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갑진(甲辰)년은 푸른용, 靑龍의 해이다.

送舊迎新! 

예전 같으면 새해가 되면 연하장을 주고 받았는데, 요즘은 새해인사도 연하장 대신 카톡으로 한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올해도 새해 아침 여기 저기서  "새해 福 많이 받으세요!"하고 연하장 대신 카톡이 왔다. 

福! 

과연 그 '福' 이란 것이 무엇일까? 오늘 멀리 수유리에서 새해 인사차  혜륜당(慧輪堂)이 찾아왔다. 전류리 포구 맛집 '산촌두부' 정식으로 점심을 했다.  이 맛집은 내가 즐겨 찾는 집으로 아주 오래된 흙집에 입구에는 장독과 항아리로 가득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사면으로 싯귀와 글귀가 적힌 족자들이 걸려 있어 마치 옛 고향집을 찾아온 느낌이다.

                           전류리 포구 산촌두부 맛집 (출처 : 정우열 필진님)
                           전류리 포구 산촌두부 맛집 (출처 : 정우열 필진님)

음식은 구수한 시골 된장국에 두부와 수육이 곁들인 순 우리 토속 음식에 12첩 반상이 모두 국산 도자기에 담겨나왔다.

                  국산도자기에 담겨 있는 12첩 반상과 글귀 (출처 : 정우열 필진님)
                  국산도자기에 담겨 있는 12첩 반상과 글귀 (출처 : 정우열 필진님)

점심을 맛있게 먹고 다시 운양동 한옥마을 근처 '별가끼이' 찻집으로 갔다.

                 운양동 별가끼이 찻집 (출처 : 정우열 필진님)
                 운양동 별가끼이 찻집 (출처 : 정우열 필진님)

이 찻집 역시 내가 자주 찾는 곳이다. 혜륜당은 대추차, 나는 아메리카노로 오랫만에 차를 마시며  즐거운 담소를 나눴다. 그때 앞 벽면에 붙어 있는 글씨가 눈길을 끌었다. 지난 번에 봤던 그 글씨 같았다.

"혜륜당 저기 붙어 있는 종이에 쓴 글씨가 무슨 내용이요?" 

혜륜당이 가서 보고 오더니 "무슨 청복을 빈다 했어요" 하며 별것 아닌 듯 말했다. 내가 다시 가서 보니 그건 전에 제자와 함께 왔을 때  봤던 바로 그 연하장이었다. 용의 그림 밑에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

                  오치균 작가의 새해연하장 (출처 : 정우열 필진님)
                  오치균 작가의 새해연하장 (출처 : 정우열 필진님)

하얀
눈 밑에서도
푸른 보리가 자라듯 
甲辰年 웃음꽃
가득 피우시고
淸福을 누리소서 

2024 새해 아침
           우이재人
           오치균 拜

라 했다. 오치균이란 분이 주인(한서진 님)께 보낸 새해  연하장이다. 그냥 "복 누리소서" 하지 않고 "淸福을 누리소서!" 했다.

 

淸福!  

청한(淸閑)으로 청아(淸雅)하고 한가(閑暇)한 복이란 뜻이다. 불교적 용어로 마음이 편안하여 번뇌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 만이 누릴 수 있는 참으로 귀한 복이다. 정초에 제자가 찾아와 그때도 여기 와서 차를 마신 일이 있었다. 그때 제자가 그 연하장을 보고, "선생님, 복에도 청복, 탁복이 있나요?" 하고 내게 물었다.

"그렇다네! 복에도 청복(淸福)이 있고 탁복(濁福)이 있지. 헌데 다산 선생은 탁복 대신 열복(熱福)이라 하셨다네"

사실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복 받으라" 하지 않았다. "복을 지으라" 했다.  그렇다! 맞는 말이다. 복을 짓지 않고 어떻게 복을 받는단 말인가!  바로 복을 짓지 않고 받으려 한 그 복이 탁복이다. 탁복은 세속의 욕망과 욕심을 그대로 쫓아갈 때 생겨나는 것이다. 그만큼 정신이 탁해질 수 있다.

다산 선생은 탁복 대신 열복(熱福)이라하여 복을 청복과 열복으로 나누었다. 열복은 말 그대로 세속에서 부와 명예를 얻는 화끈한 복을 말한다. 다산은 세상에서 열복을 얻은 사람은 많지만 청복을 누리는 사람은 드물다고 했다. 그만큼 하늘이 청복을 아낀다는 말이다. 탁복과 열복이 생명을 경시하는 풍토를 만들어 냈고, 모두가 고통스러운 아수라를 만들어 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나 자신부터 먼저 참회할 일이다. 탁복을 쫓아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현세에서 청복을 누릴 수 없다.

따라서 연하장에서 "淸福을 누리소서" 한 것은 새해의 초입에는 찻잔을 비우듯이 머릿 속에 꽉 차있는 알음알이와 욕심을 버리고 행복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뜻이다. 

"不求最貴, 但求最好"란 말이 있다. 가장 귀한 것을 구하지 말고, 다만 가장 좋은 것을 구하라는 뜻이다. 나에게 좋은 삶이 진정으로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삶이다. 행복은 여기서 부터 출발 한다. (<불교신문>3264호 2017년 1월11일자 참고)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하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  역시 일반인에겐 누리기  힘든 참으로 귀한 삶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탁복이나 열복을 누리기는 쉬워도 청복을 얻기는 힘들어 이를 누리는 이는  몇 되지 않는다 했다.

허나, 우리에게 청복을 안겨주는 건 여기저기 도처에 널려 있다. 다만, 우리가 그걸 보지 못할 뿐이다. 서서히 물들어가는 잎새, 햇살에 영글어가는 열매, 보약과 같은 신선한 바람, 그리고 흰구름 둥실 둥실 떠다니는 청명한 하늘 등등...

바로 이런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누가 뺏으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남과 경쟁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삶을 살든 저런 삶을 살든 헛된 욕망 멀리하고 자연이 주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면 그 또한 행복이 아닐까!? 바로 그게 淸福이다.

 

白雲堆裡屋三間
坐臥經行得自閑
澗水冷冷談般若
淸風和月遍身寒

흰 구름 쌓인 곳에 초가집 세칸, 앉았다 눕다 거닐어도 저절로 한가롭네.

시냇물은 졸졸 반야를 속삭이고, 맑은 바람 달빛에 온몸이 싸늘하다.

나옹(懶翁) 선사의 <山居>(산에 살며 4)이다.

 

그렇다! 청복은 마음을 비울 때 누릴 수 있다. 

"혜륜당, 올 푸른 용의 해엔 청복을 누리 소서!"

"네, 고맙습니다. 선생님께서도요!"

우리는 서로 淸福을 빌었다.  

 

2024. 1. 26.

김포 여안당에서
한송 포옹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장

정우열 주주  jwy-han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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