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게 직접 말씀하신 내용은,
도착 하루 전 700미터를 등반하다시피 올라서 다람살라 시내에 접어들었다. 시내에서부터 티베트망명정부이자 다람살라 성전까지는 고도차가 300미터다. 가파르지만 가슴이 설레는 길이다.
혹자는 비판한다. 윤회라는 것은 진정한 불교사상이 아닌 힌두사상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므로 윤회에 의해 불교의 대표자로 내려온 달라이라마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 유래가 진실이든 아니든 확실한 것 하나는 그가 온 생애를 통해 해온 언행과 행적이 인류에게 빛을 주었다는 것. 그는 신화적인 내용을 거부하며 과학적인 논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자신도 어떤 특별한 신화 같은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일개 불교 수행자로서 여긴다. 그의 가르침 또한 무조건 믿는 방식의 믿음보다는 공부, 수행, 논리, 자비를 강조한다. 봉사와 친절 그리고 수행으로 일관한 그의 생애는 그 자체로 인류에게 영감을 준다. 각 나라의 모든 불자가 그를 존경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오랜 기간에 걸쳐 한국의 불자들이 달라이라마 존자를 한국에 모시려고 했지만 이런 저런 정치적 이유로 성사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도 존자께서는 한국을 티베트의 형제 나라라고 여긴다. 이번에 티베트 망명정부와 함께하는 티베트 주민들의 모습을 보니, 과연 한국인과 판박이다.
2018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때에는 영상을 통해 "다가올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남북 양국 간의 신뢰 구축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노력은 전 세계 평화와 비핵화에 큰 본보기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덕담 메시지를 전달하신 적도 있다.
가파른 등정 끝에 이윽고 다람살라 성전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서울을 떠난 지 근 2년 만에, 5천 킬로미터를 걸은 후 도착한 것이다. 되돌아보니 감개무량하다.
2019년 2월25일 아침 일찍 무심거사(이상훈 수원대 前교수)와 함께 성전에 가서 대기했다. 기념비적인 날이다. 그저께까지 며칠 동안 큰 법회가 이루어진 직후여서 달라이라마 성하께서는 많은 사람을 친견하셨다. 여든 중반을 지나고 있음에도 성하께서는 찾아오는 모든 이를 보듬어 주신다. 필자는 사무국의 배려로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뒷차례에 대기하였다. 이윽고 필자의 차례가 왔다.
필자가 성하에게 절을 한다. 삼배를 올려야 하건만 주위 사람들이 머리맡에 경배드리는 것으로 제한시킨다. 성하께서 필자의 손을 잡아주신다. 필자가 준비한 내용을 필자가 한국어로 말씀드리고 영어문서로 보여드리고, 지애 보살이 티베트어로 보충 설명한다.
달라이라마 성하께 드리는 말씀
전 세계인에게 자비와 평화를 전파하시는 달라이라마 성하께 진심으로 존경의 인사를 올립니다. 저는 한국의 한 사람의 대학교수로서 2017년 5월 부처님오신날에 서울을 출발하여, 일본, 대만, 홍콩,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그리고 네팔을 포함한 인도 코스를 걸어왔습니다. 거리는 약 5,000km입니다.
원전은 지진 때문에 핵무기보다 위험합니다. 핵폐기물은 후손의 희생을 강요합니다. 후쿠시마 사고가 난 지 8년이 지나고 있지만 UN은 속수무책입니다. 원전을 대신하는 다른 대안이 있음에도 방관하고 있습니다.
지구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가정에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듯이 어머니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새로운 UN'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두다리로 걷듯이 말입니다. 세계의 종교 지도자의 뜻을 모으면 지구를 다른 차원에서 보호하는 장치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직접 전하고 싶었습니다.
지난 3년간 여러 사람의 힘을 모아 그러한 뜻을 담은 '지구생명헌장2018서울안'을 준비하였습니다. 이 헌장에는 1982년의 유엔 세계자연헌장 그리고 2000년의 지구헌장의 취지를 계승하면서 생명의 존엄성과 핵을 폐기하자는 내용, 그리고 종교 지도자께 드리는 제언을 담았습니다.
달라이라마 성하께 올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계속 걸어가서 가톨릭 프란치스코 로마 교황께 전하고자 합니다. 달라이라마 성하께서 지구촌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에 뜻을 함께하시고 그 뜻을 널리 알리신다면 지구촌에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지구생명헌장2018서울안'을 영어로 번역한 족자도 드렸다. 생명탈랙실크로드[32] 편에 이 족자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와 있다.
생명탈핵실크로드[32] '지구생명헌장2018서울안'이 완성되다
달라이라마 존자께서 필자가 말씀드리는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셨다. 그러고는 말씀하신다.
"여러 나라를 걸어온 이야기와 '또 다른 새로운 UN'에 관한 내용과 앞으로 필자가 바티칸까지 걸어가서 이 내용과 헌장을 전달할 예정이라는 내용을 이해한다. 원전의 위험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후쿠시마 사고 후 이재민을 위로하러 일본을 방문했을 때 탈원전 운동하는 분들을 만났다. 그들과 함께, 한국과 일본이 함께 탈원전의 운동을 하면 좋겠다."
존자께서는 2011년 11월 6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위로하기 위해 직접 후쿠시마현에 갔었다. 주변에서 건강과 노령의 나이(당시 76세)를 걱정해 만류했지만, 종교 지도자로서 그들을 만나고 희망을 주는 것은 의무라며 가기로 결정했다.
달라이라마 성하의 배려와 말씀에 깊은 감사를 올린다. 통역을 해주신 지애보살님과 사진을 찍어 주신 성전 사무국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오늘의 뜻깊은 '친견'을 위해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보살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린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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