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5주년을 맞은 한겨레가 신뢰를 회복하고 독자·주주·후원회원들께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한 길에 다시 나섭니다. 치열한 내부 논의와 독자들과의 소통을 통해 다음과 같은 방안을 더욱 구체화해갈 것을 다짐합니다.

1. 윤리·보도 신뢰 회복 나섭니다

1) 윤리 실천 엄정히 하겠습니다

올해 초 ‘편집국 간부의 금전거래 사건’이 알려지며 불거진 윤리와 신뢰의 위기 속에 저희는 한 번의 보여주기식이 아닌 단단한 변화를 약속했습니다. 윤리강령 실천요강의 엄밀성을 높이기 위해 ‘이해충돌 회피’ ‘독자 존중’ ‘소셜미디어 사용’ 항목을 신설하고 위반행위 신고 등 기존 항목을 수정하는 방안을 윤리위원회를 중심으로 마련 중입니다. 규정의 미비보다 조직 내 긴장과 통제가 느슨해진 것이 원인이라는 반성에 따라, 간부들에게는 윤리서약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전 직원 대상 윤리교육엔 구체적 사례를 제시하는 등 실효성을 높일 방침입니다. 주요한 윤리 사안 판단에는 외부 인사 포함을 의무화할 계획입니다.

2) 법조보도 달라집니다

한국 언론은 그동안 검찰 수사에 대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과잉 보도를 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헌법이 규정한 무죄 추정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거나 피의자의 권리가 침해되고, 때론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한겨레부터 변하겠습니다. 우선 검찰 수사 단계의 보도를 줄이고 법원 재판 중심 보도를 강화하겠습니다. 복잡한 공방이 오가는 공판 과정을 알기 쉽게 전달하도록 다양한 기사 쓰기와 긴 호흡으로 재판의 맥락을 보여주는 고정란도 선보입니다. 주요 사건의 경우 담당자들이 수사부터 재판까지 전담해서 취재하는 제도를 실험합니다. 검찰 수사 보도에서도 독자적 검증을 강화하고 반론을 충실히 반영해 ‘한겨레 범죄수사 및 재판 취재보도 시행세칙’을 확고한 보도규범으로 정착시키겠습니다. 이를 위해 취재 현장에 적용할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일부는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법조 출입뿐 아니라 기자 모두가 담당 분야에서 벌어지는 법적 사안을 깊이 이해하고 보도할 수 있도록 내부 교재도 만들었습니다. 정보 폐쇄적인 사법 시스템의 오남용, 정치의 사법화 문제점 등을 집중 조명하겠습니다. 내부 다짐에 그치지 않도록, 외부 전문가에게 법조 기사 모니터링을 맡겨 주기적으로 공개할 방침입니다.
 

2. 독자·주주·후원회원들에 더 다가갑니다

한겨레를 향한 의견과 쓴소리를 직접 듣고, 소통하겠습니다. 창간 35년을 맞아 시작하는 ‘삼삼오오 한겨레’는 독자들과 대표이사 등 한겨레 구성원들이 만나는 다양한 형식의 자리입니다. 5월18일 저녁 8시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의 스튜디오에서 <한겨레TV>의 대표 영상 프로그램 <공덕포차>의 공개방송으로 시작합니다.

6월17일에는 한겨레 청암홀에서 아이를 키우며 고민하는 모든 부모를 위한 <육퇴한밤> 공개방송 ‘육퇴한 낮’이 열립니다. 정전 70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현장 답사나 지역 독자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추진합니다(상세 내용은 개별 채널 알림). 주주들을 위한 견학 프로그램 또한 업그레이드해 가동합니다. 뉴스 생산의 심장부인 뉴스룸국과 영상 스튜디오, 오랜 세월 공덕동을 지켜온 윤전실 등에서 한겨레 역사와 현재를 소개받고 뉴스룸 국장 등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습니다(별도 공지 예정).

3. 한국 사회의 의제 설정을 이끌겠습니다

한국 사회가 어렵게 일군 민주주의 원칙을 지켜내기 위해 권력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을 더욱더 치열하게 하겠습니다. 고물가의 고통과 불평등의 그늘이 짙습니다. 민생과 직결되는 경제·사회 정책을 면밀히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겠습니다. 미래는 오늘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기후위기가 전 지구를 휩쓸고 저출생·고령화 문제는 한국 사회의 기반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젠더 갈등·혐오의 확산은 극심한 분열을 야기하고,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류에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시대적 난제에 맞서 공존의 방법을 모색하는 데 취재 역량을 모으겠습니다.

