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상래 교장을 기리는 친구의 글

삶에 대한 의문

죽어 있는 자가 많은가?
살아 있는 자가 많은가?

나로 하여 네가 행복한가?
너로 하여 내가 행복한가?

오늘이 어제보다 아픈가?
어제가 오늘보다 기쁜가?

아침 해가 붉은가?
저녁놀이 더 붉은가?

-2020년 11월 故 박상래 作 ‘시와 천연염색’ 전시회 詩 중 하나-

 

 -2020년 11월 故 박상래 作 ‘시와 천연염색’ 전시회 詩 중 하나-
 -2020년 11월 故 박상래 作 ‘시와 천연염색’ 전시회 詩 중 하나-

 

2020년 11월 말 부산 해운대 전통시장에서 정기 간행물 ‘여백 문학’ 발기인 모임이 열렸다. 발행 한경렬, 평론 이정균, 고문 김정식, 출판 성종규, 감사 박상래, 편집 필자가 맡은 첫 기획안은 “당신의 생애를 책으로 만들어 드립니다”였다.

2020년 11월 말 부산 해운대 전통시장 곰장어집, 정기 간행물 ‘여백 문학’ 발기인 모임 스케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면서, 이정균 평론인, 박상래 감사, 한경렬 발행인, 김정식 고문, 성종규 출판인, 사진 촬영 필자)
2020년 11월 말 부산 해운대 전통시장 곰장어집, 정기 간행물 ‘여백 문학’ 발기인 모임 스케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면서, 이정균 평론인, 박상래 감사, 한경렬 발행인, 김정식 고문, 성종규 출판인, 사진 촬영 필자)

‘이 세상을 살다 가는 그 누구도 자신의 생애를 책으로 남길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스스로 책을 쓸 수 없다면 누군가가 큰 부담 없이 그를 도와 책으로 남길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빈부귀천 성별 학벌 종교 그 무엇도 가를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이므로….’

고 박상래 '벗님'을 처음 만난 1980년대 초 경남 고성 철성고등학교 교무실이었다. 우린 대학을 갓 졸업하여 꿈은 많고 겁이 없던 신임교사였지요. 대학에서 배운 바람직한 교육의 모습과 너무나 다른 교육 현장의 모습들, 부조리와 불합리와 비민주에 물들지 않으려 발버둥 치던 숱한 밤들.

우리 민족의 말과 글을 제대로 전하겠다는 국어 교사로서의 소박한 꿈, 훌륭한 국어 수업을 하려는 숱한 몸부림도 촌지니, 부교재 채택료니, 모의고사 떡고물이니 하는 푼돈 다툼을 통한 철저히 이율배반적인 몇몇 교사들의 작태에 완전히 손을 들었고, ‘오냐 그렇다면 차라리 솔직하게 돈을 벌자’라며 제도권 교단을 떠나고말았다.

이십 년쯤 후 어느 여름날 손전화에 찍힌 낯선 번호, 계속 걸려 오는 같은 번호의 전화를 망설이다 받았더니 반가운 벗님 목소리, 학원을 관두고 지금은 대안학교에 있는데 아주 마음에 든다고, 조만간에 교장까지 하게 될 것 같다고. 아주 시골인데 한번 놀러 오라고 그랬다.

2019년 5월 경북 감포 횟집 촌, 우연히 만난 박상래 부부와 필자 부부(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면서, 필자 부부 박상래 부부, 사진 셀카 촬영 필자)
2019년 5월 경북 감포 횟집 촌, 우연히 만난 박상래 부부와 필자 부부(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면서, 필자 부부 박상래 부부, 사진 셀카 촬영 필자)

2019년 5월 경북 감포 횟집 촌 앞에서 우연히 기적처럼 만난 벗님 부부, 처가의 상을 치르고 피로도 풀 겸 왔다고, 경주 여행 갔던 필자 부부와 어떻게 그리 만나질 수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봐도 신비로운 일이었지요. 합천군 대병면 가실골에 터를 마련해서 새로운 대안학교 ‘합천문화학교’를 준비하고 있는데, 필자에게 이사와 시 창작 강사로 초빙하니 꼭 찾아오라고 권했다.

