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樓秋盡玉屛空
霜打蘆洲下暮鴻
瑤琴一彈人不見
藕花零落野塘中

달 밝은 누각 가을은 다 가고 방은 텅 비었는데,
서리 내린 갈섬 저녁에 기러기 내리네.
거문고 타고 있어도 임은 보이지 않고,
연꽃만 한잎 두잎 연못으로 떨어지누나!

용연이, <閨怨>의 전문이네. '閨怨'이란 '규중의 원한'이란 뜻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을 받은 여자의 원한을 말하네. 이러한 여자의 원한을 노래한 시를 '閨怨詩'라 하는데, 이 규원시를 제일 먼저 쓴 사람은 중국 당나라 때 왕창령(王昌齡, 698-755)이네.

閨中少婦不知愁
春日凝妝上翠樓
忽見陌頭楊柳色
悔敎夫壻覓封侯

규방의 젊은 아낙네 근심이랑 모르고,
봄날 단장하고 단청한 누각에 올랐네.
문득 거리에 흐드러진 버들 빛을 보고, 
남편 벼슬 찾아 떠나보낸 일 뉘우치네.

왕창령의 <閨怨> 전문일세.

왕창령은 성당(盛唐) 때 시인으로 변경(邊境)의 전쟁과 규중(閨中)의 이별을 묘사한 작품들이 뛰어나네.

이 시의 제목 '閨怨'은 '규중의 원망'이란 뜻으로, 출정(出征)한 군인의 부인이 외롭게 지내는 설음과 원망을 뜻하네. 남편 없이 홀로 지내는 어려움을 모르는 새색시가 한껏 단장하고 높은 누각에 올라 봄 경치를 즐기다가 문득 거리에 버들가지가 흐드러진 것을 보고는 자신의 곁에 남편이 없음을 새삼 깨닫고, 남편에게 공을 세워 출세하도록 권하여 군대로 나가게 한 일을 뒤늦게 후회하네. 봄날 홀로 지내는 젊은 아낙네의 심리적 변화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작품일세!

물론 당시 허난설헌도 이 왕창령의 시를 읽었겠지!

허나, 두 여인의 <규원>의 정황이 다르이. 즉, 왕창영의 <규원>이 남편의 출세를 위해 자신이 남편을 군대로 내보내 놓고 봄날 거리에 흐드러진 버들가지를 보고서 외롭고 쓸쓸함에서 나온 원한이라면, 난설헌의 규원은 남편 김성립이 과거 공부한다는 핑계로 집을 나가  밤낮으로  기방을 나돌며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아 홀로 독수공방을 하는 데서 오는 원한이네.

月樓秋盡이라 했으니 누각 위로 달달 밝은 늦가을이네. 허나 달은 밝은데 방은 텅 비었네.

남편이 나간 지 며칠이 돼도 돌아오지 않네. 독수공방!
서리 내린 갈섬, 저녁에 기러기 내리는데... 내님은 어디로 갔을까!

외로움 달랠 수 없어 홀로 가야금 타네. 하나 여전히 임은 보이지 않네! 연못에 연꽃만 한잎 두잎 떨어질 뿐!

이처럼 난설헌은 자신의 운명적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시를 썼네.

그럼, 이왕 내친김에 매창(梅窓, 1573-1610)의 <閨怨>도 감상해 보세!

離恨悄悄掩中門
羅袖無香滴淚痕
獨處深閨人寂寂
一庭微雨鎖黃昏

혹독한 이별 한스러워 안방문 닫으니,
비단 소매엔 임의 향기 없고 눈물 자국만 얼룩얼룩!

홀로 있는 깊은 방엔 다른 사람 아무도 없고,
마당 가득 내리는 보슬비는 황혼조차 가린다.

혹독한 이별이라 했네. 붙잡아도 매정하게 뿌리치고 떠난 님! 한스러워 방문을 꼭 닫았네.

용연이,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것 없는가? 그래, "이화우 흩뿌릴 때 울며 잡고 이별한 임!"

바로 이 대목이네.
자네도 알다시피 이 대목은 매창이 유희경(劉希慶, 1545-1636)과 헤어지며 읊은 시조네. 임이 떠났으니 비단 소매엔 임의 향기 없고 다만 눈물만 얼룩질 뿐일세!

고요한 밤, 아무도 없는 독수공방! 창밖엔 보슬비가 흘러내리네. 임인 듯 황혼이라도 보려 했는데 보슬비가 황혼조차 가리네.

매창에 대해선 오늘 이쯤 해두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해 보세.

용연이, 오늘은 병원에 가는 날일쎄! 그러니 이만 접고 저녁에 다시 필을 들겠네.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어 고맙네!

용연이, 오늘도 즐겁게! 아자아자!♡

2023. 8. 8 입추 아침에

김포 여안당에서
한송이 원흥 용연에게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정우열 주주  jwy-han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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