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캘리포니아에 도착해서 숙소로 이동할 때 봤던 풍경은 아직도 생생하다. 산이라고 해야 할지 언덕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지형들이 쭉 펼쳐져 있었다. 푸른 풀 하나 없이 민둥산이었다. 풀이 마른 건지 아니면 나뭇가지만 있는 건지 멀리서 구별하기 어려웠다. 생명이 사라진 척박한 언덕 같았다. 한국에서 보던 키 큰 푸른 나무가 울창한 풍경과 너무도 달랐다. 만약 산에 사슴이나 산양이 걸어 다닌다면 한 번에 보일 정도로 산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고, 있더라도 낮게 자라는 선인장 혹은 풀만 있을 뿐이었다.

지난 10월의 캘리포니아
지난 10월의 캘리포니아

처음엔 이런 풍경이 너무나 신기했다. 마치 화성 혹은 다른 행성을 가면 볼 수 있을 것 같은 환경이 눈앞에 그것도 끝없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면서 남자친구한테 신이 나서

“우와~~ 여긴 산이 그냥 사막이네?? 아무것도 없어! 다 갈색이야!” 이러면서 1시간 동안이나 밖을 쳐다보았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나로선 휭 벗겨진 민둥산조차 멋있고 신비롭게 보였다.

지난 11월의 캘리포니아
지난 11월의 캘리포니아

실제로 이런 민둥산에 가면 낮게 자라는 선인장 그리고 메마른 풀과 나뭇가지가 있다. 처음엔 새로운 환경이 신비로워 등산하러 다니다가 계속 펼쳐지는 메마른 풍경에 재미를 잃었다. 그러다 12월 말에 한국에 2주 정도 갔다가 1월에 캘리포니아로 돌아왔다. 1월의 캘리포니아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1월의 캘리포니아
1월의 캘리포니아

산은 더 이상 민둥산이 아니었다. 푸르른 풀과 잎이 자라나 산은 마치 언제 척박했냐는 듯 초록색 옷을 입고 있었다. 산 곳곳에 심지어 꽃도 피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캘리포니아는 12월부터 길게는 2월까지 비가 종종 온다고 한다. 그렇게 내리는 비와 서늘한 날씨 덕분에 모든 생명체가 마치 우리나라 봄처럼 피어난다. 특히 올해는 지난 4년에 비해 비가 오는 날이 훨씬 많았다고 한다.

점점  짙푸르러지는 산
점점  짙푸르러지는 산

 

꽃이 피었어요.
꽃이 피었어요.
꽃이 피었어요.
꽃이 피었어요.

비가 오자 주위 사람들은 신이 났다. 그동안 비가 너무 안 와서 걱정이었는데 다행이라 했다. 비와 함께 산은 더욱 짙푸르고 울창해졌다. 매주 다르게 다양한 꽃들도 볼 수 있었다. 캘리포니아는 이런 날씨 때문에 사람들이 1월부터 5월까지 정신없이 등산하러 다닌다고 한다. 5월 이후부터는 날씨가 너무 더워 등산이 힘들어지니 지금 열심히 다녀야 한다고...

우리도 1월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집에서 차로 15분만 가면 Point Mugu 국립공원이 있다. 산길은 바로 옆에 해안가를 끼고 돌기 때문에 등산 내내 바다도 구경하면서 산행을 할 수 있다. 사실 산행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코스는 한국에 비해 정말 쉽다. 그다지 가파르지도 길지도 않다. 가볍게 갔다 오기 참 좋다.

Point Mugu 국립공원에서
Point Mugu 국립공원에서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산을 좋아하셔서 9~10시간 설악산, 지리산 코스를 돌았던 나로선 식은 죽 먹기였다. 또 미국에 오기 전까지 부모님을 따라 산행을 즐겼던 터라, 다시 산행을 시작하니 기분이 상쾌하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남자친구는 원래 등산에 취미가 없었다. 처음 산행을 시작할 때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계속 함께했다. 그러다 어느새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호흡도 고르게 하며 산행을 즐기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겼는지, 등산하다가 소리를 지르곤 한다. “내 인생 사랑해! 너무 재밌다!”

현대문명에 잠시 거리를 두고 자연 속에서 걷다 보면 많은 걱정거리가 사라진다. 엄마 품 안에 들어온 것처럼 마음이 편해지고 따듯해진다. 흙냄새, 숲 냄새, 살랑거리는 바람,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산 정상에서 먹는 귤은 오감을 완벽히 채워준다. 등산하며 남자친구와 주절주절 다양한 주제로 대화도 할 수 있어 사이도 더 돈독해지는 느낌이다.

드론으로 찍은 우리들 
드론으로 찍은 우리들 

등산에 취미를 들인 우리는 우연히 우리 회사에 등산모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등산모임은 한 달에 한 번 만난다. 다양한 팀원들이 모여 2~3시간 정도 되는 코스를 함께 한다. 어느 한 토요일 등산 코스 입구에서 팀원들을 만났다. 심장질환 쪽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4~5명으로 제일 많았고, 그다음으론 동물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팀원이 4~5명 되었다. 다들 나와 남자친구를 반가이 맞아주었고, 등산하며 각자 어떤 연구를 하는지 자연스레 교류할 수 있었다. 등산모임을 주최하신 Glen이란 분은 드론을 갖고 와서 단체 샷도 찍고, 풍경 샷도 찍었다.

사실 캘리포니아에 와서 아는 지인들이 없어 허전해서 그런지 한 달에 한 번 사람들과 모여 등산을 한다는 게 너무나 좋았다. 이렇게 좋은 걸 어떻게 혼자만 할 수 있을까? 나는 방방곡곡 등산모임을 회사 지인들한테 소문냈고, 우리 팀원들과 한국 국적의 직원들도 참여하기로 했다.

캘리포니아는 계절이 항상 여름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렇게 오해했었다. 인제 보니 캘리포니아도 다양한 날씨를 갖고 있다. 이에 따라 풍경도 변한다. 최근에 찾아온 푸르른 자연은 우리 모두를 신나게 했다. 사람들은 신선한 자연에 취해 절로 즐겁게 끌려다닌다. 이런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자연에 감사할 따름이다!

3월의 캘리포니아
3월의 캘리포니아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이지산 주주  jeesanlee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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