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 사진 작가
최성수 사진 작가

<한겨레:온>필진 최성수 사진 작가께서 포토에세이 <빛 따라 구름 따라> 사진책을 냈다.

15년간 뚜벅뚜벅 이어온 결실이 '생각나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눈길 가는 대로' 3부에 담겼다.

우리는 <한겨레:온> 필진과 편집위원으로 서로 알게 되었다.

염전의 그
염전의 그

2017년 9월 <한겨레:온>에 올린 첫 기사 ‘염전의 그’는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염전의 '그'라고 해서 염전 일꾼이 등장할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염전에서 쓰는 도구를 넣어두거나 소금을 쌓아두는 나무창고에서 '그'를 찾아냈다. 오랜 세월 시커멓게 찌들고 헐어가는 창고 벽면에 새겨진 누구도 보지 못한 '그'를 사진가의 시선으로 발견했다. 그리고 '그'의 이미지에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는 염전에서 소금에 절어가며 일해 온 일꾼이며 더 나아가 우리나라 산업화의 일꾼으로까지 의미 확장을 해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작가는 30년 다닌 직장을 그만둘 때 은퇴 후 삶이 준비되지 않았다. 경제적·정신적으로 힘들어하다가 작은 사업을 벌였지만 퇴직금마저 날렸다. 그 허탈감을 달래면서 마음수양을 위해 5년 넘게 서예를 했다. 그러나 시 짓기도 자신의 서체도 이루어 낼 수 없었다. 붓을 내려놓고 기계의 힘을 빌리기로 하고 카메라를 잡았다.

사진을 시작할 때 고급 카메라 구입이 여의치 않아 파나소닉 하이엔드(렌즈 일체형)로 첫 출사를 나갔다. 강사 말대로 설정하고 촬영해도 아웃포커싱이 되지 않았다. 그 카메라로는 표현할 수 없다는 말에 실의에 빠져 오랜 동안 시간만 흘려보냈다. 렌즈교환식 소형 미러리스를 구입하고 마음을 다잡고 사진을 다시 시작했다.

작가에게는 멀리 돌아온 길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겠지만 꾸준히 지켜온 사진 여정에서 '이야기 사진'이란 자신만의 길을 찾았고 그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치않고 그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야기 사진'에 대해서는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사진은 이야기다. 빛의 이야기고 시간의 이야기다. 밝음과 어둠에 대한 이야기며 씨앗이 싹터 열매를 맺고 시들다 사라져가는 이야기다. 또한 사람 이야기다. 내 이야기이자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들 이야기다. 시들고 늙되 추한 모습이 아니라 영그는 모습으로 사라지고 싶은 내 마음의 이야기다"

<빛 따라 구름 따라> 포토에세이집에는 사진 123장이 실렸다. ‘염전의 그’와 같이 의미를 찾아내 바라본 사진들이 주를 이룬다. 나와 이웃을 아우르는 우리네 삶의 모습이 다양한 표현으로 펼쳐져있다. 사진 곁에 다정한 친구처럼 속살거리는 글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 새 사진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작가는 사진을 '가슴으로 정성으로' 담으려 했다고 한다. 퇴직 전 공장책임자였을 때 책임자는 ‘가슴으로 근로자를 품어 안고' 근로자는 작업을 '정성으로'라는 근로협약을 마음에 새기고 일했다. 사진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래 지켜보아온 필자가 보기에도 사진 한 장 한 장에 빈틈이 없고 정성이 배여 있다.

'빛갈림'이란 사진 기법을 작가께서 가르쳐준 적이 있다. 설명해준 대로 몇 번을 해도 제대로 찍히질 않았다. 그 카메라로는 되기 어렵다고 했다. 내 것 역시 렌즈 일체형 카메라였다. 그 후 나에게 적합한 렌즈교환식 카메라를 알아보시고 구입해서 건네주셨다. 자신 때는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해서 마음이 찡~ 했다. 그뿐인가~ 어안렌즈를 써보라고 안겨주더니 얼마간 쓰고 돌려드렸는데 받지 않고 내게 주셨다. 베풂이 이에 그치지 않았지만 더 했다가는 꾸중하실 것 같아 여기서 멈춘다. "이제는 나보다 빛갈림을 더 잘 한다"고 칭찬하신다. (이 감정을 뭐라고 해야 할까? 아~ 뿌듯함 (우영우 버전)) 더 잘 할 리 없겠지만 칭찬도 아끼지 않으신다.

