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교정지킴이, 그린에듀교육지원단

지난 11월 22일(화), 13시부터 16시까지 동대문구청 2층 다목적 강당에서 서울시교육청 교욱자원봉사지원센터(센터장 : 신입철, 이하 센터) 주관 봉사활동 사례발표회가 있었다. 이는 연례행사다. 이번에는 49개 교육지원단 가운데 기초학력 교육지원단 외 7개 교육지원단에서 사례를 발표하고, 사이사이에 일찍이 서울시 봉사상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노멀앙상블 교육지원단을 비롯하여 까투리무용단, 위드플루트앙상블, 오카리나텅드럼 등 4개 교육지원단의 공연과 연주가 다채롭게 이어졌다.

 

자기 말만 하고 우르르 몰려가는, 초대받은 사람들
 

내빈을 대표하여 심미경 서울시의회 교육위원(국민의힘), 임무영 서울초등교육장회 회장, 그리고 이필형 동대문구청장의 축사가 있었다. 그 가운데 심 위원과 이 구청장은 청산유수 같은 ‘말씀’ 몇 마디를 마치자마자 총총히 퇴장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마침 이날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학생 행복과 지방교육재정을 지키는 교육복지' 토론회에 참석하느라고 15시경 도착했다. 1차로 영상메시지를 시청했는데, 나중에 다시 등단하는 바람에 우리는 교육감 격려사를 두 번이나 들은 셈이다. 그 또한 ‘한 말씀’ 하기가 무섭게 주변 인사들과 악수하더니 부랴부랴 식장을 떠났다. 들리는 말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앉아서 경청하겠다고 해서 얼마나 많은 기대(?)를 했던가. 나만 그랬나? 오늘 새벽, 최종적으로 거울까지 보면서 연습했는데…. 절로 쓴웃음이 나온다.

‘어렵게 모셨다’는 사람들은 애초부터 남의 말 따위엔 관심이 없나 보다. 자기 ‘말’만 하고 떠나니 말이다. 그것도 누구보다 먼저 마이크를 잡는다. ‘말씀’이라고 해야 하나같이 들을 말은 거의 없다. 고맙다, 고생한다, 존경한다, 작지만 도움을 드리고 싶다….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연신 허리를 굽히고 손을 흔들면서 우르르 퇴장하는 것까지 닮았다. 결국 남아 있는 이들은 와도 그만 가도 그만인 존재들일까? 아무튼 늙수그레한 200여 명의 퇴직 교직원들은 그들이 들고날 때마다 사회자의 권유에 따라 고개를 기웃거리는 박수부대로 전락했다.

아래는 필자가 발표한 그린에듀교육지원단 사례이다. 더듬어 복기한 것이라 실제와 조금 다르겠지만 대과 없으리라.
 

안녕하십니까?
살아 숨 쉬는 초록교정가꾸기사업을 펼치는 그린에듀교육지원단입니다.

 

규모가 크다 보니 서울을 7개 지부로 나누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강서구의 신월초교에서 응원과 감사 메시지를 전해 주었습니다. 시간상 내용은 생략합니다. 다만, 제 발표 마치는 대로 수요기관을 대표하여 김학경 내곡중학교 교장님이 현장 사례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우리는 땅을 갈고 밭을 디자인해서 곡식과 채소를 심고 가꾸며 배추흰나비를 사육하고, 때로는 아이들은 물론 교직원 대상 생태강의를 병행합니다. 물론 낙엽을 쓸고 생태교란종을 제거하며 각종 씨앗을 채종, 인근 학교에 보급하기도 합니다.

 

특히 10명이 전정팀을 조직하였습니다. 특별한 자격증이나 장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은 강남구 논현초교에 나가는데, 일산에 사는 제 경우 가고오는 데만 4시간이 소요됩니다. 성북구 동작구 구로구 강서구 등 사방에서 참여하는 다른 분들도 사정은 거의 비슷합니다. 장미를 비롯하여 회양목 무궁화 쥐똥나무 화살나무와 같은 키 작은 관목과, 사다리를 놓고 작업할 수 있는 정도의 주목 향나무 단풍나무 반송 등을 가지치기하고 고사목을 제거합니다.

