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기록 ② 부르고 또 부른, 이름

이태원역 앞에 붙여진 참사 희생자인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
이태원역 앞에 붙여진 참사 희생자인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

“사랑하는 우리 딸 ○○아, 아빠가 많이 미안해. 사랑한다.” “아들, 엄마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이곳에서 못다 한 꿈들, 그곳에서 자유롭게 이루면서 편안히 잘 가라. 미안하다, 미안하다.”

이태원역 1번 출구를 덮은 수천장의 추모글 중에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어 참사 현장을 직접 찾았을 유족의 글 7건이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손녀딸 ○○야. 얼마나 아팠니…. 얼마나 무서웠니…. 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미안하다. 갑자기 떠나간 너를 보고 싶어 몸부림치는 엄마 아빠, 조금 덜 아파하고 조금만 우시고 잘 살아가시라고, 널 22년 동안 예쁘게 키워준 아빠 엄마, 힘내시고 건강 챙기시라고 토닥여 드리거라. 천사가 되었을 예쁜 ○○야. 먼 훗날, 우리 하늘나라에서 만나자. 할미가.”

“오빠. 나보다 고작 7년 먼저 태어났다고 뭐가 그렇게 바빠서 일찍 갔는지 모르겠지만 벌레 하나 못 죽이는 오빠 성격에 딱 오빠 같은 선택을 하고 떠났구나. 내가 오빠 대신 오빠가 가보고 싶었던 곳, 하고 싶었던 거 다 해줄 테니까 좋은 곳으로 편하게 가. ○○○ 머저리야. 사랑해.”

친구와 지인의 추모글은 모두 63건이었다. 더 많은 날을 함께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님, 우리 같이 더 재밌게 놀 수 있었는데 제가 더 연락도 많이 하고 같이 카페도 갈걸, 그런 생각이 들어요. 편히 쉬어요. 보고 싶어요.” “내 친구 ○○야. 네가 너무나도 억울해서, 미련이 많이 남아서 먼 길 가는 발걸음 얼마나 무거웠을까? 절대 너 잊지 않을게.” “○○. 우리 다음에 또 같이 덕질하고 놀아요. 못다 한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다음이 있다면 그땐 아프지 말고 행복해야 해요. 안녕히….”

언젠가 만나자던 약속은 영원히 지킬 수 없게 됐다. “형이랑 같이 술 마시기로 해놓고 전역할 때까지만 기다리지 그랬어. 형이 꼭 매년 술 사주러 찾아갈 테니까 거기서는 몸조리 꼭 잘해야 해.” “시간 있을 때, 만나자 할 때 만날걸. 보고 싶다, ○○아.”

희생자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자 모든 것이 미안해졌다. “○○이 언니, 너무나 천사 같은 언니였던 것을 알기 때문에 비난하는 사람들이 조금 미워질 뻔했어. 언니가 이 말 들으면 웃으면서 그럴 필요 없다고 해줄 거 아니까 미워하지 않고 언니를 보고 싶은 마음만 생각할게.” “거기선 너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고 살아, ○○아. 너를 더 품지 못해서, 이해하지 못해서 미안했어. 그래도 넌 내 친구야.” “너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한 것이 너무 슬퍼서 울 수밖에 없다. 미안, 벌써 보고 싶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시민들이 적은 추모의 글귀들이 붙어 있다. 박지영 기자
지난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시민들이 적은 추모의 글귀들이 붙어 있다. 박지영 기자

뒤늦게 후배의 소식을 듣고 이태원역을 찾은 이도 있었다. “○○아, 소식을 너무 늦게 들어서 직접 못 보고 이렇게 이태원에서 보게 되네. 대학 시절 내내 ○○이 너가 우리 동아리에 없었다면 정말 재미없었을 거야! 종종 운동 관련 연락할 때 더 얘기할걸, 아쉽고…. 그래도 마지막 내가 널 보내줄 수 있어서 조금 낫다. 가서 빛나는 별로 남아줘. 누나가 항상 기도할게! 내 청춘을 같이 보내줘서 고마워!”

선생님을 잃은 제자들의 글도 보였다. “○○쌤, 놀러오면 이거 같이 마시면서 쌤 작품 얘기하기로 했는데….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요. 제가 쌤 잊지 않고 마음속에 늘 간직할게요! 편히 쉬어요. 내 장인 ○○쌤.” “중학교 3학년 때 ○○ 과목을 가르쳐주신 ○○○선생님, 안타까운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 믿기지 않았고 슬펐습니다. 감사드리고, 편히 쉬세요.”

친구를 고인으로 부르고, 친구에게 절을 하는 것은 한없이 낯선 일이었다. “돌아가셨단 표현도 이상하고, 고인이라는 말도 이상하고, 너한테 절하는 것도 이상해. 이태원역에서 너한테 술이랑 꽃도 주고 절하려는데, 진짜 마지막이라고 인정하는 것 같아서 뒷걸음치게 되더라. 혼자 남겨놔서 미안해. 같이 못 있어 줘서 미안해. 사랑하고, 정말 보고 싶다.”

어떻게 분석했나

<한겨레> 이태원 참사 취재팀(고병찬·곽진산·박지영·서혜미·이우연·장예지·장현은·전광준·채윤태 기자)은 10월30일~11월7일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주변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붙인 추모 메시지들을 356장의 사진에 모두 담았다. 메모가 덧대어졌거나 훼손돼 알아보기 힘든 것을 제외한 3584개의 추모글을 추려 하나하나 텍스트로 입력했다. <한겨레> 미디어기획부 테크팀은 이렇게 쌓인 14만8398개 글자를 형태소 분석기를 활용해 문자열을 분류한 뒤, 조사 등을 제외하고 11번 이상 등장하는 단어 275개를 추려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한겨레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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