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30일 설악산에 눈이 내렸다. 지난 5월 1~2일에는 지리산 천왕봉과 노고단에 강풍을 동반한 눈이 내렸다는 소식도 들린다. 4월과 5월에 눈이 오다니.... 기상청은 저기압이 동반한 한기일 뿐 이상기후는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좀 신기하다. 

국립공원공단 설악산국립공원 사무소 제공(사진 출처 : 2021년 4월 30일 인터넷 한겨레)
국립공원공단 설악산국립공원 사무소 제공(사진 출처 : 2021년 4월 30일 인터넷 한겨레)

지난 4월 17일에는 치악산에도 눈이 왔다. 돌풍도 불고, 우박도 내렸다. 이렇게 날씨가 평소와 다르면  '기후위기'가 저절로 생각난다. 아니 기후위기가 아니라 이젠 '기후비상사태'라지... 

4월 17일 일기예보는 오후 치악산에 비 올 확률이 60% 넘었다고 알려줬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지만 치악산 부곡계곡이 너무 좋았는지.. 이번에는 치악산 영원산성과 상원사를 가보자고 한다. 코스는 금대분소에서 영원사, 영원산성을 지나 남대봉에 갔다가 상원사를 거쳐 다시 영원사, 금대분소로 내려오는 길이다. 거리는 총 11.4km, 시간은 넉넉잡아 6시간이다.  

이미지 출처 : 치악산 국립공원
이미지 출처 : 치악산 국립공원

금대분소 입구에서 영원사까지 가는 길은 그야말로 꽃잔치 길이다.  꽃구경에 정신이 팔려 전체 산행시간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시간을 엄청 흘려보냈다. 

'매화말발도리'다. 말발도리는 열매가 말발굽에 끼는 편자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말발도리는 5~6월에 흰 꽃이 피는데 매화말발도리는 4월에 꽃이 피어 매화란 단어가 앞에 붙었다. 흰 꽃에 달린 노랑 술이 참 예쁘다. 암술이 3~4개, 수술은 10개라고 하는데 내 눈엔 최소 20개는 되어 보인다. 한국 특산종으로 바위에 붙어사는 암생식물이다. 가지가 꺾일 때 댕강 소리가 나서 ‘댕강목’이라고도 한다. 웃음이 나는 재미난 이름이다.  

'미나리냉이'는 이제 막 꽃잎을 열기 시작했다. 잎은 미나리를 닮았고 꽃은 냉이를 닮아 미나리냉이가 되었다. 냉이처럼 어린 순은 식용할 수 있는 흔한 꽃이다. 미나리냉이는 키도 1m로 크고, 줄기도 단단하게 올라오고, 하얀 꽃도 무리로 깨끗하게 피어 이름은 냉이지만 식용보다는 보기에 아름다운 꽃이다.

5월에 연분홍 꽃이 피는 '줄딸기'가 드문드문 보인다. 막 피기 시작해서 그런지 색이 참 곱다. 우리나라 산과 들에 흔하게 자라는 줄딸기는 줄기가 옆으로 뻗는다고 해서 줄딸기라고도 부르고, 덩굴지어 자란다 해서 덩굴딸기라고도 부른다. 7~8월에 붉게 익는 열매는 먹을 수 있다. 

왼쪽은 '피나물' 오른쪽은 '애기똥풀'.
왼쪽은 '피나물' 오른쪽은 '애기똥풀'.

'피나물'은 줄기를 자르면 붉은 즙이 나와서 피나물이 되었다. 나물이 붙었지만 독성이 강한 식물이라 먹지 않은 것이 좋다. 양귀비과에 속해 꽃빛깔이 화려하다.

똥이나 오줌이 들어간 이름을 가진 식물이 있다. ‘쥐똥나무’, ‘똥나무(돈나무)’, ‘개똥나무(누리장나무’), ‘노루오줌’, ‘쥐오줌풀’, ‘여우오줌’, ‘말오줌나무’ 등이다. 나는 이 이름들이 아주 못마땅하다. 이름에 배설물을 넣는 건 식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애기똥풀’은 그렇지 않다. 듣기만 해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줄기를 꺾으면 애기 똥 같이 누런 즙이 나와 이름 붙은 애기똥풀은 꽃빛깔도 진노랑으로 애기 똥 색 같다. 그래도 예쁘다. 애기똥풀 꽃말이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란다.

영원사 입구에서 만난 '광대수염'이다. 꽃은 4~6월에 핀다고 한다. 재작년 6월 태백산 금대봉에 갔을 때 만났는데, 치악산에서는 4월에 피었다. 보송보송한 솜털이 유난히 많고 꽃잎이 고부라지지 않은 것을 보니 아직 덜 여문 아기 광대수염인가 보다.   

영원사 대웅전과 마주보는 산 
영원사 대웅전과 마주보는 산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영원산성을 수호하기 위해 창건했다는 영원사는  자리가 정말 좋다. 대웅전 앞마당이 아주 넓고 그 마당에서 보는 앞 산세가 확 뚫려 시원하다. 어쩜 이리 좋은 자리에 자릴 잡았을까? 

