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라는 독특한 방식의 주택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로 세계에 알려졌어도 우리 언론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는데, 관측 이래 최대 강우가 휩쓸자 드러난 처참한 모습을 주목했다. 잠시 요란할 뿐일 텐데, 발달장애 가진 언니와 노모, 그리고 어린 딸을 키우던 40대 노동자는 밀려드는 빗물에 목숨을 잃었다.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딸의 외마디가 귓전을 스쳤을 찰라, 반지하에 머문 3명은 턱까지 차오르는 흙탕물 속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몸짓으로 이웃이 뜯어낸 쇠창살의 밖에서 바라본 반지하는 주택 보급률이 100퍼센트 넘는 시대의 보금자리와 거리가 멀어 보였다. 수많은 행인이 무심하게 지나쳤던 자리, 출타 중에 재난을 피한 노모가 망연자실했던 바로 그 자리가 갑자기 떠들썩했다. 100년 빈도 이상의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에 굳이 상황실보다 자택을 선택한 최고위 선출직 공직자가 기자들 앞에서 커다란 우산을 받치고 관계자와 옹기종기 앉은 것이다. 경호팀과 의전팀이 어떤 수고를 아끼지 않았는지 알 수 없고 관심도 없는데, 하필 그 사진을 홍보 수단으로 사용한 의도는 무엇일까? 국민의 숨소리까지 들으려는 모습일 거라 여긴 걸까?

15일 충남 부여군 은산면 홍산리 은산천 교량이 수풀로 뒤덮여 있다. 은산면 일대는 전날 새벽 시간당 110㎜ 이상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2명이 실종되고 주택이 침수되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연합뉴스(사진 출처 : https://www.hani.co.kr/arti/area/chungcheong/1054819.html)
15일 충남 부여군 은산면 홍산리 은산천 교량이 수풀로 뒤덮여 있다. 은산면 일대는 전날 새벽 시간당 110㎜ 이상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2명이 실종되고 주택이 침수되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연합뉴스(사진 출처 : https://www.hani.co.kr/arti/area/chungcheong/1054819.html)

115년 만의 뉴스거리에 허둥댔던 언론은 전문가들 동원하며 이번 장마의 원인을 분석했다. “제2 장마”라 했다. “국지성 정체전선”이라고도 했다. 전에 듣지 못한 말이다. 장마가 지나 무섭게 닥친 폭우의 정체가 무엇이든, 일상이 되어 간다. 다만 해를 거듭하면서 피해 규모가 커지는데, 원인 분석은 다분히 상투적이다. 남쪽 북태평양 고기압과 발해의 차가운 고기압, 그리고 오호츠크해 근처 저기압이 한반도에서 강하게 부딪쳐 정체전선을 형성한다는데, 그게 원인인가? 현상 분석으로 그친다. 그런 현상의 원인은 도대체 무엇인가?

10여 년 전 시간당 30밀리미터의 강수량에 광화문 일대가 물에 잠긴 경험이 있다. 공교롭게 당시 서울시장이 현재와 같은데, 말쑥한 옷매무새를 자랑하는 시장답게 그는 “디자인 서울”을 제창하며 하이힐 신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도시를 추구했다. 미려한 경관을 위해 빗물이 흘러나갈 공간을 희생시킨 결과는 혼란이었다. 기상이변이 폭증하는 기후위기 시대에 약점을 드러내고야 말았는데, 이번 서울 강남의 재난도 다르지 않았다. 상습 침수 지역에 빗물저류배수시설을 건설하겠다고 서울시장은 다시 공언했는데, 막대한 예산을 둘째 치고, 믿음직한 대책일까?

갯벌이 넓게 펼쳐졌을 때 우리는 침수를 몰랐다. 갯벌을 메워 만든 김포 평야의 논도 빗물을 완충하므로 침수 피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논이 아파트 숲으로 뒤바뀌면서 인천 계양산 일원에 침수가 빈발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칠갑이 되자 투수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투수성 잃은 도시는 빗물을 즉각 안전하게 내보내야 한다. 흘러오는 빗물을 잠시 저장한 뒤 바다나 강으로 내보낼 목적의 방수로가 그렇게 제안되었다. 인천 부평 일원의 홍수를 줄여 보려는 몸짓으로 시도한 ‘굴포천 방수로’였지만, 이명박 정권은 경인운하(현재 아라뱃길)로 확대했는데, 운하는 방수로가 아니다. 이번 폭우에서 인천도 자유롭지 못했다. 회복탄력성이 없는 도시는 자연재해를 완충할 수단을 희생시킨 탓이다.

“대심도 도심터널”이라는 빗물저류배수시설은 100년 빈도의 홍수를 잠시 모았다 안전하게 배수한다는데, 110년 빈도의 홍수는 어떻게 하나? 115년 만에 발생한 홍수는 앞으로 100년 지나야 올지 말지일까? 관측 이래 최고의 폭염이 최근 10년 사이에 집중되는 현상은 무엇을 증언하나? 섭씨 47도 이상 오르내리는 폭염은 우리나라를 덮치지 않았지만, 안심해도 좋을까? 상상 이상의 홍수와 가뭄, 그리고 기상이변이 빗발치는 현상은 단순한 천재지변이 아니다. 더욱 가혹할 기상이변을 최대로 예방하려면 인류는 당장 에너지 의존형 삶을 돌이키고 기상이변이 드물던 시절의 회복탄력성을 복원해야 한다.

천문학적 예산이 들어가는 “대심도 도심터널”은 빗물이 모이던 저지대에 휘황찬란하게 들어선 초호화 건축물을 임시로 보호할 뿐이다.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폭풍우와 극심한 가뭄이 교차할 때 빗물을 서둘러 배제하면서 외부에서 맑은 물을 가져와 낭비하는 대도시를 우선 보호하는 정책은 최선일 수 없다. 이제 투자자의 이익에 충실한 대책보다 미래세대의 생존을 먼저 배려하는 정책으로 바꿔야 한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에서 각국에 회복탄력성 회복을 호소한 이유를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대표적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가장 막대하게 내뿜는 석탄 화력발전소는 쏟아내는 에너지의 절반 이상을 ‘온배수’라는 뜨거워진 물로 바다에 버린다. 터빈 돌린 수증기를 식힌 온배수는 화력발전소에 한정해 나오는 게 아니다. 핵발전소는 화력의 두 배 가까운 온배수를 바다에 버린다. 해안에 모이는 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가 해수의 온도를 높이는 만큼 태풍과 홍수는 거세질 수밖에 없는데, 일본은 우리의 서너 배 온배수를 태평양에 쏟아낸다. 서해에 온배수를 내보내는 중국은 어느 정도일까? 서해 수온이 예년보다 섭씨 3도 이상 높은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데, 제2 장마가 최근 무시무시하게 발생한 이유와 무관할까? 미래세대에 죄짓지 않을 대책은 무엇이어야 할까?

 

1988년 인하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환경 관련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2021년부터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어쩌면 가장 위험한 이야기>(이상북스 2019) 외 다수의 저서를 발간했다. 

 

 

 

*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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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김미경 편집장 

 

박병상 독자  Brilsymb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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