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에 숲과문화연구회에서 진행한 숲 탐방을 다녀왔다. 원주시 신림에 있는 성황림이다. 원주시 신림(神林)은 지명에 神자가 붙어서인지 ‘신기’가 넘치는 마을이 아닌가 싶다. 인구는 3,600명 정도이지만 절이 20개, 교회가 19개라고 하니 말이다. 그  유명한 용소막 성당도 신림에 있다.

그중에서 가장 신기 넘치는 곳이라면 신림면 성남리에 있는천연기념물 제93호인 '성황림'이라고 하겠다. 치악 8경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성황림과 금줄
성황림과 금줄

성황림(城隍林) 

치악산 국립공원 내에 있는 성황림(城隍林)은 성황신(城隍神)을 모시고 있는 숲이다. 성황신(城隍神)은 성황(城隍)을 지키는 신이다. 성황(도읍 城과 해자 隍)은 성과 성을 둘러 판 마른 못 즉 마을을 말한다. 따라서 성황신은 마을을 지키는 신이다.

치악산 밑에 살던 사람들은 치악산의 성황신을 마을 수호신으로 믿으며 성황신을 모신 신당(神堂)인, 성황당(서낭당)에서 제사를 지내왔다. 지난 100여 년 동안 매년 음력 4월 8일과 9월 9일 제사를 지냈다. 현재도 조촐하지만,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평소에는 단체가 아닌 개인은 성황림에 들어갈 수 없지만 제삿날에는 개인도 입장이 가능하다.

음력 4월 8일과 9월 9일은 일 년 중에서도 산이 가장 아름다울 때다. 신록이 숲을 덮을 때이고 단풍이 절정에 이를 때다. 성황림의 아름다움에 취해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지내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성황림이 푸르를 때 사진을 보면...  손 타지 않은 노거수들이 버티고 있어 신비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이 난다. 성황림은 신의 숲이라고 해서 나무를 잘 베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유난히 노거수들이 많다.  

푸르를 때의 성황림 (사진 출처 : 한겨레 신문 /http://ecotopia.hani.co.kr/?document_srl=70462&mid=media&m=0)
푸르를 때의 성황림 (사진 출처 : 한겨레 신문 /http://ecotopia.hani.co.kr/?document_srl=70462&mid=media&m=0)

그간 숲과 문화연구회는 창립 연도인 1992년 3월, 제1회 숲 탐방지로 성황림을 찾았다. 2010년 8월 제23차 IUFRO 서울 총회가 열릴 때는 연구회 주관 사전 행사 탐방지로 또 성황림을 찾았다. 이번이 세 번째 숲 탐방이다. 원주 신림의 성황림은 잘 보존된 마을원림으로  토속적  신앙과의 결합에서 그 의미가 높고, 경관도 수려하며, 생태학적으로도 그 가치가 높다고 한다.  

금줄을  두른 왼쪽 나무가 음나무, 오른쪽 나무가 전나무. 
금줄을  두른 왼쪽 나무가 음나무, 오른쪽 나무가 전나무. 

동양사상의 음양을 맞추기 위해 성황당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는 여서낭인 음나무가 성황당을 감싸듯 있다. 오른쪽에는 남서낭인 전나무가 하늘을 뚫을 기세로 버티고 있다. 음나무는 300년, 전나무는 200년 되었다고 한다. 두 나무를 신목이라고 하는데 성황림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중 하나라고 한다. 전나무는 몇 년 전 벼락을 맞았으나 죽지 않고 살아났다.  

제단 위에 상성황지신(上城隍之神)이라고 위패가 모셔져 있다. 이름처럼 이곳은 '상 성황'을 모신 곳이다. 그럼 반드시 '아래 성황'도 있어야 하는데... 맞다. 아래 성황당도 있었다. 아래 성황당이 있던 숲을 '수림지'라고 했다. 이 수림지도 천연기념물이었는데... 아쉽게도 1972년과 1990년 장마로 훼손되어 다 밀어버리고 공원과 주차장으로 만들었다. 소나무 몇 그루만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 고유한 문화를 밀어내고 공원과 주차장이라니... 그 가치가 비교될 것인가? 무엇이 그리 급해서... 아쉽고도 아쉽다.