냉이꽃, 꽃마리, 꽃다지
냉이꽃, 꽃마리, 꽃다지

본격적으로 산성에 올라가기 전 만난 흔한 꽃들이다. 너무 작아 지나치기 쉬운 꽃이지만 자세히 들어다보면 정말 앙증맞게 귀엽다. '꽃마리'는 연분홍빛 도는 꽃망울도 참 예쁘다. 너무 작고 흔해 쉽게 잊힐까 두려웠을까~ 꽃마리 꽃말이 '나를 잊지 마세요'다. '꽃다지'는 꽃이 다닥다닥 붙어 핀 모습에서 꽃다지가 되었다고 한다. 향도 맛도 좋아 냉이처럼 무쳐먹기도 하고 국을 끓여 먹기도 한다. 꽃다지는 꽃이 노랗고 작아 '코딱지나물'이라고도 한다. '코딱지'라니... 얼마나 하찮게 보았으면... 작지만 얼마나 예쁜지 들여다보지 않은 모양이다.  

영원산성은 원주가 자랑하는 원주 8경 중 하나다. 돌로 쌓은 산성으로 쌓은 시기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신라 말에 쌓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려 때 몽골의 일족인 합단적과 싸워 물리친 기록이 있고, 조선 임진왜란 때는 관군과 주민들이 왜군과 끝까지 싸우다 함락되어 수많은 목숨을 잃기도 했던 산성이라 한다. 

산성 길 초입에서 만난 '알록제비꽃'이다. 해발 300~1,000m 중간 산지에서 자란다. 지난 불곡산 산행 시 만난 '자주알록제비꽃'과 비슷하지만 잎맥을 따라 흰 줄무늬가 더 뚜렷하고 색은 연자줏빛이다. 색이 너무 고와 키우고 싶은 꽃이지만, 제비꽃을 파는 곳은 못 봤다. 제비꽃은 화분에선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전체 산성 길이는 약 2.4km이지만 우리는 영원산성 삼거리까지 약 1.5km 정도만 걷고 남대봉 방향으로 틀기로 했다. 그런데 초반에는 좀 편안한 길로 시작되지만, 점점 갈수록 경사가 심해지고, 높은 층계도 많아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가는 내가 아주 가기 싫어하는 길이었다.

높이가 30cm 이상 되는 층계가 멀리까지 이어진다. 되도록 층계 옆길로 올라가다가 정 발 딛을 곳이 없으면 층계를 탔는데 정말 힘들었다.  

영원산성 초입 안내도에 영원산성 삼거리 전 약 0.5km가 어려운 길로 나온다. 딱 그렇다. 빙 돌아 최종 하산 길로 정한 상원사에서 영원사 가는 길은 아주 어려운 길이란 표시가 되어 있다. 굵은 검정 줄이다. 좀 걱정이 된다.

영원산성 삼거리에서 남대봉으로 가는 길은 능선을 타는 길이라 시원하고 멋지다. 멀리 향로봉이 보인다.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한다.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다.  

중간에 종주능선전망대도 나온다. 전망대에서는 남대봉이 보인다.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남대봉을 향해 가는데 돌풍이 불고 우박이 우두둑 내리기 시작한다. 

4월 우박에 큰개별꽃잎이 무척 아팠을 것 같다. 상처 입은 꽃잎도 보인다. 놀란 꽃눈이 눈을 더 동그랗게 뜬 것 같다.   

남대봉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다. 눈발이 세지고 있다. 남대봉에서 느긋하게 차도 마시고 김밥도 먹으려 했는데... 배고픈 것이 다 뭐냐... 얼른 발길를 재촉했다. 일단 상원사로 가서 상원사 스님께 상원사에서 영원사로 가는 길 상태를 여쭙고 하산 길을 정하기로 했다. 

바람이 세차 눈발이 휘날린다. 멋지다.   

조릿대도 눈을 듬뿍 맞았다. 한겨울 같으면 별 것도 아니겠지만... 4월에 내린 눈이라서 그런지 색다른 느낌이다. 

양지꽃이 우박과 눈 속에 폭 파묻혔다. 얼마나 놀랐을까?  

원주 8경 중 하나라는 상원사가 이렇게 멋진 절이구나.... 바위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소나무가 범종각을 지켜주고 있다.   

상원사 경내에서 만난 '빈카'도 눈을 맞았다. 빈카는 유럽중남부 지역이 원산지인데.. 어찌 깊은 산골에 있는 상원사까지 날아왔을꼬... 

상원사 스님께서는 상원사에서 영원사로 가는 길은 전문산악인이나 다니는 아주 험한 길이라고 하셨다. 더군다나 눈도 왔고 시간도 늦었다며 상원사에서 5.2km 내려가면 성남탐방지원센터가 나오니 그리 가라고 권하신다. 보살님은 상원사에서 2.6km만 내려가면 상원골 주차장이 나오는데 거기까지 택시가 온다고 하셨다. 절 신도들을 위해 단골로 다닌다는 택시기사님 전화번호까지 주신다. 우리는 상원사에서 영원사 가는 길을 포기하고 상원골 주차장으로 향했다.

택시기사님과 약속한 시간에 늦지 않게 내려가는데... 이게 웬일.... 상원골 계곡이 너무 멋져 자꾸 발걸음이 멈춰진다. 요기조기 숨어있는 작은 폭포들이 정말 아름답다.

나이아가라 폭포만큼 멋지다고 하면 과장이라 하겠지? 

이 폭포는 마치 계곡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선녀의 옷자락 같다. 다음에 다시 와 천천히 상원골을 둘러봐야겠다. 급히 내려가느라 상원사 부처님께 절도 올리지 못했는데 다음엔 정성껏 절도 해볼 참이다. 무사히 내려가게 안내해주신 스님께... 보살님께 감사의 인사도 할겸...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김미경 부에디터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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