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치마, 올괴불나무 꽃, 가는잎그늘사초, 호랑버들

지난 3월 마지막 토요일, 비가 온다는데 또 산에 가잔다. 이번엔 치악산이다. 한국에는 3대 ‘악산’이 있다. 설악산(雪嶽山), 월악산(月岳山), 치악산(雉岳山)이다. ‘악’자 한자는 다르지만 다 큰 산이라는 뜻이다. 큰 바위가 많은 산이란 의미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중 치악산은 ’치가 떨리고 악에 받쳐 가는 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어쩜 그리 딱 맞게 지었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30년 전쯤 구룡사에서 출발해서 급경사 코스인 사다리병창을 지나 비로봉에 올라간 적이 있다. 어찌나 힘에 부치던지…. 너무 힘들게 올라가서 그랬을까? 정상도 별 매력이 없었다. 치악산 자랑쟁이들이 들으면 질색할 말이겠지만. 그다음부터 치악산에 가자고 하면 고개부터 저었다.

우리가 다녀온 코스 (사진 출처 : 치악산 국립공원)
우리가 다녀온 코스 (사진 출처 : 치악산 국립공원)

서울에서 차로 2시간 넘게 걸리는 치악산은 서쪽으로는 원주시, 동쪽으로는 횡성군과 접해있다. 1984년 16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이다. 주봉인 비로봉(1,288m)을 비롯하여 1,000m가 넘는 봉우리가 많고 계곡들도 가팔라서 험하기로 유명하다. 이젠 그렇게 험한 코스는 가고 싶지 않다. 우리는 횡성 강림면에 있는 부곡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했다. 치악산에서 가장 쉬운 코스다. 치악산 비경이라 하는 부곡계곡을 지나 곧은재를 거쳐 항로봉까지만 왕복 약 10km 걷기로 했다. 입산이 허용된 지역이다.

부곡폭포
부곡폭포

부곡계곡은 완만하고 아기자기한 계곡이다. 곧은재로 가는 길은 3km 이상 부곡계곡을 끼고 간다. 부곡폭포도 만나고 이름 없는 작은 폭포도 만나면서 졸졸졸 계곡 물소리를 듣고 가는 길은 평화롭고 정겹다.

길 양 옆으로 조릿대가 이어지는 좁은 길, 때묻지 않은 작은 폭포들, 아직도 생생하게 제 색을 갖고 있는 지난 가을 낙엽이 깔린 길은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은 길이라 그런지 더욱 자연 그대로다.    

드디어 나도 만났다. 그 유명한 처녀치마

곧은재를 1km 정도 남기고 길 옆에서 처녀치마를 만났다. 몽우리가 막 올라온 처녀치마, 방금 꽃봉오리를 연 처녀치마 그리고 활짝 핀 처녀치마까지... 골고루 만났다. 연자줏빛 꽃색이 얼마나 고운지 직접 보지 않으면 모른다. 

3월이 되면 생강나무와 같이 산에서 가장 먼저 꽃이 피는 올괴불나무도 만났다. 잎이 달리기 전 꽃이 핀다.  작은 키 나무이기에  큰 나무에 잎이 달려  햇빛을 가리기 전  일찍 일찍 깨서 움직인다. 누가 키 작음이 서럽다 했더냐? 너는 너를 극복한 부지런쟁이로다. 4월이 되면 꽃은 지고 열매가 달린다. 5월이 되면 열매는 붉게 익는다. 

올괴불나무 
올괴불나무 

곧은재를 지나 향로봉 가는 길에 '가는잎그늘사초'도 만났다. 사초속 식물은 전 세계 2,000종이 넘고, 그중 한국 자생 사초속 식물만도 150여 종 가량 된다고 한다. 가는잎그늘사초는 건조한 풀밭이나 산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아주 흔한 식물인데 꽃은 처음 보았다. 아니 처음 본 것이 아니라 그동안 관심 있게 보지 않은 거겠지. 꽃은 3~5월에 핀다. 뿌리에서 새순을 일으켜 세운 까만 꽃싸개는 때가 오면 꽁꽁 숨겨놓은 꽃을 노란 폭죽처럼 터트린다.

가는잎그늘사초 
가는잎그늘사초 

향로봉에 도착했는데 비가 마구 뿌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펴기 힘들 정도로 바람도 세차다.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려 했는데 궁상맞게 되었다. 향로봉 삼거리로 내려와 바람이 덜 거센 보문사 방향 층계에 앉아 김밥을 먹었다올라오는 이 아무도 없는 층계에 앉아 우산으로 비를 가리고 먹는 김밥이 꿀맛이다. 우산으로 만든 그 작은 공간이 아늑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치악산 꼭대기에 잠시 만들어진 보금자리다.    

향로봉에서 내려다 본 원주
향로봉에서 내려다 본 원주

올라갈 때는 만나지 못했던 처녀치마 군락을 내려오면서 만났다. 세상에나... 20 개체 이상 모여 살고 있었다. 비에 젖어 파르르 물방울을 달고 있는 처녀치마가 애처로워 보이지만 처녀치마는 무척 강인한 녀석이다. 엄동설한을 이겨낸, 치마같이 둥글게 퍼진 묵은 잎에서... 꽃대가 올라와 꽃을 피운다. 꽃이 지면 새 잎이 올라온다. 저 푸른 잎이 동물들 겨울 먹잇감이 되지 않고 살아남은 것만도 기특한데 저리 아름다운 꽃까지 피워 올리니... 그 생명력에 엄지가 척 올라간다. 

노란 밤송이 같은 꽃은 뭘까호랑버들이다이름 그대로 버드나무과 버드나무속 식물이다. 버드나무 꽃을 버들강아지라고 부르는데 그럼 이 꽃은 호랑버들강아지다. 이 꽃 역시 봄을 알려주는 꽃이다. 버드나무 꽃이란 말의 '버들개지'가 버들강아지로 바뀐 것 같은데... 강아지 솜털같이 보송보송해서 그리 바뀐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귀엽고 사랑스러워 쓰다듬어주고 싶은 꽃이다. 

이밖에 아직 활짝 피지 못한 산괴불주머니도 만났고 금괭이눈도 만났다. 바야흐로 모진 겨울을 이겨낸 꽃들의 세상... 봄이다.   

산괴불주머니와 금괭이눈
산괴불주머니와 금괭이눈

처녀치마 군락을 만나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또 꽃이 어디 없나 하고 두리번거리며 한눈을 팔다 넘어졌다. 왼발이 돌부리에 걸렸는데 ‘어 넘어진다’ 하는 순간 손으로 땅을 짚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순식간에 몸이 먼저 나가떨어졌다. 왼쪽 얼굴을 땅바닥에 딱 하고 찧었다. 별이 번쩍 보이고 눈물이 찔끔 나왔다. 왼쪽 광대뼈가 부서졌나 생각했다. 다행히 돌이 아니라 흙에 찧어서 뼈는 안 부서졌지만 묻은 흙을 털어낼 수 없을 정도로 왼쪽 광대뼈가 심하게 아팠다. 며칠 지나서야 붓기도 빠지고 아픔이 가셨다. 이제 순발력이 떨어질 때도 되었다. 꽃에 너무 정신 팔고 다니지 말라는 따끔한 경고다. 아무리 쉬운 길이라도 산에서는 조심 또 조심!!!! 

국립공원 입산통제를 알려주는 곳은 http://www.knps.or.kr/portal/main.do 다.  이 사이트 아래 실시간 탐방통제정보에서 가고 싶은 산을 클릭하면 된다. 주황색으로 표시된 산이 통제를 실시하는 곳이다.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김미경 부에디터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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