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에 산 지 벌써 9개월이 돼간다. 근데 그 유명한 캘리포니아 해안도로 여행을 본격적으로 해보질 못했다. 가까운 곳에 구경할 곳도 많고, 새로운 친구들과의 모임, 7월 초에 있을 결혼 준비 때문에 정신없이 바빴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남자친구와 주로 지출, 적금에 관해 이야기하는 ‘가족회의’를 갖는다. 회의하다가 앞으로 3~4개월을 어떻게 보낼지 의논했다. 근데 대뜸 '집돌이' 남자친구가 짧게라도, 돈이 들더라도, 여행을 가자고 했다. 4개월마다 여행을 떠나 추억을 쌓고 싶단다. 사실 한 달 반 뒤 한국에 들어가 결혼식을 해야 해서 여행 자체가 심적으로 부담되긴 했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나로선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기도 했다. 또 모처럼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한 것이 고맙기도 해서 흔쾌히 동의했다.

우리가 계획한 전 일정(구글 지도 캡쳐)
우리가 계획한 전 일정(구글 지도 캡쳐)

이번 해안도로 여행은 우리 동네 ‘Camarillo’를 기점으로 해서 캘리포니아 북쪽인 Napa Valley까지 가기다. 캘리포니아에 왔으니 NAPA Valley에 가서 와인 투어를 꼭 해야 한다며 남자친구가 제안했다. 총 660km. 차 이동시간만 대략 7시간이 걸린다. 한 번에 Napa Valley까지 가기보단 중간중간 숙박하며 서부에 있는 명소를 구경하기로 했다. 목요일 저녁에 출발하여 월요일에 돌아오는 4박 5일 일정이었다. 서부 캘리포니아는 볼 것이 정말 많다. 여유롭게 제대로 보고 싶다면 2주 정도를 추천하고 싶다.

목요일 재택근무를 마치고 부랴부랴 짐을 싸서 떠났다. 초보운전 딱지를 떼어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던 터라 자신 있게 운전대를 잡았다. 도로 여행에 어울리는 음악을 들으며 2시간 30분 정도 신나게 운전해서 첫 번째 숙소에 도착했다. 캘리포니아 폴리텍 주립대가 있는 ‘San Luis Obispo’라는 동네였다. 사실 이 동네는 잠만 잤기에 이 동네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구글에 의하면 캘리포니아 폴리텍 주립대를 중심으로 동네가 운영되며, 인구는 대략 47,000명이라고 한다.

아침에 차로 출발하며 ‘San Luis Obispo’ 동네를 잠깐 보았을 땐 평화롭고 한가로운 작은 마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아침을 먹기 위해 ‘San Luis Obispo’에서 40분가량 떨어져 있고 더 작은 마을인 ‘Cambria’로 향했다. 이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Boni's Tacos’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캘리포니아는 1847년까지 멕시코 땅이었지만,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멕시코가 패한 후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여러 주를 미국에... 헐값에... 넘겨주었다. 멕시코 사람들은 캘리포니아를 보며 얼마나 마음 쓰라릴까. 그래서 캘리포니아는 멕시코 문화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타코는 한국 김밥처럼 간단하고, 건강하고, 저렴해서, 캘리포니아 사람들이 가볍게 즐겨 먹는 음식이다.

 ‘Bonni's Tacos’
‘Boni's Tacos’

우리가 간 타코 트럭 가게에선 브리토, 케사디아, 타코 등을 팔았다. 우리는 여기서 유명하다는 Al Pastor(돼지고기를 각종 허브, 파인애플 그리고 매콤한 고춧가루로 양념해 오랜 시간 구운 것) 타코 , Gordita(납작한 빵 안에 고기, 채소를 넣은 것), Fried Taquitos(감자 혹은 치즈를 안에 넣고 또띠아로 감싸서 튀긴 음식)를 샀다. Taco truck 옆집에 있는 작은 빵집에서 커피와 디저트를 사서 야외 벤치에서 음식을 하나둘씩 맛보았다. 세 요리는 정말 다 맛있었다. Al pastor는 잡내 하나 없이 매콤새콤했고, 바삭한 타코, 채소와 잘 어우러졌다. Gordita는 바삭한 식감이 마치 누룽지 같았고, 안에 들어있는 싱싱한 채소와 고기와 잘 어울렸다. Fried Taquitos는 또띠아를 튀겨놓아 바삭했고, 안에 있는 치즈와 감자가 보드랍고, 고소하니 참 맛있었다.

젊고 활달해 보이는 가게 주인과 잠깐 얘기를 나누었다. 아버지가 30년 동안 이어온 멕시칸 전통 레시피를 물려받아 음식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이 동네에선 우리 집만큼 맛있는 타코는 없을 거라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작은 트럭에서 음식을 팔고 있었지만, 멕시칸인 것과 가족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요리가 더 특별나고 맛있게 느껴졌다. 덕분에 활기차게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새로운 음식을 먹는 것!!

다음 도착지는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Elephant seal vista point’다.