 

그린에듀의 특장 가운데 하나는 자율적 역량강화연수입니다. 그동안 코로나로 중지했다가 지난 6월 곰배령을 시작으로 서울의 둘레길 가운데 남산과 관악산을 탐사하고, 11월과 12월에는 대모산과 봉산 등지를 탐사할 예정입니다. 내년 1월에는 새해맞이 북악산 산행을 계획하고 나름 2022년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이와 별도로 해마다 12월에는 사계의 전문가를 초빙하여 ‘기본연수’를 실시합니다. 이번에도 12월 5일부터 8일까지 비대면 연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표에서 보시는 것처럼 그린에듀는 현재 51개교에서 연간 연인원 10,065명이 활동하는 센터 내 최대 조직으로 성장했습니다. 말없이 교정을 가꾸고 계신 우리 115명의 단원 여러분께 먼저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오늘의 그린에듀가 있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이끌어주신 신입철 센터장님과 조희연 교육감님께 이 자리를 빌려 깊이 감사드립니다. 두 분은 지난 4월 조례가 제정되기까지 각별히 애정을 갖고 쫓아다니면서 읍소하고 지원책을 강구한 것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이제 일부에서 제기하던 불법단체라는 오명에서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았을 때 지금 우리 센터는 어느 때보다 어수선합니다. 특히 6년 동안 유지하던 기존 조직을 내년 1월부터 완전히 해체하고, 센터장마저 자원봉사업무 또는 사회복지업무에 3년 이상 종사한 5급 이상 퇴직공무원 등으로 한정함으로써, 교육경력이 전혀 없는 이가 기관장이 되는, 교육청 산하 기관이 탄생하는 셈입니다. 교직 동료는 간데없고 공무원 6명만 덩그러니 앉아 있는 센터를 떠올려봅니다. 허탈합니다. 센터를 바라보는 우리 단원 모두 더 이상 선뜻 ‘우리 센터’라는 말은 나오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그린에듀 속살을 들여다보면 안타까운 점이 산적해 있습니다. 즉, 연도별 단원 수 추이를 보면, 창설 당시 10명 단원이 불과 3년 만에 248명까지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그러나, 2020년부터 줄어들어 지금은 115명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한 해 동안 무려 64명이나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유명을 달리하신 세 분이 계시고, 연로한 나머지 서중부의 김●● 님은 우리가 나서서 활동 자제를 강권하기도 했습니다만, 대부분은 스스로 회원 활동을 중지했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 몇 분은 지자체나 교육청, 학교의 구직코너, 시니어클럽, 지역아동센터, 심지어 파출소 같은 곳을 전전하고 계십니다. 아니면 센터 안에서도 그린에듀에 견주어 상대적으로 힘들이지 않아도 되는 다른 단체로 옮겨가기도 합니다.

 

한때는 마포구 노을공원에서 김장해서 나눔을 실천하고

 

고양시 장항습지에 가서 특별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학교를 순회하면서 수목과 초본을 조사하고 생태자료를 보급하고, 누리집을 뒤져가며 오류를 발견해서 통보하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우리 ●● 어린이들은 민들레 홀씨처럼 온 세상을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는”이라는 설명과 함께 민들레 씨가 날아다니는 커다란 사진을 현관에 붙여 놓은 학교도 있고, 목동의 한 학교는 “천로지벌 옛 터전의 정기를 받은”이라고 시작하는 교가를 아직도 누리집에 버젓이 실어놓고 있습니다.
아시겠습니다만, 홀씨는 꽃이 피지 않는 버섯 이끼 고사리 미역 등이 번식하기 위한 포자를 말합니다. 민들레는 홀씨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몇천 호가 들어설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 '천호지벌'입니다. 바로 양천구 목동에 있던 들녘을 일컫던 말입니다. 천로지벌이란 말은 없습니다.

 

2년 동안 애써 가꾼 센터 옥상 정원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만, 무슨 안전상의 이유로 그랬다는데 어불성설입니다. 비전문가인 그가 안전검사도 하지 않고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터무니없는 짓을 자행한 그분에게 말씀드립니다. 2022년 11월 현재 ,각 학교 옥상정원의 실태를 알고나 계신가요? 

