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기록 ③살아남은 이들의 괴로움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붙은 추모의 글귀들을 시민들이 바라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붙은 추모의 글귀들을 시민들이 바라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그날’ 한명이라도 더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후회, 좁은 골목길에서 혼자만 빠져나왔다는 미안함. 3584개 메모 중 생존자가 쓴 것으로 보이는 28개 메모에는 참사 당일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 있었던 생존자들과 구조 활동에 참여했던 이들의 ‘고백’이 적혀 있었다.

이태원역을 다시 찾은 생존자들은 ‘살아남았다’는 안도보다 ‘혼자 빠져나왔다’는 미안함을 메모에 남겼다. 참사 당일 사고 현장에 있었다는 한 시민은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었는데 나 혼자 무사히 집에 돌아와서 부모님을 다시 보고, 안을 수 있어서 마음이 너무 무겁다. 멀쩡히 돌아간 나도 집 앞을 지나가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 숨을 쉴 수가 없는데 기사만 봐도 심장이 조이는데, 가족분들은 얼마나 더한 고통일, 또 당시에 얼마나 큰 고통을 느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추모공간을 찾은 한 시민이 “지난 29일 현장에 있었다”며 희생자를 위한 추모 메시지를 적어 붙인 꽃다발을 놓고 갔다. 박지영 기자
지난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추모공간을 찾은 한 시민이 “지난 29일 현장에 있었다”며 희생자를 위한 추모 메시지를 적어 붙인 꽃다발을 놓고 갔다. 박지영 기자

“생존자”라 밝힌 이는 “정신없이 심폐소생을 하고 있었다. 내가 조금만 더 정신을 차렸더라면, ‘한분이라도 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속상함이 크다. 내 앞에서 ‘살려달라’고 절규하던 분의 얼굴이 기억난다. 구조될 때는 숨이 멎은 상태였다. 나도 당시 죽을 것처럼 여유가 없었다. 죄송하다. 내가 힘이 조금 더 셌다면 ‘들어 올려서라도 살릴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든다”고 적었다.

현장에 있었다는 또 다른 시민은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 중 한명으로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너무 후회되고, 내가 붙어서 (희생자 분들을) 살리려고 노력했다면 생존자가 한명이라도 더 늘지 않았을까 싶다.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잊지 않겠다”고 했다. 생존자로 보이는 이는 “스쳐 지나갔던 여러분을 잡았다면 한분이라도 더 살 수 있었을까? 혼자만 나와서 죄송하다”고 했다.

이태원역 추모 공간에서는 자책감과 미안함, 트라우마를 겪는 시민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쓰다듬는 연대가 이뤄지기도 했다. 구조 활동에 참여했다는 한 시민이 “망설임 없이 달려가 시피아르(CPR·심폐소생술)를 했다면 한 목숨이라도 더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용기 내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쓰자, “옆에 메모지 붙이신 분,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자책하지 말라”는 메모가 덧붙여지기도 했다. “살아남으신 분들… 죄책감 덜고 마음의 안정 취하셨으면 좋겠다” “도움 주신 많은 분, 죄책감 가지지 말고 살아가시길. 우리 모두 이 사건을 잊지 말길” 등 이태원을 찾은 시민들은 각자의 언어로 참사 이후 상처받은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더 이상 참사가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다짐도 많았다. 경찰공무원을 준비하는 20대 청년이라고 자신을 밝힌 이는 “이번 참사를 잊지 않겠다. 국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마주치는 얼굴은 경찰이다.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나라, 경찰관이 되어 책임지겠다”고 적었다.

“어쩌면 내 친구였고, 어쩌면 내 동생이었고, 어쩌면 내 오빠였고, 어쩌면 나였을지 모르는 당신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이리 보내서 미안합니다. 우리가 끝까지 묻겠습니다. 그날 국가는, 공권력의 윗선들은 무엇을 하였는지,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저에게 이태원은 행복한 경험들로 가득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동네입니다. 여러분의 이태원은 어떤 곳이었나요. 안전하고 즐거운 이태원을 위해 저도 마음과 행동을 보태고 싶습니다.”

어떻게 분석했나

<한겨레> 이태원 참사 취재팀(고병찬·곽진산·박지영·서혜미·이우연·장예지·장현은·전광준·채윤태 기자)은 10월30일~11월7일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주변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붙인 추모 메시지들을 356장의 사진에 모두 담았다. 메모가 덧대어졌거나 훼손돼 알아보기 힘든 것을 제외한 3584개의 추모글을 추려 하나하나 텍스트로 입력했다. <한겨레> 미디어기획부 테크팀은 이렇게 쌓인 14만8398개 글자를 형태소 분석기를 활용해 문자열을 분류한 뒤, 조사 등을 제외하고 11번 이상 등장하는 단어 275개를 추려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한겨레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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