이곳은 코끼리물범이 서식하는 유명한 지역이다. 코끼리물범은 포유류로, 몸무게가 거의 3,000~7,000kg까지 나간다. 차를 주차하고, 사람들이 웅성웅성한 바다 쪽을 향해 가니,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무 펜스 뒤에 마치 큰 물고기 떼처럼 보이는 코끼리물범들이 일렬로 누워있는 게 아닌가. 해변에 던져진 물고기처럼 가만히 있는 걸 보고, 설마 죽은 게 아닌가? 싶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숨을 쉬고 있었다. 간혹 어떤 아이들은 코 고는 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서로 장난을 치는 건지, 싸우는 건지 헷갈리게 입을 벌리고 서로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코끼리물범은 에너지 보존을 위해 해변에 있을 땐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자기만 한다. 따라서 어떨 경우 몸무게의 36%까지 빠진다. 털갈이할 때, 번식기일 때, 출산할 때 해변에 와서 지낸다. 하지만 대부분 시간은 바다에서 사냥하고, 수영하며 산다.  600m까지, 2시간까지 잠수할 수 있다. 해변에서 코를 골며 자는 둔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면이 바닷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많은 코끼리물범이 해변에 주르륵 펼쳐진 이 광경은 1800년도 멕시코가 물범 보호법을 시행했기에 볼 수 있는 장관이라고 한다. 1800년도 초반엔 포획으로 인해 개체수가 50-100마리밖에 남지 않았을 때 심각성을 파악한 멕시코 정부는 코끼리물범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미국도 동참했다. 다행히 빠른 번식으로 인해 현재는 200,000마리로 늘었다.

 

코끼리물범을 동물원이 아니라 자연에서 접하니, 인간과 바로 옆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며 새로웠다. 동물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을 조금만 확보해 주고, 자연을 존중해준다면 가능한 일이라는 걸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물끄러미 이 생명체를 지켜보았다. 우리와는 정말 다른 이 생명체는 행동 자체도 귀엽고, 신비로워 보고만 있어도 힐링이 되었다. 마음이 따듯해지며 기분이 좋았다. 나도 힌때 해양생물을 보호하는 직업을 갖고 싶었는데...

한참을 구경한 뒤 우리는 캘리포니아에서 제일 유명한 해안도로 '1번 국도'를 타고 'Big Sur'라는 곳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일정이 계획보다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다 예상치도 못한 일이 나타났다. 길 중간에 '1번 국도'가 막혔다'는 표지판을 보았다.  설마 막혔을까? 의심하며 우리는 계속 도로를 따라 천천히 운전했다. 곧 트럭 한 대가 고속도로 중간에 있는 걸 보았고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안내 표지판 옆에 있는 안전요원한테 상황을 물어보니, 작년 12월 태풍으로 인한 산사태로 고속도로가 유실되어 공사를 하고 있단다. 고속도로는 올해 가을에 다시 복구될 예정이라고 했다. 자연재해로 인해 그 유명한 해안도로가 막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리메칸 주립공원'에서 '빅 서어'로 가는 길에서 빨간 점선이 복구하고 있는 길이다. 
'리메칸 주립공원'에서 '빅 서어'로 가는 길에서 빨간 점선이 복구하고 있는 길이다. 

앞으로 1시간 30분만 더 가면 목적지였다. 하지만 막힌 고속도로 때문에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재검색하니 앞으로 4시간 30분이 걸린다.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며칠 전부터 열심히 짠 일정이 한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망연자실해 있자, 남자친구가 갑자기 “지산아 내가 운전할게, 걱정하지 마. 이왕 이렇게 된 거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움직여 보자. 그게 내 스타일이거든” 이러며 운전대를 잡았다. 그 당시 남자친구 얘기가 잘 들리지도 않았고, 기분이 나아지지도 않았다. 그냥 풀이 죽은 채 차 안에서 말없이 도로만 보고 있었다. 남자친구는 손을 꼭 잡으며, “괜찮아, 우리가 새로운 걸 경험할 수도 있잖아? 난 짜인 대로만 하면 재미없더라.” 하며 시무룩한 나를 달래주었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잠시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아직도 2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남자친구는 피곤하지 않다며 열심히 운전하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리고 남자친구의 긍정적인 마음이 고마워, 지도를 열심히 살펴 계획을 다시 짜보기로 했다. 찾아보니 앞으로 1시간 정도 가면 ‘Point Lobos State Natural Reserve(포인트 로보스 스테이트 자연보호지역)다. 사진으로 보니 해안가 옆에 있는 큰 자연이 멋있어 보였다.

그래... 일정에 없던 '포인트 로보스'로 가보자. 우리는 1시간 정도 단순하게 다시 노래를 부르며 이동해서 마침내 포인트 로보스에 도착했다!

Camarillo를 출발하여 ‘San Luis Obispo’를 거쳐  ‘Elephant seal vista point’에서 물범을 구경하고 '빅 서어'를 향해 가다'리메칸 주립공원' 입구에서 다시 뒤로 돌아 우회하여 'Point Lobos State Natural Reserve'까지(구글 지도 캡쳐)
Camarillo를 출발하여 ‘San Luis Obispo’를 거쳐 ‘Elephant seal vista point’에서 물범을 구경하고 '빅 서어'를 향해 가다'리메칸 주립공원' 입구에서 다시 뒤로 돌아 우회하여 'Point Lobos State Natural Reserve'까지(구글 지도 캡쳐)

2탄에 계속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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