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연이, 이번 태풍에 별 피핸 없나?

태풍 한바탕 소란 떨고 지나더니 제법 조석으로 선선하군. 그럼, 오늘은 난설헌의 선시(仙詩)에 대해 좀 더 알아보세!

碧海浸瑤海
靑鸞倚彩鸞
芙蓉三九朶
紅墮月霜寒

푸른 바닷물은 옥색 하늘 바다로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 기대어 의지하는구나
스물일곱 송이 아름다운 붉은 연꽃,
달빛 찬 서리에 붉게 떨어지누나!

 

용연이, 허난설헌의 <夢遊廣桑山詩> 전문일세.

꿈속에서 광상산을  유람하며  읊은 시네.  여기 '廣桑山'(넓은 뽕나무 산)은 선계(仙界)에 있는 산이네.

용연이, 설도(薛濤)에게 <春望詞>가 있다면 난설헌에겐 <遊仙詞>가 있네. 선계에서 노닐며 지은 시네.

바로 위의 <夢遊廣桑山詩>도 이 <遊仙詞>에 있네.

<遊仙詞>는 칠언절구 87수의 연 작시로 허난설의 대표작일세.

허난설의 <유선사>(遊仙詞)
허난설의 <유선사>(遊仙詞)

 

이 작품은 동생 허균(許筠)이 공주 목사로 재직하던 1604년 4월에 간행한 목판본 <蘭雪軒集>에 실려 있는데, 무려 2,336자에 이르는 선시어(仙詩語)로 묘사한 대작일세.

난설헌집(蘭雪軒集)
난설헌집(蘭雪軒集)

 

내용은 작자 난설헌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뜻을 선녀가 되어 선계(仙界)에서 이루는 것일세.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상상적인 여러 신선과 옥황상제며 서왕모(西王母)뿐만 아니라 이상적인 임금 목왕(穆王)이나 무제(武帝)도 만나고 도사(道士) 소모군(小茅君)도 만나네.

또 유명한 시인 이하(李賀)도 만나고 천하 미인 양귀비(楊貴妃)도 만나네. 천수를 누렸다는 동방삭(東方朔)도 만나고 그리워하는 죽은 오빠 허봉, 그리고 아들, 딸도 만나 함께 노니네.

허나, 어느덧 인간대상의 1만 년이 지나가 버린 것을 깨닫고 꿈에서 깨어난 듯이 아쉬워하며 끝을 맺네.

용연이, 이 작품에서 허난설헌은 많은 색상시어(色相詩語)와 선시어(仙詩語)를 쓰면서, 고독한 삶을 87수의 당시 속에서 중복됨 없이 풍부한 상상력과 사실적 기법으로 맺힌 정한(情恨)을 풀어나갔네.

난설헌은 평소에 <太平廣記>와 도가서(道 家書)를 즐겨 읽었기 때문에 자서전적 소재를 가지고 선세계를 배경으로 주인공이 되어 자아실현을 한 것이 아닐까!?

이때 작가의 의식 세계는 상승구조로 형상화 됐네.

용연이, 난설헌은 이처럼 신선 세계에서 인간 세상으로 귀양 온 선녀처럼 살다가 위의 <夢遊廣桑山詩>를 써놓고, 끝내 2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네.

芙蓉三九朶
紅墮月霜寒

三九朶! 스물일곱 송이! 예언이라도 한 듯이 말일세!

난설헌이 죽은 뒤 동생 허균이 작품 일부를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 ? -1624)에게 주어 중국에서 시집 <蘭雪軒集>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고, 1711년 분다이야지로(文台屋次郞)에 의해 일본에서도 간행 당시 많은 사람이 애송했네.

그리고 지난해  4월 9일 토요일 봄, 예술의전당 리싸이틀 홀에서 열린 여성 작곡가 정기연주에선 임춘희 작곡 허난설헌 시에 의한 노래 춘우, 채련곡, 몽유광상산시 3편이 연주되었더군!

春雨暗西池
輕寒襲羅幕
愁依小屛風
牆頭杏花落

보슬보슬 보슬비 못에 내리고,
찬바람 적막 속에 스며들 제, 
뜬시름 못내 이겨 병풍에 기대니
송이송이 살구꽃 담 위에서 지네.

용연이, 자네 난설헌 묘소 경기 광주시 초월면 지월리에 있다 했지!

언제 날 잡아 우사(雨沙, 이덕훈), 탄월(灘月, 김원택)이랑 함께 찾아가 참배하세!

밤이 깊었네. 이만 난타(亂打)하겠네.
좋은 꿈 꾸시게!

2023. 8. 13. 자정에

김포 하늘빛 마을 여안당에서
한송이  일산 원흥 용연에게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정우열 주주  jwy-hansong@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키워드

#여안당 편지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