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우리 동네 

캘리포니아에서 살기 시작한 지 어느덧 5개월이 되었다. 일도 나름 익숙해지고 사는 곳과 환경도 익숙해졌다. 나는 LA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Camarillo’라는 시골에서 산다. 이 지역을 선택한 이유는 첫째, 차로 10~15분이면 회사에 갈 수 있다. 둘째, 새로 개발된 지역이라 신축 빌라·개인주택·아파트가 많다.

우리가 선택한 집도 4년 전에 지어졌다. 모던하고 집도 깨끗해서 마음에 쏙 들었다. 남자친구와 나는 이 집을 보자마자 계약했다. 처음 같이 살아보는 집이고, 학생 신분을 벗어나 살아보는 첫 정식집이기도 해서 신이 나서  집을 꾸몄다. 세부 실내장식에 더욱 신경을 쓰면서...

내가 사는 타운하우스에는  공용시설이 많다. 수영장도 있고, 인터넷과 사무용 책상이 갖춰진 비즈니스실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공용 야외 페치카에서 불멍하며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내가 사는 타운하우스에는  공용시설이 많다. 수영장도 있고, 인터넷과 사무용 책상이 갖춰진 비즈니스실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공용 야외 페치카에서 불멍하며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바쁜 이사도 마치고... 집도 꾸미고 나니... 시골의 한적함과 조용함이 어느 순간 훅! 하고 느껴졌다. 산책하러 밖에 나가면 행인과 마주치는 일은 드물었다. 휑한 도로엔 가끔 마주치는 다람쥐, 도마뱀, 새만 있을 뿐이다. 저녁이 되면 동네는 깜깜하고 개들 짖는 소리만 들렸다.

한평생 북적북적한 도시에서 살아온 우리는 이런 조용함이 처음엔 좋다가 한 달 후엔 좀 무료하고 너무 적막하게 느껴졌다. 주변에 아는 지인도 한 명 없고 특히 가족도 없어 조용함이 더욱 외롭게 느껴졌던 것 같다. 우리는 젊었을 땐 역시 북적북적한 곳에 살아야 한다며 투덜거리면서, 임대계약만 끝나면 LA 근처로 이사하자고 합의했다.

도로에 나서도 지나가는 사람을 찾을 수 없다. 
도로에 나서도 지나가는 사람을 찾을 수 없다. 

이 집에서는 앞으로 9개월 더 살아야 한다. 계약을 1년으로 했고 그전에 계약을 파기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이왕 살아야 하는 것... 우리는 시골 생활의 단조로움을 달래기 위해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 시골을 좀 즐겨 보기로 했다. 사실 석·박사 과정을 하면서 취미라는 것을 가질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6시까지 일하고 집에 와서도 논문을 쓰거나 읽거나 데이터를 분석해야 했다.

우리 회사는 5시면 모두 칼퇴근이다. 저녁에 남는 시간이 정말 많다. 저녁 시간을 활용해 테니스를 배우기로 했다. 테니스는 라켓, 공, 그리고 코트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저렴하고 접근성 좋은 스포츠다. 우리 동네는 테니스 코트가 10분 거리마다 있다. 사람 없이 한적해 늘 사용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는 연중 350일 비가 오지 않고 날씨가 좋아 야외 스포츠를 하기에 딱 맞는 지역이다.

남자친구는 어렸을 때 테니스를 3개월 정도 배웠다. 어느 정도 기본기가 갖춰져 있다. 나는 완전 초짜다. 라켓 잡는 법, 공치는 법부터 차근차근 배웠다. 우리는 일주일에 3번, 퇴근 후 저녁을 먹고 한적한 테니스 코트에 가서 연습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참 재밌는 일이다. 공이 내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사방팔방 튀어도, 가끔 공이 라켓에 맞아 네트를 넘어가면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실력을 몸소 체험하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를 미친 듯이 돌듯 퇴근 후 저녁을 먹자마자 테니스 연습을 하러 나갔다. 저녁 공기는 정말 시원했고, 가끔 부엉~하고 부엉이 울음소리도 들렸다. 잠시 쉬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무수한 별들로 가득찬 저 우주공간에 멍~ 때리곤 했다.

테니스를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근처 테니스 클래스에 등록했다. 일주일에 한 번 강습 받는다. 클래스엔 60대 정도 아저씨 한 분, 40대 정도 부부, 나와 비슷한 또래인 북유럽에서 온 듯한 여자분 이렇게 6명이 있다. 기초반임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60대 아저씨가 6명 중 제일 잘 쳤다. 그다음은 기초반을 오래 다닌 40대 부부다. 마지막으로 북유럽 여자와 우리가 제일 못 쳤다. 그래도 클래스에서 모두 서로를 잘 쳤다고 응원해주어서 즐겁게 다니고 있다.

이렇게 테니스를 같이 배우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남자친구와도 한결 가까워졌다. 서로 같은 취미를 공유하고, 같이 배워나가고, 같이 즐기는 시간이 일종의 동료애(?)를 형성했다고나 할까. 테니스를 시작하고 나서 도시로 가자는 말이 쏙 들어갔다. 테니스를 어느 정도 배우고 나면 골프도 배우자며 캘리포니아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야외활동은 다 즐겨보기로 했다.

삶은 참 특이한 거 같다. 성공해야 행복할 것 같다가도, 화려하고 비싼 곳에서 살아야 행복할 것 같다가도, 소유해야 행복할 것 같다가도... 5만원짜리 라켓, 천 원짜리 공, 무료 테니스 코트 그리고 무엇보다 같이 테니스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행복하다.

밤에 들리는 부엉이 울음소리, 밤하늘 시원한 공기,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별들을 보면서 이런 행복감은 갑절로 늘어나곤 한다. 지금은 더 바라는 것도 없고 테니스만 잘 했으면 좋겠다. ㅎㅎ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이지산 주주  jeesanlee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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