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매니저 초대에 모인 우리 팀 연구원들 
지난해 11월 매니저 초대에 모인 우리 팀 연구원들 

회사에 첫 출근하기 전까지 항상 궁금했다. 미국 제약회사 분위기는 어떨까? 사람들은 어떨까? 어떤 연구를 하게 될까? 과연 재미있을까?

‘글래스도어’라는 웹사이트는 전·현직 직원이 자신의 회사에 대해 리뷰와 평가를 하는 사이트다.  우리 회사는 5.0 만점에 4.1점을 받았다. 평점이 4.0 이상이면 기업문화가 좋다고 평가 받는다.

아직 일을 시작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우리 회사는 4.1점을 받을 만한 회사라는 생각이 매일매일 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가 가진 신념을 본받아 나 또한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 과학만 잘하는 연구원이 아니라, 리더십, 도덕심, 이타심, 정직함을 두루두루 갖춘 그런 연구원 말이다.

첫 2달간은 회사 내부에서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교육 때문에 연구를 거의 하지 못했다. 교육의 종류는 정말 다양했다. 회사 내에 어떤 부서가 있고 각 부서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실험실에서 지켜야 할 다양한 안전 교육, 실험실 내 장비 교육, 내부 데이터 보전 방법, 외부 연구자와의 데이터 공유 방법 및 주의 사항, 일하면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행동 및 언어 교육 등 셀 수 없이 많았다. 교육을 다 마쳐야 연구를 시작할 수 있다. 만약 교육을 마치지 않고 연구하면 상사에게 보고되고 경고를 받는다. 이처럼 회사는 회사 예규에 맞춰 행동하는 것을 직원의 기본적 소양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규범들을 어겼을 경우 해고까지 가능하다고 경고한다.

많은 교육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교육은 회사 내에서 지켜야 할 행동과 신념에 관한 내용이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1. 상사가 직원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하는 걸 우연히 목격했다. 목격자로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정답은 ‘인사과에 신고한다’. 회사에선 어떤 경우에도 부적절한 언행은 용납되지 않는다. 언행뿐만 아니라 부적절한 메시지, 이메일도 포함된다. 이런 행동을 신고하지 않고 무시한다면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신고한다면 인사과에서 부적절한 언행을 한 직원에게 직접 연락을 취해 교육받게 하거나 상담을 진행하여 행동을 개선할 방법을 모색할 수 있지만, 신고하지 않으면 그 직원은 교육과 상담을 받지 않게 되고 결국 더 안 좋은 신고를 받아 해고될 수 있다는 것이다.

2. 새 직원을 고용하는 과정에서 인사과 추천 후보자의 이력서를 살펴보니 외국인이다.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선 비자 지원이 필요하다. 후보자 이력과 경험은 현재 포지션에 가장 적합하다. 비자 지원은 시간과 비용이 추가로 든다. 이 후보자를 탈락시켜도 되는가?

정답은 ‘안 된다’. 회사는 외국인을 포함하여 모든 후보자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어야 하고, 포지션에 가장 적합한 후보자를 선택하는 것이 도덕적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회사가 다양한 인재를 수용하고 글로벌한 기업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3. 새 직원을 고용하는 과정에서 후보자는 인터뷰를 완벽히 수행했다. 현 위치에 필요한 경험과 스킬도 갖고 있다. 마지막 인터뷰에서 후보자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후보자를 제외할 수 있을까?

후보자는 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장애가 있다는 걸 인터뷰 과정에서 공개할 의무가 없다. 장애가 있는 걸 알았다고 해서 후보자에서 제외해서도 안 된다. 회사는 특정 일을 수행할 능력이 된다면 장애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회사와 채용을 담당하는 리더가 갖고 있어야 할 신념이라는 것이다.

4. 수잔은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픽업하기 위해 4시에 퇴근한다. 하지만 수잔은 미팅에도 늦지 않고, 맡은 프로젝트도 시간에 맞춰 잘 마무리한다. 회사에 새로운 큰 프로젝트가 들어왔다. 큰 프로젝트는 워킹맘인 수잔이 감당하기엔 어려워 보였다. 독신남인 톰에게 프로젝트를 맡긴다. 이렇게 결정해도 될까?

과거에 회사는 종종 그렇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결정은 기회의 동등성과 공평성에 어긋난다. 회사는 양육하고 있는 부모에게 색안경을 끼지 말아야 하고 동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더 나아가 부모가 일을 편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리더의 의무이며 이에 따라 필요시에는 재택근무와 유연근무제도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질문을 풀어가면서 회사가 가진 ‘신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평소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했다. 사실 이런 덕목은 나를 다시 돌아보게끔 만들었다. 나는 과연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공평한 리더가 될 수 있을까? 만약 내가 미국인이었다면 외국인을 고용하는 복잡한 절차에 호의적이었을까? 부당한 대우를 받는 직원을 봤을 때 그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을까?

부끄럽지만 아마도 편한 쪽,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쪽, 빠른 쪽을 선택했을 것 같다. 석사와 박사를 하면서 항상 추구했던 가치는 효율성과 신속성이었다. 생존을 위한 그 가치에 몰입했고 그 외 어떤 가치를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회사의 이런 교육은 ‘진정한 리더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게 했다.

이런 교육 외에도 회사는 직원들에게 자율성을 보장해준다. 원하면 집에서 재택근무를 해도 된다. 매니저에게 재택근무를 한다고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 8시간만 채우면 원하는 시간 때 근무도 할 수 있다. 어떤 직원은 7시~15시까지, 어떤 직원은 8시~16시까지 근무한다. 휴가도 별도의 허락 없이 하루 전에 시스템에 입력하면 된다.

이런 얘기만 들으면 ‘무슨 회사가 이래?’, ‘직원들이 이래서 제대로 일하겠어?’, ‘회사 성과가 나올까?’라고 의문을 가질 테지만 우리 회사는 1980년 설립 이후 꾸준히 성장하여 현재 미국 10대 제약회사에 들어간다. 

회사에서 4개월 일하고 팀의 성과를 직접 목격한 결과, 자율적인 환경에서도 연구원 하나하나는 책임과 열정을 갖고 일한다. 본인이 하는 일에 자부심과 재미를 느끼면서 일한다. 매니저는 직원을 압박하지 않고 솔선수범하여 스스로 성장과 발전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직도 ‘이런 환경이 현실인가?’, ‘회사가 이렇게 너그러워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회사의 다양한 배려에는 늘 고마운 마음이다. 이런 분위기에 앞장서는 임원들과 매니저에게도 고마운 마음이다. 이런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일하니 당연히 열심히 그리고 열정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우리 회사의 야외 휴게 시설과 정원이다.

야외 휴게 시설
야외 휴게 시설
야외 휴게 시설
야외 휴게 시설
야외 정원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이지산 주주  jeesanlee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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