아래 성황림 자리에 남아있는 소나무 몇 그루
아래 성황림 자리에 남아있는 소나무 몇 그루

성황당에서 오른쪽으로 작은 길을 가다 보면 소나무 숲이 나온다. 수령이 200년은 됐음 직한  노거수 소나무들이 즐비하다. 

푸르를 때의 소나무 숲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신문(http://ecotopia.hani.co.kr/?document_srl=70462&mid=media&m=0)
사진 출처 : 한겨레 신문(http://ecotopia.hani.co.kr/?document_srl=70462&mid=media&m=0)

너무 오래 살다 보니... 사람처럼 암에 걸린 나무도 있다. 그래도 나무는 이겨내고 또 살아간다.

암에 걸린 나무 
암에 걸린 나무 

3월에 볼 수 있는 꽃은 많지 않다. 하지만 나도 보았다. 바로 얼음을 뚫고 나와 핀다는 얼음새꽃 '복수초'다. 성황당 바로 왼편과 뒷편에 복수초 군락이 있었다. 얼음은 뚫고 나왔으나 아직 꽃잎을 다 열지 못한 복수초가 많은 걸 보니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활짝 핀 한 송이라도 봤으니... 운이 좋다.  

복수초
복수초

꽃 대신 꽃 같이 예쁜  도토리나무 싹도 만났다. 봉긋 벌어진 입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나 지금 태어났다고... 잘 살아볼 거라고... 그리 말하고 있을까? 

도토리나무 싹
도토리나무 싹

마지막으로 만난 둥근털제비꽃이다.  전국의 산 숲 속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연보라색 꽃잎에 잎은 둥글고 전체적으로 털이 많아 '둥근털제비꽃'이란 이름이 붙었다. 보통 4~5월에 피는 꽃이라는데 어찌하여 너는 3월 중순에 피었니?  

둥근털제비꽃 
둥근털제비꽃 

 

성황림 구경을 다 했으면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용소막 성당도 방문하면 좋지 않을까 한다.

용소막성당

신림면 용암리에는 1915년 지어진 용소막성당이 있다. 백 년이 넘은 용소막성당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6호이며, 원주 8경 중 7경이라 하니 가볼 만하다. 명동성당과 같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규모가 훨씬 작고 아담한 성당이다.  

용소막 성당과 세월을 같이 한 노거수 느티나무. 
용소막 성당과 세월을 같이 한 노거수 느티나무.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온 천주교 신자들이 용소막 주변으로 모여 살면서 교우촌이 만들어졌다. 30년 후 1898년 교우들이 초가집 공소를 지었다. 1913년 기요 신부가 새 양옥 성당 건립 계획을 세우고 착공한 지 3년 만인 1915년 100평 규모의 붉은 벽돌 성당이 완공되었다. 

왼쪽 시계방향으로 성당의 전면, 성당 옆, 성당 출입문 안쪽 모습
왼쪽 시계방향으로 성당의 전면, 성당 옆, 성당 출입문 안쪽 모습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이 어우러지면서 군더더기 없이 정갈하고 단아한 모습이다. 

성당 내부도 깔끔하다. 제대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과하지 않고 은은해서 작은 성당과 잘 어울린다. 

사제관 
사제관 

성당 옆 언덕에 지어진 사제관도 성당하고 잘 어울린다. 사제관은 6.25 전쟁 시 파괴되었다가 1952년 복구되었다. 다행히 성당은 6.25 전쟁에도 제 모습을 거의 다치지 않았다고 한다. 

성모상
성모상

성모상은 매우 초라하고 허름하다. 전체적으로 성당과 사제관에서 사용한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로 제단을 마감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용소막 성당을 둘러보았으면 주변에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배론 성지도 방문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배론 성지는 천주교 신자들이 많이 찾는 성지다. 유적으로는 조선 후기 천주교도 황사영이 머무르며 ‘백서’를 썼던 토굴과 성 요셉 신학교, 최양업 신부 묘가 있다. 성지를 아름답게 가꾸어 놓아 산책하기도 좋다. 장애인들이 가꾸는 허브하우스를 방문하여 풀이 크게 자라 나무가 되어버린 허브 나무도 흔들어 그 향을 한껏 들이마시다 와도 좋지 않을까 한다.

* 참고 자료 : 마을숲-숲이 정신을 지배한다 (숲과문화연구회 제작 소책자 / 2023년 3월 18일 배포)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