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향림마을에 김수현님이 오셨습니다

변덕스러운 봄의 한가운데입니다. 어제도 춥더니 오늘은 더 추워졌어요. 겨울이라도 오는 걸까요? 기후변화를 실감하게 하는 날씨는 가끔 저를 질책하는 것도 같아요. 이대로 살아도 되는지, 자주 멈추어 생각하게 됩니다.

 

향림마을 못에 노랑붓꽃이 성큼성큼 자라나고 있어요. 머지않아 노랑 꽃잎을 실컷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산책하다 홀로 길을 걷는 청둥오리를 바라보아요. 나처럼 혼자인 청둥오리가 못에 들어가서는 저의 눈을 바라보는 것 같아 말을 건네봅니다. (대화 내용은 비밀!) 관심이 생기는지 눈을 맞춰주는 친구가 반갑네요.

 

지난주 은평구청에서 보내준 상자 텃밭이 도착했습니다.  좁은 집에 두기 어렵고 옥상을 오르내리기에도 관심을 쏟기 힘들 것같아 빌라 출입구 옆에 두기로 결심하였어요. 그리고 협조문을 써 보았습니다.  상자 텃밭을 내놓은 날 바로 비가 조금 내렸어요.

한살림 토종 씨앗을 나눔 받아서 씨앗들을 갖고 있었지만, 이웃집 아저씨 친구분의 양주 텃밭에 심을지, 함양 친구의 밭에 심을지 고민이 되더라구요.  결국 향림도시농업체험원 58번 텃밭(저는 2년째 낙방, 동네 친구는 2년째 당첨^^)에 심은 부추 씨앗을 뿌리고, 상추 모종을 세 포기만 심어보았어요. 상추를 아주 많이 먹지는 않는 편이고, 58번 텃밭에 이미 받은 모종 열댓 포기가 있었거든요.

 

'부추 씨앗을 뿌렸어요!'라고 팻말을 세울까, '누구나 필요한 만큼 수확해도 좋은 텃밭'이라고 안내할까 잠깐씩 생각이 스치기도 했습니다. 그날의 일과를 마치고 늦은 저녁 귀가했을 때 저는 저의 눈을 의심했어요! 상추 모종이 빽빽하게 상자 텃밭을 채우고 있었거든요. 처음에 든 생각은,

'이럴 줄 알았어! 근데 나 상추 안 좋아하는데... ... 부추 씨앗들이 고군분투하겠군!'

그다음에 든 생각은, 누구일까 궁금해졌지요. 며칠 전 사귄 옆 라인에 사는 아주머니는 집 앞 밭에서 들깨 모종을 뽑아가도 된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추가 선물인지 궁금해졌어요. 아니면 앞집 아주머니실까, 캣맘님은 아닐까 혼자 상상해보았지요.

자전거를 타고 가까운 길고양이 급식소에 가서 밥을 부어주다 자주 인사 나누는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고양이가 밥을 먹는 모습을 같이 흐뭇하게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말씀하시네요. 

"그거 봤어? 내가 심은 거야."

아저씨는 해사하게 웃으셨어요. 함박웃음이랄까 그 표정을 보고 저의 본심을 말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가 될 것임을 깨달았죠. 

"어이구 아저씨가 심으셨어요? 난 또... (양손, 바닥을 보여 펼치면서) 마법인 건가!! 아니면... 상추가 그사이에 새끼를 쳤나?! 했죠~"

 

웃는 눈매가 가늘어지면서 만족한 표정의 아저씨께서는 말씀하셨어요. 새끼 친 거라며 웃음지으며 멀어져가는, 사랑스러운 이 마을의 이웃.  이런 마음들, 이런 마음 씀씀이가 너무 귀하게 느껴져서 한 주간 글을 쓰고 싶어 온몸이 근질근질했답니다.

글이 늦어진 이유가 있어요. 향림마을 저의 집에 새 식구가 이사 왔거든요. 한겨레 충남 서천의 오랜 독자, 한겨레 신문의 열렬한 지지자인 저의 아버지 김수현 님을 소개합니다.  김수현님과  배롱터(향림도시농업체험원)와 배롱숲(향림근린공원) 거닐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저도 기대되어요. 저의 사랑이자  든든하고 멋진 친구이기도 한 김수현님의 회춘 프로젝트도 가미될 예정입니다.

 

김수현님과 마을 길을 걷다가 '상추아저씨'를 만났어요. 아버지보다 넉넉히 열댓 살은 젊게 보았던 아저씨, 무려 네 살이나 많다고 하시네요. 우리의 김수현님 마음에 일어난 충격과 파동은 우선 생략하겠습니다. 

오전에 피톤치드를 받아들이며 맨발로 숲을 걷고 있어요. 이웃들과 눈을 맞추며 대화나누고  자주 웃다 보면 어느덧 상추아저씨를 능가하는 청춘에 가까워지실 거라 믿어요. 

 

배롱숲을 걸으며 만난 이웃들의 마음과 감동은 다음에 전할게요. 언제나 멈추어 생각하고 제때 쉬면서 연결되는 감각과 함께 평온하시기를 바랍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백정은 주주  baerong5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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