’ 필자는 다짐했다. 역사를 기억하고, 왜곡된 것을 바로잡기 위하여 항상 깨어있겠다고. 돌덩이 같이 부서져도 작게 모래알이 되어 당신 곁에 스며들겠다고, 그렇게 빛이 나서 역사를 이어가겠다고. 어제도 기억했습니다. 오늘도 기억합니다. 내일도 기억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박정우 주주는 '기억의 봄' 대표다)

 


원고료를 드립니다 -<한겨레>가 어언 35살 청년기를 맞았습니다. 1988년 5월15일 창간에 힘과 뜻을 모아주었던 주주와 독자들도 세월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새로 맺는 인연보다 떠나보내는 이들이 늘어나는 시절입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 탓에 이별의 의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합니다’는 떠나는 이들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이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에게나 추모의 글을 띄울 수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겨레 주주통신원(mkyoung60@hanmail.net), 인물팀(People@hani.co.kr).

* 이글은 지난 3월 24일 한겨레지면에 실린 글이다.  
* 원문보기 : https://www.hani.co.kr/arti/society/media/1036203.html

편집 : 김미경 편집장 

 

박정우 주주  kolarov170107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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