빛갈림 (사진촬영 : 필자)
빛갈림 (사진촬영 : 필자)

'내가 만난 사람-스승과 제자, 최성수와 양성숙' 글을 쓴 김동호 필진은 우리를 스승과 제자로 보았다. 나를 그의 제자라 감히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가 나의 스승인 건 맞다. 물고기를 던져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준 스승이다. 그렇지만 사진 친구 사이로 책 발간에 들어갈 사진과 글 초고를 보내어 봐 달라 하셨을 때 나는 흔쾌히 응했다. 나를 사진 친구로 여겨주심에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는 사진 친구 (사진 촬영 : 필자)
우리는 사진 친구 (사진 촬영 : 필자)

'내 사진에 주인공이 되어준 분들에게 특별히 고마움을 전한다'는 따뜻한 작가의 인사가 울림을 준다. 83세, 적지 않은 나이에 <빛 따라 구름 따라> 포토에세이 출간을 진심을 담아 축하드린다.

 

작가의 작품 몇 점을 소개한다.

울릉도 해안도로, 지상에서 영원으로 (1)

울릉도 해안도로에서 뻐근한 다리를 쉬고 목을 축이고자
포장마차에 들어가 의자에 걸터앉았을 때

포차 차양에 걸린 줄 하나에 마음의 시선이 머물렀다.
조그마한 생명 하나가 그 줄을 타고 기어오르고 있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

오징어의 섬 울릉도가 내 영혼을 흔들어주는 순간이었다.
 

과천 서울대공원, 자유

새는 난다. 거리낌 없이 난다. 마음대로 난다. 자유롭게 난다.

자유란 무엇인가. 진정 자유는 존재하는가. 한계는 없는가. 있다면 그 한계는 어떤 것인가.

저 새가 답을 준다.
내가 누리는 자유도 그물에 갇힌 저 새와 같다고.

종교, 전통, 윤리, 법률, 사회, 민족, 국가, 그 속박들이 저 새의 그물이 아니겠는가?
 

길 (3), 구원의 길

나이가 들면 다리가 무겁다. 손길이 둔해지는가 하면,
손등을 허리에 올리고 걸어야 한다. 앞이 잘 안 보이고 방향감각도 희미해진다.

마음이 허전해진다.
빈 가슴을 무언가로 채우고 싶고 기대고 싶어진다.

그 때에 거대한 그 무엇이 나타나 나를 가로막으며 짓누른다.

그것은 절망인가 구원인가? 놓고 비워버리는 구원의 길이다.
 

삽, 위대한 존재

삽은 농기구 출현의 출발점, 자연 그대로의 열매를 따 먹다가
밭을 일궈 씨를 뿌리게 될 즈음 삽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삽의 발명은 변혁의 시발점이다.
삽은 노동의 상징이고 일을 은유한 말이다. 일을 해야 가치를 생산할 수 있고
나의 부, 사회의 부, 국가의 부를 창출할 수 있다.
일한다는 것, 노동을 한다는 것은 고귀하며 위대한 삶의 가치다.

그래! 일하는 사람은 위대한 존재다.
 

귀부인과 남자, 수작 부리기

시흥 갯골생태공원은 내만 갯벌과 옛 염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아이들, 연인, 가족들은 물론 사진가들도 즐겨 찾는 생태 학습공원이다.
전망 타워에 올라가면 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귀부인이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있다. 턱밑을 한 남자가 자전거로 달리니
부인은 목이 간지러워 “아야야 아야.”
부인과 남자가 수작 부리는 꼴이 닭살 돋아, 나도 간지러워진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1), 가족 나들이

DDP는 우리 모두의 놀이터이자 휴식 공간이다. 어린이 젊은이 노인들 할 것 없이
모두를 아우르는 쉼터이다.

가족이 함께 걷는다.
블랙홀 같은 낭떠러지 위를 걸어간다.

곱다. 아련하다.
 

지하철 신발 (12), 내 우주

지하철 의자에 길게 드리운 내 다리와 신발이 둥근 원 중심에 커다랗게 놓여있다.

원이 지구를 그린다. 여러 신발이 군중을 이룬다. 그 중심에 내 신발이 있다.

내가 속해 있는 세계다. 내 우주다.

그 속의 나
내 우주를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그건 나 자신뿐이다.


* 이글은 지난 10월 3일 한겨레 신문 22면에 실린 글에 내용을 추가하여 재작성한 글이다.
* 한겨레 기사 보기 : https://www.hani.co.kr/arti/society/media/1061092.html?_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장 

양성숙 편집위원  ssooky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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