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요상 주주-이름 없는 수많은 시민활동가와 함께 받는 상입니다

 

이름 없는 수많은 시민활동가와 함께 받는 상입니다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세상에 둘은 없을 것 같은 특별하고 아름다운 상을 받으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하지만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처럼 말석에서 보잘 것 없는 활동이나 하는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다가 한경희통일·평화상의 성격과 수상대상, 공적사항 등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됐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저와 똑같은 많은 시민활동가들 속에서 수상자를 뽑기로 했다는 말씀에, 나이 많은 제가 대표로 상을 받아도 되겠다는 용기를 냈습니다.

실은 얼마 전 옥살이를 한 고 한경희 여사님의 자제분들이 어머니를 기리는 상을 제정한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 상을 제가 받게 되고 이렇게 어려운 수상소감을 쓰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먼저 군사독재 정권시절, 이른바 조작 ‘송씨일가 고정간첩단’ 사건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신 고 한경희 여사님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 이미 세상을 떠났음에도 ‘간첩수괴’로 조작돼 영혼까지 부관참시를 당한 고 한경희 여사님의 영전에 해원을 비는 마음과 함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저는 지난 2008년 광우병 수입쇠고기 반대를 위해 청계광장에 나와 촛불을 든 평범한 시민입니다. 지난 9년여 동안 저는 시민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물리력으로 대처해온 국가에 분노해 거리와 광장에서 나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 한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상을 받는 기쁨보다 부끄러움과 반성할 게 더 많은 사람입니다.

2008년 촛불을 들고 시청 앞에 나올 때 만해도 이렇게 오랫동안 거리와 광장, 또 여러 투쟁 현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량을 믿었다고나 할까요. 정부가 시민의 목소리와 여론을 수용해 사회를 안정시킬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제 기대는 너무 컸습니다. 정의는 무너지고 시민은 곳곳에서 모욕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이명박 정권은 촛불민심을 강제로 제압한 것도 모자라 국토의 곳곳을 참절하는 4대강 공사를 강행하고 이에 반대하는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을 탄압으로 일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여러 부조리한 사회현실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금방 집으로 돌아가리라는 처음 생각은 멀어져 갔지만, 사회의 잘못을 속속들이 알아가며 이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촛불시민들과의 연대활동은 새로운 기쁨이었습니다.

박근혜 정권 들어서는 더욱 극악해졌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 선생 이 증명하듯 국가는 갈수록 자신의 무능을 드러내고 있을 뿐입니다. 국론은 분열되어 서로 치고받는 일이 일상화되고 정부는 이를 부채질 하는 듯합니다. 현실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해고노동자들은 고공농성을 하고, 세월호 진실은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있으며, 백남기 선생은 식물인간 상태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움직이는 만큼 세상은 좋은 쪽으로 달라진다는 믿음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일단 열심히 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사실 모든 일은 성공보다는 실패가 훨씬 많습니다. 성공은 실패 뒤에, 실패하는 과정에서 옵니다. 제가 본 지난 9년여 동안의 한국사회는 언뜻 민주주의와 이를 떠받치는 시민사회가 계속 실패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패 속에서 성공이 오듯 시민사회는 조금씩 이기는 길을 걷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전국 곳곳의 4대강에서, 강정에서, 세월호의 광화문과 안산에서, 밀양과 수많은 골프장 반대 투쟁에서 시민사회는 지면서 이겨왔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이 믿음 위에서, 오늘 저와 함께 수상하는 전국의 수많은 시민활동가들과 함께 뚜벅뚜벅 전진하겠습니다.

저는 지난해 말부터 종로에 ‘문화공간 온’ 설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온은 조합형식으로 종자돈을 모아 추진하고 있으며,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둥지가 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시민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함께 공부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획을 마련할 생각입니다. 오늘 주신 상금은 ‘온’이 출범하는 데에 소중한 디딤돌로 쓰겠습니다. 사실 의외로 돈이 많이 들어가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고 한경희 여사님께서 그 사실을 아시고 천국에서 내려주신 특별후원금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이야 말로 고 한경희 여사님의 유지를 가장 확실히 받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한 번 더 말씀드립니다. 이 상은 지금 이 시간에도 시민사회 곳곳에서 헌신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과 공동으로 받는 상입니다. 그분들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한경희통일·평화상 수상이 한국 시민사회 운동의 성장에 큰 보탬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우리사회 곳곳의 위대한 시민들과 함께 세상을 바꿔나가는 데 매진하겠습니다. 시민이 주인인 세상, 시민이 만들어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6년 3월 29일

한경희통일·평화상 수상자 이요상

사진 : 권용동 주주통신원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이요상 주주통신원  yoyo04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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