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둥오리 새끼들을 바라보는 마음

 향림도시농업체험원의 봄
 향림도시농업체험원의 봄

사랑하고 있다는 감각. 사랑의 감각 하나로 이 세상 헤쳐 나갈 힘을 얻는다. 요즘의 난 오랜 공백을 뚫고 사랑을 진하게 하고 싶다는 감정을 마주한다. 대놓고 말하기에는 왠지 껄끄러워 우주의 모든 신을 향하여 은밀하게 기도드린다. 깊이 사랑하게 해주세요.(사랑의 유형은 다양하다!) 뜨거운 연애의 계절이다. 향림마을 도시농업체험원의 밤, 오늘도 개구리들이 목청 모아 진귀한 소리를 들려준다. 내 귀가 듣는다. 6월마다 한결같은 부지런함이다.

     또렷하게 말하는 편, 모리
     또렷하게 말하는 편, 모리

소중한 동네 고양이 안나와 모리, 하나 트리오. 멋진 사진 담아주고 싶은데 우리가 더 가까워져야 가능한 일이 될 거다. 그래도 모리의 목소리를 알아듣게 되어 약간 흥분 상태다. 어제 아침 모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집안인 듯 밖인 듯 분간이 어려웠으나 이내 알았다. 창밖에서 모리가 날 불렀을까. 혼잣말로 ‘모리야 나한테 말하는 거야?’ 묻는다. 목소리를 알아듣는 고양이 한 분 더 알게 되어 반갑다.

                                                                                            쑥갓 꽃 피었습니다
      쑥갓 꽃 피었습니다
                                                                                흐드러지게 핀 열무꽃과 쑥갓꽃
       흐드러지게 핀 열무꽃과 쑥갓꽃

향림도시농업체험원 텃밭에 갖가지 꽃이 피었다. 이름 모를 들풀들의 향연도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텃밭 곳곳에 열무‘꽃’과 쑥갓‘꽃’이 핀 것을 알고는 웃음이 나왔다. 나의 경우 쑥갓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 내버려 둔 것인데, 다른 밭을 일구는 이웃들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그야말로 활짝 핀 것이다!

요즘은 기운이 달리는 편이고 고요가 좋아서 오며 가며 마주치게 되는 이웃과 길게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이 아직 익숙지 않은 나는, 에너지 충전 중) 냉랭해 보일까 봐 신경 쓰던 예전의 내 모습은 없다. 흔쾌히 말 건네고 싶을 때 말을 하고 눈을 맞추도록!

향림도시농업체험원에는 다섯 개의 못이 있다. 작은 논도 있어 찾아오는 새들이 종종 있다. 청둥오리는 주로 한 쌍이 찾아와 분주히 몸을 움직인다. 왜가리는 늘 혼자인데 몸짓이 과하게 느렸다. 신기하게도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5미터 앞에 사람이 있어도 의식하는 기색 없이 자신만의 삶의 방식이 있다는 듯 사냥감에 집중한다.

    3월의 왜가리 모습, 5월에도 당신이었나요?

하루는 김수현 님과 텃밭에 다녀오다 진기한 풍경을 보았다. 마치 이 마을 향림마을의 주민이라는 듯이 하던 행동을 계속하는 모습. 못에서 나와 흙길을 걷는 왜가리가 길고양이처럼 친숙하게 여겨져서 동네친구 늘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마음이 배부른 오후가 있었다. 요즘도 가끔 못을 바라보며 김수현 님과 왜가리는 어디서 무엇을 할까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랜다.

5월이면 청둥오리 새끼들의 앙증맞은 모습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인간처럼 오리도 모두 각각 고유하고 성격도 성장 속도도 다르다. 구파발천 메뚜기다리 인근 진입로에는 인공폭포가 있고 잉어 같은 물살이들이 사는 저수지(라 할 수 있다면)가 있다. 그곳에서 엄마 청둥오리가 새끼 일곱 명을 훈련이랄지 연습이랄지 생존 교육을 하고 있었다. 많은 주민이 멈추어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둑마루라고 부를 수 있을까. 높은 곳에서 거의 수직으로 경사진 곳에서 내려가는 걸 어미 청둥오리가 시범으로 선보인다. 그러면 새끼들이 하나둘 그 모습을 교본 삼아 따라 내려온다. 다시 어미가 날갯짓하며 높은 마루로 올라가면 아래에 있던 새끼들이 하나둘 용기내 올라갈 길을 찾아 나선다. 올라갈 때 마지막 남은 청둥오리 새끼가 주민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때는 해거름 무렵. 초조해지는 마음 달래가며 이리저리 올라가기 위해 힘쓰는 모습을 바라본다. 김수현 님과 나 역시 안아서 올려줄 수 있는 높이도 아니고 어쩌면 좋을까 안절부절. 드디어 마지막 남은 새끼 청둥오리까지 둑마루로 올라섰다. 원래 일곱이었다는 듯 유영하기 시작한다. 휴우.. 어떤 소리가 들린 것 같다. 주민들은 그제야 저녁때가 된 걸 알았다는 듯 각자의 갈 곳으로 흩어진다.

 

살아있다는 건

                                                                                                          글쓰는 백정

눈가 저릿한 떨림을 느낀다는 것
골목 구석구석 길고양이를 살피는 마음

걸어가는 까치
무어라 소리내는 맹꽁이
나란히 머물던 달팽이와
눈맞춤해주는 청둥오리
분주한 청설모의 몸짓을 바라보는 숲의 시간

살아있다는 건
계속 맴도는 선율이라든지
그 사람의 모습 같은 것
홀로 고요를 사랑하는 일

투쟁, 언제나 투쟁
배터리 간당간당한 몸 달래며 현장에 머무는 일
져도 아파도 싫어도 지겨워도
그것을 지치지 않고 하는 일

살아있다는 건  실은 슬픈 일
존재들의 고통과 알지못할 슬픔을 모른 체하는
그러나
철봉에 매달려 바라본 세상의 경이에 감탄하며 계속 나아가는 일

가만히 있어 주는 것. 기다려 주는 것. 그저 멀찍이 뒤에서 바라만 보는 것. 아직 내 삶에서 해보지 못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조차 다그치고 윽박지르고 비난하는 일을 일삼았지, 나의 변화를 기다려 주지 못했다. 하물며 타인에게 그런 관용, 그런 아름다움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아부지 미안!)

청둥오리 새끼들을 바라보는 이웃들의 모습을 보며, 내 마음을 바라보며, 주춤했다. 내가 못하고 있는 것, 내가 할 줄 모르는 것. 가만히 바라보기.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습관적으로 누군가와 비교하며 괴로워한다. 자각하지 못한 순간에도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지는 않나.

소리내어 말하지 않고 바라보기. 응원하는 마음으로, 고군분투 중인 누군가에게 사랑의 눈빛을 보내주기. 내가 이루고픈 일이 생겼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김백정은 주주  baerong5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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