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얘기만 들으면 우리 커플은 고난이 없었던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4년이 넘는 장거리 연애의 현실은 끝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첫 2년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우린 1년에 많으면 3번, 한국이나 캐나다에서 만남을 계획했고, 새로운 지역을 여행하며 행복한 추억을 쌓았다. 퀘벡시티도 가고, 밴쿠버, 토론토, 밴프, 몬트리올 곳곳을 돌아다녔다. 박사과정을 열심히 하면서 3~4개월에 한 번씩 만나는 시간은 긴장된 학업, 팍팍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시간이었기에 소중했다. 이 만남을 손꼽아 기다렸다.

코로나 터지고 1년 만에 봤을 때... 우리의 관계가 계속 이어지길 바라면서... 
코로나 터지고 1년 만에 봤을 때... 우리의 관계가 계속 이어지길 바라면서... 

하지만 코로나가 시작된 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캐나다는 외국인이 캐나다에 입국하는 걸 전면 금지했다. 한국인은 한국에 입국할 수 있었으나 두 주 동안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모든 상황이 불안정했고, 코로나 감염자 수는 전 세계적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코로나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대다수 나라는 해외여행을 금지했다. 우리는 1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 그 공백은 우리 관계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아무리 영상통화, 메신저가 잘 되어있다고 해도 실제로 만나 눈을 보고 얘기하고, 손을 잡고, 같이 웃는 그런 상호작용을 대체하진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우린 천천히 서로가 멀어지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벌어지는 관계를 붙들기 위해 전화에 집착했다. 하지만 전화에 집착할수록 관계가 나아지기보다 더욱 악화했다. 서로가 무심코 던진 말을 예민하게 받아들여 상처를 받기도, 상처를 주기도 했다. 서로 만나 따듯한 눈빛, 부드러운 손만 잡으면 해결할 수 있었을 단순한 싸움도 전화로 해결해야 했다. 우리 관계엔 찬바람이 불었고, 애정 어린 다정한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대화는 겉돌았다. 서로 할 말이 없어 조용히 전화를 끊기도 했다. 전화로 관계를 유지했던 우리는 행복하기보다 속상한 날들이 더 많아져 갔다.

그래도 우린 서로를 포기하지 못했다. 코로나 백신이 효능을 보였고, 해외여행은 천천히 허용됐기 때문이다. 박사 졸업도 얼마 남지 않았고, 이에 따라 장거리 연애도 끝이 보였기 때문이다. 다시 함께하면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희망이 항상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보 같은 건지... 어리석은 건지... 현명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우린 서로가 점점 멀어져 가는 모습을 느끼면서도 서로의 끈을 놓지 못했다. 속상하고 슬프면서도 자그마한 희망을 안고 서로 만날 길을 모색해 갔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우린 함께 만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그 길을 현실화하기 위해 행동으로 옮겼다. 작년 9월 우린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만나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하지만 솔직히 조금은 어색하게… 조금은 불안하게.

우리 둘만의 동거한다는 것은 모험이나 마찬가지였다. 결혼을 전제로 동거했다기보단, 벌어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 시작했다는 것이 더 맞다. 달달한 회복기를 거치지 않을까 생각했던 나의 예상과는 반대로 우린 또다시 하루가 멀다고 다투기 시작했다. 서로 감정적으로 벌어진 마음을 좁히고 신뢰를 형성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것과 더불어 우리는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습관, 정리 정돈 습관까지 모든 것이 달랐다. 남자친구는 종종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아침엔 일을 늦게 시작하는 경향이 있었다. 밤 10시만 되면 로그오프되는 나와는 정반대였다. 식습관조차 달랐다.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와 달리 고기를 좋아하는 남자친구는 매 끼니 고기가 있어야 했다. 깨끗함의 기준도 서로 달랐기에 맞춰나가기 힘들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을까.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쳤다. 새로운 방법이 절실했다. 이런 상황을 깨야겠다고 생각한 남자친구는 한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 매일 아침 포스트잇에 서로에게 잘해줄 거 그리고 바라는 점에 관해 쓰고, 저녁에 얼마나 잘했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해 보면 어떨까?”

처음 이 의견을 들었을 때 속으로 '풋 ~~ 포스트잇이라니.. 종이에 다 쓰라고?' 하며 웃었다. 솔직히 이 방법이 관계를 회복할 거로 생각지 않았다. '포스트잇보단 질이 높은 대화시간을 늘리는 것이 맞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아슬아슬한 관계에서 남자친구의 모처럼 의견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판단하고 내 생각을 접었다. 반신반의하며 포스트잇에 뭔가를 써넣기 시작했다.

포스트잇을 쓰기 시작하자, 다투는 빈도수가 줄었다. 아침에 썼던 내용을 기억하며 서로 잘해주려고, 맞춰주려고 노력했고, 저녁에 점검하며 노력한 부분에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서운했던 점도 포스트잇에 덤덤히 적기 시작하면서 덜 감정적이 되었다. 그렇게 포스트잇은 우리 벽을 메워 나갔고 2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2달 뒤부턴 포스트잇을 쓰는 빈도수가 줄었다. 당연히 다툼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마침내 우린 포스트잇을 찾지 않게 되었다.

사이가 많이 호전된 후  로스엔젤레스에서
사이가 많이 호전된 후  로스엔젤레스에서

동거 석달만에 관계는 정말 빠르게 호전되었다. 서로가 예민한 부분을 알고 조심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했다. 서로 배려한 부분에는 감사하다는 말, 함께해서 행복하다, 사랑한다는 둥 긍정적 말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노력은 서로에게 믿음을 주었다. 우리의 상처는 점점 아물었다. 마음의 벽도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린 잠자는 습관, 식습관, 생활 방식도 비슷해지면서 일상 패턴도 자연스레 맞추어졌다. 각자 맡은 집안일은 알아서 하게 되었다.

4개월 뒤... 우린 첫 연인들처럼 달달한 사이는 아니지만 더욱더 단단하고 서로를 신뢰하며 아끼는 사이로 바뀌었다. 

그리고 우린 결혼을 약속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이지산 주주  jeesanlee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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