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11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초미의 관심사다. 내년 4월 총선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여야 지도부가 총출동했다. 선거 결과와 득표율 격차에 따라서 지도부 개편 또는 정계 개편도 거론된다.

덧붙여 거대 양당이 주도하는 선거제 논의 결과에 따라 진보정당의 운명도 갈린다.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갈 것인지 아니면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갈 것인지에 따라 정의당을 비롯해 군소 진보정당의 운명이 결정된다.

중요한 점은 사표를 최대한 줄이고 득표율에 따라 민의를 최대한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확립하는 게 관건이다. 이것은 진보정당을 비롯해 진보 정치세력이 감당해야 할 소명이자 시대정신이다. 소수자(약자)를 포함해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다당제 정당, 합의제 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 사회 정치발전과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21대 총선(2020) 당시 투표를 독려하는 포스터(출처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1대 총선(2020) 당시 투표를 독려하는 포스터(출처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참여연대> 의정 감시센터 자료에 따르면 21대 총선(2020) 당시 사표율이 43.73%로 매우 높다. 총투표수 28,741,408표 가운데 12,567,432표가 사표가 되었다. 21대 총선(2020)에서 최초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해 시행했음에도 정당 지지율과 의석 배분의 불비례성을 나타내는 갤러거 지수(Gallagher Index)는 20대 총선보다 더욱 악화하였다.

1인 소선거구제 지역구 의석 중심의 강고한 승자독식주의와 거대 양대 정당의 위성정당 출현이 직접 원인으로 지목된다.

따라서 22대 총선 6개월을 앞두고 진보정당들은 선거법 개정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기득권 거대 양당의 횡포에 맞서 진보정당 간 강고한 연대를 통해 목숨 건 단식투쟁도 불사해야 마땅하다. 지금은 선거법 개정 연대투쟁에 총력을 쏟아부어야 할 시점이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를 2(200석):1(100석)로 개혁을 촉구하거나 현행 준연동형을 넘어서서 독일식, 북유럽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촉구해야 한다. 하다하다 힘에 부치면 기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의석수를 조금이라도 늘려야 한다.

이마저도 시원찮으면 최소한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고수하고 위성정당의 난립이라도 막아야 한다. 그것이 진보정당에 주어진 시대 소명이자 책무이다.

강서구 관내 정의당 선거유세 당시, 전북도당 옷을 입은 정의당원이 손팻말을 들고 정의당 후보를 홍보하는 모습(출처 : 하성환)
강서구 관내 정의당 선거유세 당시, 전북도당 옷을 입은 정의당원이 손팻말을 들고 정의당 후보를 홍보하는 모습(출처 : 하성환)

문제는 선거국면에서 그런 투쟁의 흐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직 내년 총선을 의식해 자기 정당 알리기에 급급하고 정신이 없는 듯하다. 강서구청장 선거에 정의당, 진보당, 녹색당이 각개약진하며 총력 투쟁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양대 정당 의제로 떠오른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선거법이 개악된다면 진보정당들은 다시 2000년대 이전 수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대한민국 초대 농림부 장관에 임명된 죽산 조봉암이 첫 국무회의(1948년 8월6일)에서 발언하는 장면(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자료, 한겨레 신문 2019년 8월 3일) 죽산 조봉암 선생은 <평화통일>을 주창해 북한을 이롭게 했다는 혐의로 이승만 정권에서 사법살인 당한 인물이다. 1959년 7월 31일 이승만 정권에서 처형됐다. 2011년 재심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초대 농림부 장관에 임명된 죽산 조봉암이 첫 국무회의(1948년 8월6일)에서 발언하는 장면(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자료, 한겨레 신문 2019년 8월 3일) 죽산 조봉암 선생은 <평화통일>을 주창해 북한을 이롭게 했다는 혐의로 이승만 정권에서 사법살인 당한 인물이다. 1959년 7월 31일 이승만 정권에서 처형됐다. 2011년 재심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해방 이후 진보정당은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다. 민족주의 좌파(진보적 민족주의)조차 빨갱이로 사냥감이 된 게 그 당시 남쪽 사회 현실이다. 극단적 반공주의가 압도하는 분단 상황은 조봉암의 진보당을 압살했다. 9개월 뒤, 학생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4월 혁명 공간 치러진 7·29(1960) 총선에서조차 보수정당인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을 뿐, 진보정당 사회대중당은 한 자릿수 득표율에 그치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5·16 군홧발에 잔혹하게 짓밟힌 진보정당이 다시 희망의 싹을 틔운 것은 87년 6월 항쟁 이후다. 노회찬이 처음 사회주의를 꿈꾸며 감옥에서 비합법 진보정당에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89년-90년 현실 사회주의 몰락과 변화된 국제 정치 상황을 이해한 노회찬은 사민주의로 노선을 수정했다. 그리고 사민주의 진보정당 건설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고군분투했다. 그렇게 90년대를 좌절과 절망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시 40년 만에 진보정당을 창당한 시기는 김대중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지 2년이 지난 2000년이다. 대한민국이 최초로 자유민주주의 형태를 갖추고 선거를 통한 최초의 정권 교체이자 민주 정부 1기인 김대중 국민의 정부에서 가능했다. 물론 진보정당 민주노동당 창당 주역은 노회찬이다.

