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언론상’은 제주4·3평화재단이 제정했다. 이 상은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기여하고 평화·인권·민주·정의 등 4‧3의 가치와 정신을 계승·선양하며 4‧3의 전국화·세계화를 위해 노력, 헌신한 언론인, 언론기관·단체에게 시상한다.
지난해 12월 16일 ‘제1회 4.3 언론상’이 선정되었다. 2018년 1월 1일부터 2021년 12월 31일까지 4년 동안 보도·방송·제작된 작품을 대상으로 한국기자협회와 제주도기자협회가 심사하였다. 총 29편 응모작 중에서 ‘대상’과 △신문·출판 본상△방송·영상 본상△대학언론 신인상을 선정했다.
대상은 KCTV제주방송의 <4·3특별기획 뉴스멘터리-땅의 기억>(김용민·김용원·문수희)이, 방송·영상분야 본상은 KBS제주방송총국 <탐사K 3부작-4·3과 조작간첩…잊혀지는 기억들>(강재윤·나종훈·부수홍·신익환)이 각각 수상했다. 중앙대의 교지 <중앙문화> 특집 기사인 ‘특별법 개정안으로 재기억하는 4·3사건’(김현경)은 신인상을 받았다.
관련 기사 : https://www.hani.co.kr/arti/area/jeju/1072125.html
신문·출판분야 본상은 허호준 <한겨레> 기자가 받았다. 허기자는 30여 년간 <한겨레> 제주 지역기자로 활동하며 4·3의 진상규명에 대한 취재와 보도를 이어왔다. 수상작 ‘제주4·3 70주년 기획-동백에 묻다’ 기획은 2018년부터 이어온 장기 연재물로, 제주민의 4·3 상처와 고통을 다양한 인터뷰 기사 등으로 생생하게 드러내 정부의 진상규명 활동에 기폭제가 되었고 한국 사회에서 4·3을 되돌아보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허 기자는 최근에도 4·3 재심 재판을 꼼꼼하게 살핀 보도를 이어오고 있다.
[제주4·3] 동백에 묻다
제주4.3특별법은 제주4.3을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무덤덤하게 정의한다. 하지만 당시 제주도 인구 10%에 이르는 2만5천~3만여명이 희생된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었다. 그 상처는 현재진행형이다. <한겨레>가 2018년 70주년을 계기로 4·3의 현재적 의미를 되짚어봤다.
연재리스트
- 한겨레 허호준 기자, 제1회 4·3 언론상 본상 수상
- 95살에야 ‘무죄’…3살 아기와 잡혀간 나, 거짓 자백을 했다
- 제주4·3 ‘일반재판 수형인’ 직권재심 속도…올해 안 청구 시작할 듯
- “아버지! 불러봤으면” 출생신고도 못한 채 아버지를 잃었다
- 4·3 희생자 더 찾는다…19년 만에 정부 차원 추가조사
- “등에 업은 세살 동생이 나 대신 총에 맞았다”…12살 소녀의 4·3
- 문 대통령 “5년 내내 제주 4·3과 함께한 건 큰 보람이었다”
- 72번째 제주4·3 추념식, 올해는 온라인으로 추모하세요
- 어머니는 굴 밖으로 울음소리가 새지 않도록 빈 젖을 물렸다
- 부모와 함께 끌려간 처형장, 혼자만 살아남았다
- 토벌군 총에 다섯 식구 잃은 정씨집 종손…그가 평생 민주당만 찍은 이유는
- 마당에서 총살된 가족들…왜 쐈는지, 누구도 모른다
- 청년단이 고문하던 나는 열여덟살 임신부였다
- 3살 아기는 총탄 세 발을 맞고도 꼼지락거리며 살아났다
- 정방폭포 처형장 끌려가던 엄마는 주먹밥을 내게 건넸다
- 12살 소녀의 몸에 새겨진 제주4·3의 기억
- 제주 학생들은 왜 ‘양과자 반대운동’을 벌였나
- 제주4·3의 도화선…1947년 3·1사건의 목격자들
- ‘4·3 수형인 재심 개시 우려’에 법원이 답했다
- 재판기록 없는 제주 4·3, 70년만에 재심한다
- “동굴 속 피신 연기하며 증조할아버지 고통 되새겼어요”
- 4·3 ‘백비’는 이름을 원한다
- ‘냉전 렌즈’ 낀 미국…4·3 시작과 끝 낱낱이 알고 있었다
- “죽어도 돌아오지 말라”…4·3으로 제주 떠난 사람들
- 판결문 없는 4·3 군사재판…‘수형인 명부’ 인정여부가 쟁점
- 경찰 총탄에, 무장대 죽창에 망가진 몸…“왜 난 4·3 후유장애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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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공대 고문에 먼 두눈…‘독한 년’ 덕에 마을이 살았다
- 한밤중 끌려간 스물일곱 동갑내기 남편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 소 몰러 갔다가 폭탄 맞은 12살 소녀…“지금도 죽음이 두렵다”
- 70년전 18살 제주 소녀 김평국 곁에는 변호사가 없었다
- 제주 흙이 피에 절어 시커멨어, 처형장 가던 내 나이 9살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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