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합니다] 고 안병하 치안감에게 올리는 글

 

1988년 10월 고문후유증으로 별세한 고 안병하 치안감. 인사혁신처는 안 치안감에 대한 1980년 6월 강제 의원면직 처분을 지난 3월 취소했다. 전남경찰청 제공
1988년 10월 고문후유증으로 별세한 고 안병하 치안감. 인사혁신처는 안 치안감에 대한 1980년 6월 강제 의원면직 처분을 지난 3월 취소했다. 전남경찰청 제공

1980년 5월 전라남도 경찰국장으로
‘시위대 발포 명령’ 거부해 불법구금
1988년 10월 고문후유증으로 별세
최근 ‘의원면직 취소’·100대월치 급여 지급 결정

1980년 5월 광주, 계엄군의 강경 진압에 시민들이 분노하면서 시위 군중이 수십만 명으로 증가했다. 급격히 악화된 대치상황은 유혈 사태로까지 번졌다. 이 때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던 경찰관이 있다. 전라남도 경찰국장이었던 고 안병하 치안감이다.

고인은 1928년 7월 23일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났다. 육사 8기로 임관한 고인은 한국전쟁에 참전해 춘천지구 전투에서 세운 전공으로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1962년 중령으로 전역한 뒤 총경으로 특채돼 1968년에는 남파 간첩선을 타고 침투한 북한 무장공비를 소탕해 녹조근조훈장을 받기도 했다. 1979년 2월 전남경찰국장으로 부임하면서 이듬해 5월 운명처럼 ‘5·18’을 맞았다.

고인은 5·18이 터지자 전남지방 전투경찰대에 특별한 지침을 내린다. ‘시위대에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 ‘화학탄을 사용하지 말고 부상 사례가 없도록 적극 유의할 것’, ‘시위 주동자만 신속히 연행하고 도주하는 학생은 추적하지 말 것’. 이는 사실상 방어 위주의 시위대 대응 지침이었다.

하지만 신군부는 고인에게 시위대를 상대로 총기 등을 사용해 강경 진압할 것을 지시한다. 고인은 ‘경찰이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눌 수 없다’며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우발적인 사고를 우려해 경찰의 총기도 회수했다. 결국 고인은 상부의 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1980년 5월 26일 직위 해제된다. 뿐만 아니라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로 끌려가 불법 구금 속에 모진 고문을 당하고 1980년 6월 2일 의원면직 처리된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평소 지병이 없고 건강했던 고인은 수년간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1988년 10월 10일 급성심호흡 정지로 별세했다. 그의 나이 만 60살이었다.

1980년 ‘5·18’ 때 전라남도 경찰국장으로 광주 시민에 대한 발포 명령을 거부한 고 안병하 치안감의 서울 서대문 경찰서장 시절 모습. 막내아들 안호재씨 제공
1980년 ‘5·18’ 때 전라남도 경찰국장으로 광주 시민에 대한 발포 명령을 거부한 고 안병하 치안감의 서울 서대문 경찰서장 시절 모습. 막내아들 안호재씨 제공

고인은 2003년이 되어서야 5·18민주유공자로 인정받았고 2005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2006년 국가유공자 순직 경찰로 등록됐다. 2017년에는 역대 최초로 ‘경찰영웅’ 칭호를 받으며 치안감으로 1계급 특진 추서됐다.

지난해 6월 유족과 추모단체인 ‘안병하기념사업회’는 고인의 명예가 완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의원면직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민원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제기했다. ‘5·18’ 때 사직서는 불법 구금, 고문 등 강압에 의해 제출됐기 때문에 이에 따른 의원면직 처분은 위법하므로 취소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2월 정황과 유사한 강제퇴직 사례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본 뒤, 1980년 6월 2일 고인에 대해 내려진 의원면직 처분을 취소하고 고인의 사망일까지 미지급한 급여를 지급할 것을 권고했다. 이를 받아들여 3월 인사혁신처는 안 치안감에 대한 의원면직을 취소했고, 경찰청은 연령정년을 적용해 고인이 면직된 때부터 사망한 1988년 10월 10일까지 100개월분치의 급여를 소급해 지급하기로 했다. 42년 만에 고인의 희생에 대한 완전한 명예회복이 이뤄진 셈이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하버드대 교수를 지낸 조지 산타야나는 저서 <더 라이프 오브 리즌>에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그 과거는 다시 반복된다”고 했다. 잘못된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바로 잡는 일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릇된 역사를 바로잡았던 기록 하나 하나가 미래를 살아가야할 다음 세대들에게 무엇이 옳은 길인지 알려주는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역사는 엄혹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상부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고인을 용기 있고 의로운 경찰로 기억할 것이다. 고인의 애민 정신과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간직되길 기원하며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정희/국민권익위 부위원장

원고료를 드립니다-<한겨레>가 어언 35살 청년기에 이르렀습니다. 1988년 5월15일 창간에 힘과 뜻을 모아주었던 주주와 독자들도 세월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새로 맺는 인연보다 떠나보내는 이들이 늘어나는 시절입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 탓에 이별의 의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합니다’는 떠나는 이들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이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에게나 추모의 글을 띄울 수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겨레 주주통신원(mkyoung60@hanmail.net), 인물팀(People@hani.co.kr).
원고료를 드립니다-<한겨레>가 어언 35살 청년기에 이르렀습니다. 1988년 5월15일 창간에 힘과 뜻을 모아주었던 주주와 독자들도 세월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새로 맺는 인연보다 떠나보내는 이들이 늘어나는 시절입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 탓에 이별의 의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합니다’는 떠나는 이들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이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에게나 추모의 글을 띄울 수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겨레 주주통신원(mkyoung60@hanmail.net), 인물팀(People@hani.co.kr).

 

* 이글은 지난 4월 29일 한겨레 지면에 실린 글입니다. 
* 원문보기 : https://www.hani.co.kr/arti/society/media/1040872.html

편집 : 김미경 편집장

김경애 편집위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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