평화와 공존은 올 상반기 집중할 화두입니다. 대형 기획 ‘정전 70년의 성찰과 분단의 벽’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열쇳말로 삼아 신냉전의 격랑을 헤쳐갈 지혜를 찾아 나서고, 또 다른 기획물 ‘이주시대, 스포츠로 경계를 넘다’에선 스포츠를 통해 차별과 편견의 벽을 넘어 차이와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로 나아가는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1988년 한겨레 창간호에 실린 ‘꼬마상주 영정’사진과 인터뷰는 80년 광주의 진실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기폭제였습니다. ‘전두환과 광주’에 대한 또 하나의 중요한 고리를 밝히는 기획을 통해 민주화에 대한 폄훼와 공격이 극심해진 지금 시대를 돌아봅니다.

 

[사설] ‘퇴행의 시대’ 맞선 한겨레의 역할 다짐한다

1988년 <한겨레> 창간은 시민들의 힘과 해직 언론인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열정·지혜로 이뤄낸 기적 같은 역사였다. 사람이라면 세상을 알고 자신의 앞길을 헤쳐갈 수 있는 나이. 창간 35돌을 맞은 오늘, 지금의 한국 사회와 한겨레가 그 세월만큼 성숙했는지 돌아본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 이후 이뤄낸 성취를 부정할 이는 없을 것이다. 경제적 성장부터 케이(K) 문화까지 물질적·문화적 성취도 눈부시지만, 독재와 권위주의 정권에서 가려졌던 진실을 드러내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용기도 우리는 함께 나눴다. 성장과 구조적 문제에 매몰돼 사람 하나하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사회적 진보는 이뤄질 수 없다는 공감대도 형성됐다.
 

불과 1년 전 상상할 수 없던 일
 

하지만 35년 전을 방불케 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게 2023년 대한민국이다. 검찰 출신들이 핵심 권력기관의 요직을 장악한 ‘검찰 공화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1조 1항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듯하다. ‘시행령 통치’ ‘거부권 정치’가 일상화될 정도로 삼권분립은 위태로워졌고 정치에서 대화와 타협은 실종됐다. 계층과 집단의 이익이 갈리는 사안에 중재와 조정보다 국민 ‘갈라치기’만 도드라지는 사이, 청년들은 전세사기 벼랑 끝에 몰리고 고물가와 불평등의 그림자는 짙어졌다. 미-중 사이 균형을 찾는 ‘글로벌 사우스’가 주목받는 시대에, ‘가치동맹’을 내세운 선악 이분법적 ‘편가르기’ 외교는 한국을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의 최전선에 세우고 있다. 이로 인해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과 불안은 한층 고조되고 있다.

특히 오랜 시간 논쟁과 숙의를 거쳐 이뤄낸 합의와 가치가 뒷걸음치는 현상은 극히 우려스럽다. 제주 4·3과 광주 5·18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발언은 여당 한복판에서 ‘시민권’이라도 얻은 듯하다.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안전 사회’를 요구하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족들의 손 한번 잡아주지 않은 채 대통령은 책임자들을 감싸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이를 감시해야 할 언론 현실은 어떤가. 비판적 보도에 대한 정권의 압력은 노골화하고,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대통령의 주요 발언은 외신 인터뷰를 통해 듣게 됐다. 더욱 걱정인 것은 민주주의가 위기일수록 언론 신뢰도가 올라가는 통상의 사례와 달리, 한국에선 민주주의와 언론 신뢰의 위기가 복합적으로 닥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것을 ‘퇴행의 시대’라 말한다.
 

권력 감시와 대안 성찰의 소명 다할 것
 

하지만 ‘민주·민생·민족통일’이라는 한겨레 창간정신으로 집약되던 35년 전과 지금 우리 눈앞에 놓인 시대과제가 똑같을 순 없다. 인구, 기후위기, 인공지능 같은 새로운 과제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은 절박하다. 무엇보다 지난 35년 역사를 통해 흑백이나 선악의 이분법으론 아무리 숭고한 과제도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민주당과 진보 진영도 ‘내로남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 또한 변화의 동력을 약화시키고 패배감과 피로감을 키우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럴수록 상식과 부끄러움을 아는 시민들의 힘이 희망이다. 그렇기에 그 출발은 ‘성찰’이 되어야 한다. 한겨레 역시 창간 이래 약자의 편에 서 평등과 공존의 공동체 가치를 지키는 데 노력해왔지만 부족한 점이 많았음을 잘 알고 있다. 특히 올해 불거졌던 ‘편집국 간부의 돈거래 사건’은 우리를 처음부터 되돌아보게 했다. 창간 35돌을 맞아 한겨레가 윤리 실천 내재화와 법조 보도 변화 등의 방안을 밝히는 것은 외부의 비판에 열린 자세로 지속적인 실천을 해나가겠다는 다짐이다. 민주주의의 원칙이 후퇴하는 일이 없도록 권력 감시를 강화하면서도, 민생에 유능한 대안을 제시하고 미래의 선택에 깊이 있는 생각거리를 제시하는 언론 본연의 길에 치열한 마음가짐으로 다시 나선다.

옮긴 이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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