그리고 민주 정부 2기인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 17대 총선(2004)에서 민주노동당은 원내정당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13.1% 득표로 지역구 2명, 비례대표 8명, 총 10명을 당선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감격스러움을 넘어 진보 정치사에 큰 흔적을 남긴 대사건이었다.

물론 기대 이상으로 민주노동당이 선전한 배경에는 17대 총선에서 처음 적용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인 1인 2표제가 주효했다. 정당명부식 1인 2표제는 노회찬 의원이 2001년 위헌법률 심판을 제기하면서 획득한 정치투쟁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역사 속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진보정당의 발전과 성장은 자유민주주의 정치세력이 집권했을 때 가능했다. 적어도 진보 정치의 마중물 정도의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노회찬 의원이 진보정당 건설과 집권에 자신의 목숨을 바친 사실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지금 진보정당 활동을 하는 정당인들은 자신의 당면 과제가 무엇인지 갈피를 잡아야 한다.

내년 총선을 의식해 자당을 홍보하는 선거 전술이 아니라 선거연대이어야 하고 선거법 개정 투쟁 전술이 당면 과제가 되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토대 없이 진보정당은 뿌리를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분단 상황에서 진보정당이 어떻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는지에 대한 역사 속 흔적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소탐대실의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김태우 국민의 힘 후보는 유독 <힘 있는 구청장>을 강조한다(출처 : 하성환) 
김태우 국민의 힘 후보는 유독 <힘 있는 구청장>을 강조한다(출처 : 하성환) 

오는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10%-15% 이상 큰 표차로 보수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하면 이 땅에서 자칭 보수세력(극우 정치세력)은 분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심지어 박근혜 탄핵처럼 윤석열 탄핵까지도 예측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해 대선에서 노동당 후보는 1만 표도 얻지 못했다. 매일 6명의 노동자가 집으로 퇴근하지 못하고 영안실로 퇴근하는 산재 지옥인 나라! 그런 객관적인 상황에서도 노동당은 지지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 이번 강서구청장 선거에서는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

2023년 9월 23일 <기후정의행진> 당시, 유모차를 끌고 집회에 참여한 젊은 엄마(출처 : 하성환)
2023년 9월 23일 <기후정의행진> 당시, 유모차를 끌고 집회에 참여한 젊은 엄마(출처 : 하성환)
2023년 9월 23일 <기후정의행진>  당시, 집회에 참여한 수녀님들(출처 : 하성환)
2023년 9월 23일 <기후정의행진>  당시, 집회에 참여한 수녀님들(출처 : 하성환)
2023년 9월 23일 <기후정의행진> 집회 당시, 천주교 수녀님들이 <탈핵, 탈석탄, 탈송전탑> 펼침막을 들고 있는 모습(출처 : 하성환)
2023년 9월 23일 <기후정의행진> 집회 당시, 천주교 수녀님들이 <탈핵, 탈석탄, 탈송전탑> 펼침막을 들고 있는 모습(출처 : 하성환)

기후 위기시대! 기후 환경운동가가 다수 배출되는 시대! 