그 무렵 벗님은, 지리산중학교 교장을 거쳐 합천문화대안학교 교장, 우리문화센터 함안지부장, 더 함안 신문 논설위원, 칼럼니스트로 ‘재래방식 천연염색’ ‘속담의 사회적 공인’ ‘대입 고어사전’ ‘붉은 잉크로 시를 쓰고 싶다(시집)’를 출간했고, 이룡의 전설(더 함안 신문), 박상래 인문학 칼럼(함안 인터넷신문), 황매산 사람들(합천신문)을 연재 중이었다.

2019년 8월 합천군 대병면 가실골 합천문화학교 진입로 시멘트 포장 공사를 손수 직접 하는 박상래. 사진 촬영 필자
2019년 8월 합천군 대병면 가실골 합천문화학교 진입로 시멘트 포장 공사를 손수 직접 하는 박상래. 사진 촬영 필자

2019년 8월 합천군 대병면 가실골 합천문화학교를 처음 방문한 필자가 만난 벗님은, 그날따라 학교 진입로에 시멘트 포장 공사를 손수 직접 하고 있었는데, 오롯이 혼자만의 힘으로 대안학교를 만들고 제대로 된 교육을 실천해 보겠다는 일념으로 땀을 비 오듯 쏟고 있었다.

2021년 3월 11일 필자에게 전해진 비보, 다달이 보냈던 필자의 이사회비 잘 받았고 소중하게 쓰겠다며 합천문화학교에 방갈로가 팔십프로 완성됐다 카톡온지 일주일인데, 합천군 대병면 가실골 현장에서 혼자 일하다 쓰러진 벗님의 뇌사상태 소식, 어이할꼬 오호통재라.

여덟 글자 아홉 행 칠십이자 시로 슬픔 표하노니, “사십여년 지기지우, 또한놈이 영면하네, 바람직한 교육위해, 합천문화 대안학교, 맨손맨몸 불철주야, 꽃봉오리 필락말락, 원과한이 서리맺혀, 역병지절 통곡하오, 하늘가선 편히쉬소”

2021년 3월 14일 전해진 벗님의 부고, 코로나19 창궐로 문상 자제를 부탁한 상주는 더 놀라운 사연을 들려줬다. 다시한번 72자 시로 애도하노니, “쓸만한몸 모두기증, 정말정말 맨손맨몸, 떠나가는 박상래님, 역병창궐 상황불구, 구름같이 모인조문, 바람직한 삶의증명, 벗님네들 다들주목, 어찌살지 주저말고, 이분삶을 영원기억”

2020년 12월 말 <여백 문학> 편집출판 밴드에 올렸던 벗님의 글을 다시 읽는다.

외아들 절에 팔려고
어머니는 나를 손잡고
두세 시간 비포장 길을 걸어
장춘사에 갔던 기억이 나서
50년만에 법당에서 삼 배 올리고 부처님께
‘우리 어머니 아시지요?’ 하니 
말씀은 안 하셔도 분명히 아는 눈치였다

* 박상래 교장은 바람직한 대안교육의 영원한 현직이며 시인, 국어 교사, 칼럼니스트, 천연염색 연구확산 전문가, 그리고 정기 간행물 여백 문학감사로 이 생을 살다 갔다. 필자와는 잉걸불 사십 년 인연이다.

한겨레신문 2022년 8월 29일자
한겨레신문 2022년 8월 29일자

* 이글은 지난 8월 29일 한겨레 지면에 실린 글입니다. 
* 기사 보기 : https://www.hani.co.kr/arti/society/media/1056523.html

편집 : 김미경 편집장

김인수 주주  pppp77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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