 

문을 걸어버리고 주무관 한두 분이 상추를 가꾸는 사경지로 전락했습니다. 일 년 내내 방치하다 보니 마치 폐허처럼 잡풀만 무성합니다. 정말로 심한 것은 소나무 같은 교목을 심어놓아 안전을 위협하는 곳이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한마디로 수억 원을 들여 조성한 옥상텃밭이나 정원 가운데 어린이를 위한 교육장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얼토당토않은 말로 잘 가꾸어놓은 센터 옥상을 없애기 전에 부실하고 불안전한 각 학교 옥상정원을 되돌아보기 바랍니다.

 

교정의 푯말 또한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바뀐 탓인지 한 학교에서도 재질과 사양과 내용이 다른 두세 가지 푯말을 걸어두고 있습니다. 그나마 교육적인 어떤 함의도 없는 이름표일뿐입니다.

 

고양시의 어느 중학교 벤치입니다. 앉고 싶은 의자, 마음이 맑아지는 의자, 쓰레기가 보이면 주워야 할 것 같은 의자입니다.

 

붉나무에 생긴 오배자를 보십시오. 생명력이라고는 하나도 없어보이는 저 호박은 또 어떻습니까?

 

옥수수에 생긴 충영(벌레혹)은 정말로 흉측하기까지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우슬(쇠무릎) 마디는 원래 굵고 튼튼하지만, 특히 둥글게 부푼 것은 ‘쇠무릎혹파리’ 유충이 사는 벌레혹입니다. 모두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또한 벌레혹과 공생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누구랄 것 없이 병든 노구를 이끌고 교정을 누비지만, 잠시나마 학생들이 편히 쉬다 가는 저런 의자가 되고 싶습니다.

하얀 냉이꽃입니다. 그 옆에는 냉이 사촌인 노란 꽃다지꽃입니다. 이른봄 밭갈이를 하는 농부들에게는 작물에 해가 되는 한낱 잡초일 뿐입니다. 수선화도 어떤 농부에게는 쓰잘데기없는 풀때기요, 칠변화라고 하는 란타나 또한 원산지에서는 함부로 내쳐지는 잡풀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심어 가꾸지 않은 것을 잡초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보리밭에 난 밀이나 귀리도 잡초가 되고 맙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잡초는 없습니다. 더구나 이름 모를 잡초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화초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린 결코 잡초가 아닙니다. 이렇게 강변하고 있는 현실이 정말 웃프지만, 때로는 잡초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는 하소연이 들려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스치면 인연이요 물들면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너나없이 우리는 교정에서 우직하게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지난여름 마포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김을 매다가 모기에게 짓씹힌 어느 단원의 상처입니다. 보기만 해도 굼실거려 속이 몹시 울렁거립니다. 하물며 연고를 발라주며 이 사진을 찍은 그분의 남편 마음을 헤아려 보십시오.

 

그런저런 어려움 속에서도 오늘의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은 나름 소박한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라 죽은 것처럼 보이는 앙상한 담쟁이가 어느 순간 변함없이 저 너럭바위를 초록으로 뒤덮을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내년 봄에 돋아날 새싹을 위해 한겨울에도 죽은 잎새 내치지 못하는 저 참나무처럼, 한데서 오들거리는 이 땅의 아이들을 우리는 감싸 줄 것입니다.

 

개미들이 쉬이 지나가도록 장난감으로 다리를 만들어 주고, 한여름 서울숲 땡볕에 앉아 개미들을 지켜보는 저 어린아이들을 언제까지고 여겨볼 것입니다.

 

센터가 발족하던 2016년 학교보건진흥원 강당에서 실시한 사례발표회가 생각납니다. 불과 단원 10명이 오전엔 염동초교에서 활동하다가, 오후엔 숭인초교와 양재초교로 쏘다니면서 봉사할 때만 해도 힘든지 몰랐습니다.


그때나 입때나 우린 같은 마음입니다. 그린에듀의 모토는 생태감수성 향상입니다. 단원 모두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를 드높이는 서울의 교정지킴이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들을 스스로 붙좇도록 다 같이 다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편집 :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김미경편집장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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