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합니다] 외손녀 우현이 졸업 축하 글
“어릴 때부터 키우다시피한 외손녀
혼자 영국으로 건너가 10여년 유학
약대 학위수여식 사진 보니 뿌듯해”
나에게는 딸과 아들이 한 명씩 있다 . 그 딸 · 아들이 딸만 둘씩 낳아 난 손녀만 4 명 있다 . 손자 없는 나를 보고 참 불행한 노인이라고 할 것 같아 미리 어림없는 일이라고 설레발을 쳐본다 .첫째인 딸은 아이를 낳고도 직장을 다녔다 . 딸은 우리 집 근처에 집을 마련했다 . 어린이집 , 유치원 , 초등학교 , 중학교 다닐 때까지 손녀들은 딸이 출근하는 아침이면 왔다가 퇴근하면 제 집으로 갔다 . 이렇게 두 외손녀는 우리 집에서 등하교를 하면서 거의 키우다시피 하여 정이 무척 많이 들었다 .
아이들이 커서 중학교를 마치고 사위가 외국계 회사 대표로 필리핀 근무를 하게 되었다 . 두 아이 중 둘째인 우현이는 아빠를 따라 필리핀으로 나가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 아빠가 한국으로 돌아왔는데도 둘째는 유학을 포기하지 않았다 . 이후 영국으로 건너 가서 10 여년 더 공부를 하고 지난해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UCL) 약학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 하지만 코로나 19 로 학위수여식을 하지 못했다가 지난 5월 학교의 배려로 뒤늦게 졸업식을 했다 . 그새 헤어졌던 친구들을 다시 만나 찍은 기념사진이며, 학교 로고가 들어간 졸업 앨범의 석사모 사진을 보니 우현이와 지냈던 옛날 일들이 솔솔 생각났다 .
외국에서 공부하면서 힘들다고 울며 전화 했던 우현이 . 할아버지와 할머니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손녀다 , 사위 귀국 후 혼자 남았기에 더 안쓰러웠고 더 그리워했다 . 손녀 4 명이 모두 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고 제 갈길 찾아 열심히 살고 있지만 특별히 멀리 타국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좋은 성과를 낸 우현이어서 더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
우현이가 중학교 다닐 때 키우던 강아지 ‘반달이’를 우리가 맡아 돌봐 왔다. 그 덕분에 반달이가 연결 고리가 되어 자주 연락을 하면서 우현이는 외로움을 달랜다고 말하고 했다 . 지금도 먹거리며 예쁜 옷을 사 보내는 우현이는 반달이의 큰 후원자이기도 하다 .내내 아이들을 키우고 지금껏 살아온 집이 42 년 만에 재개발이 되어 올해 안으로 비워야 한다 . 나도 아이들도 모두 정든 이 집을 허문다고 하니 마음 속 뭔가도 허물어지는 기분이다 .
아이들이 집 열쇠를 잃어버리고 담을 넘어올 때 발 넣을 가지를 제공해주었던 단풍나무 , 아이들을 위하여 나무에 명패를 매어 달아 둔 나무가 자라서 눈높이만큼 올라왔다고 좋아했던 일 , 우리가 집을 비우고 멀리 여행이라도 갈 때면 대신 돌봐준 이웃인 엘( L) 우유 가게 주인 아주머니와 중국집 주인 부부 , 그 중국집은 아쉽게도 지금은 없어졌다 . 잔디를 없애고 텃밭을 만들어 농사지은 땅에서 나온 야채로 푸짐하게 즐겼던 삼겹살 파티 , 이런 살갑고 쾌쾌 묵은 가지가지 추억들을 가진 공간이 이제 우리 마음 속에만 남게 되었다 . 조만간 집 구석구석을 찍어서 사진으로 남겨 공유하고자 한다. 그렇게나마 기록해두면 아이들과 함께했던 그 추억을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 ?
우현이는 외국 생활이 길어서인지 한국 음식을 잘 몰랐다 . 대학 시절 방학 때 다니러 오면 나와 함께 맛집 탐방을 하곤 했다 . 탕류도 면류도 거의 몰라 복어지리부터 돼지껍데기까지 다양한 음식을 맛보게 해준 기억도 새록새록 난다 .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 그 때는 그런 시간을 언제든 자주 가질 줄 알았었는데… .올 여름 우현이가 잠깐 귀국한다고 한다 . 그나마 얼굴 한번 볼까 할 정도로 이젠 자신만의 시간이 많이 필요한 아이지만 벌써 만난 것처럼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 많은 시간을 내어주질 못할 텐데도 무얼 할까 ~ 뭘 해 줄까 ~ 이러는 게 할아버지 마음이 아닐까 한다 .
내내 그런 마음으로 두어 달을 기다릴 참이다 .우현이는 석사 졸업 뒤 인턴 약사 1 년 코스를 밟고 있다 . 인턴이 끝나면 국가고시를 거쳐 의료계에 취업된다고 한다 . 우현아 ~! 뒤늦게나마 <한겨레> 지면을 통해 너의 졸업을 한 번 더 축하하고 싶구나 . 모쪼록 하고 싶은 뜻을 이루면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
* 이글은 2022년 6월 13일 한겨레 지면에 게재된 글입니다.
* 원본 보기 : https://www.hani.co.kr/arti/society/media/1046681.htmll
편집 : 김미경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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