2023년 9월 23일 우장초등학교 학생들이 부모와 함께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모습(출처 : 하성환)
2023년 9월 23일 우장초등학교 학생들이 부모와 함께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모습(출처 : 하성환)

기후 정의에 대중의 자발적 관심이 폭발하는 시대! 녹색당도 마찬가지다. 객관적 상황에 포획되어 정치적 지지로 이어질 거라는 순진한 생각에 매몰되어선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 토대 없이 진보 정치는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건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이번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진보정당 기본소득당(용혜인 의원)은 더불어민주당과 선거연대를 선언했다. 성남시와 경기도 지사 재직 당시, 이재명이 실천했던 청년수당 등 기본소득정책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서구청장 선거 국면의 정치적 의미를 통찰했기 때문이다.

강서구청장 후보를 낸 정의당-진보당-녹색당은 후보단일화를 위한 논의를 시도하다가 각자도생하는 풍경이다. 온전히 자기 정당 선전에 돌입한 상태다. 반면에 우리공화당 후보는 며칠 전 사퇴하면서 조건 없이 국민의 힘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진보 후보들은 분열된 상태이고 자칭 보수 후보는 연대한 상태다.

강서구청장 선거유세 당시,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가 연설하는 장면(출처 : 하성환) 며칠 전엔 같은 공간에서 정의당 이정미 당 대표가 선거 유세를 하였다.
강서구청장 선거유세 당시,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가 연설하는 장면(출처 : 하성환) 며칠 전엔 같은 공간에서 정의당 이정미 당 대표가 선거 유세를 하였다.

광역 지자체도 아니고 일개 군소 지자체장 선거에 진보정당조차 중앙당 지도부가 총력 투쟁하면서 전력투구하는 양상이다. 정의당의 경우, 흔들리는 정체성만큼 진보정당으로서 거시적 전망을 상실한 모습이다. 수십 년 기득권 정당이자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 관계라는 틈바구니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지만  갈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대통령을 등에 업은 듯 유달리 <힘 있는 후보>를 강조하는 국민의 힘 김태우 후보 현수막(출처 : 하성환)
대통령을 등에 업은 듯 유달리 <힘 있는 후보>를 강조하는 국민의 힘 김태우 후보 현수막(출처 : 하성환)

대통령을 등에 업은 김태우 국민의 힘 후보는 <힘 있는 후보>라며 재개발 공약을 내세운다.

가양역 네거리에 내걸린 권혜인 진보당 후보와 진교훈 더불어민주당 후보 현수막(출처 : 하성환)
가양역 네거리에 내걸린 권혜인 진보당 후보와 진교훈 더불어민주당 후보 현수막(출처 : 하성환)

반면에 더불어민주당 진교훈 후보는 경찰 출신으로 안전을 강조하며 정권 심판을 외친다. 권혜인 진보당 후보는 여성 안심 귀갓길과 전세사기 문제, 그리고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학교급식 문제 등 생활 중심 공약을 내세운다.

첫 번째 <기후구청장> 후보임을 강조한 김유리 녹색당 후보 현수막(출처 : 하성환)
첫 번째 <기후구청장> 후보임을 강조한 김유리 녹색당 후보 현수막(출처 : 하성환)

김유리 녹색당 후보는 진보정당 가운데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며 첫 번째 기후구청장임을 호소한다.

<녹색 강서>를 강조하는 김유리 녹색당 후보 선거홍보물(출처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녹색 강서>를 강조하는 김유리 녹색당 후보 선거홍보물(출처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의당, 진보당 후보 선거 책자와 달리, 녹색당 후보는 선거홍보물도 낱장 한 장이 전부다. 

강서구청장 선거는 내년 22대 총선(2024)을 넘어서서 각 정당 선거 결과(득표율 격차)에 따라 대한민국 정치 지형을 근본에서 환골탈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강서구청장 선거가 한국 정치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선거 전날 곰곰이 곱씹어 본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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